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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응급 Aug 02. 2022

S1. 코로나 일지

#10. 내 첫 사람

#. 2020년 03월 16일


‘와 드디어 우리병원 코로나 확진자 뜸’


 갑작스러운 카톡에 동기 카톡방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원래도 24시간 깨어있는 방이어서 항상 시끌벅적하지만, 요 근래 유난스럽게 말이 많았다. 매일의 화두는 코로나로, 오늘은 어떤 코로나 의심 환자를 어떻게 봤는지였고, 이곳을 통하여 지식 공유 겸 벤틸레이션(ventilation, 환기. 서로 속상한 일이나 열받는 일을 성토하면서 푸는 걸 벤틸레이션이라고 한다)을 했다. 그중에도 과연 언제 우리 병원의 응급실이 뚫릴 것인가라는 주제에 대해 모두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대기 중이었다. 아산과 서울대에 코로나 확진자 떠서 문 닫았다더라 어쨌다더라 하는 카더라 소문에 부러움 반, 후폭풍 수습에 안쓰러움 반의 마음을 가지고 근무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우리 병원도 터졌다는 소식이 카톡방을 울렸다. 어떤 환자였는 지 명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담당 구역을 보고 있던 전공의와 전원 코디네이터 그리고 감염관리실은 진료를 포함한 모든 것을 올 스톱시켰던 것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제일 먼저 응급의료센터 진료가 멈췄고, 접수 환자 중 진료를 보지 않은 환자들은 접수 취소를 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돌렸다. 1339와 관할구역 보건소에 유선 신고를 했고, 당시에 본원에는 자체 수용이 불가한 때라서 환자를 타 병원으로 전원시켰는데, 전원 가는 절차도 복잡했다. 이전에 확진 의심자를 이송할 때에는 음압 텐트(음압이 걸린, 몸을 다 덮는 이송용 밀폐 텐트. 진짜 버블 안에 들어가는 것처럼 생겼다)에 환자를 태우고 레벨디 입은 간호사들이 음압 구급차까지 이송하는 정도였는데, 진짜 환자가 발생하니 모든 프로토콜이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 만전을 기했다.


“환자 지나갑니다”


 무조건적인 동선 통제가 그 첫 번째로, 에스텍(경호) 선생님들이 무전기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음압 텐트가 지나가는 행로 위의 모든 환자와 보호자, 행인들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이뤄졌다. 엘리베이터도 모두 정지시켰는데 매우 단순하지만 효과적인(그렇지만 불친절한) 방법이었다. 몇 번의 가상 시나리오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덕분에 생각 외로 수월하게 추가 격리자 없이 제1번 본원 확진자에 대한 조치가 이뤄졌고 싱거울 만큼 빠르게 종료되었다. 환자를 실은 구급차가 병원 문을 떠나는 순간, 우리 모두 안도의 한숨과 함께 기쁨을 즐겼다. 다행히 추가 확진자나 추가 자가 격리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깨 으쓱도 잠시 코로나는 우리를 쉽게 놔두지 않았는데, 불과 첫 원내 확진자 이후 4일 뒤 드디어 방어선이 뚫린 첫 원내 환자가 발생했다. 환자는 감염 진료가 준비된 응급의료센터가 아닌 병동에서, 게다가 코로나 사태 초반에 거의 드물었던 소아와 관련된 케이스였다. 소아 재활병동의 보호자가 확진자임이 확인되어 온 소아 병동이 난리가 났다. 당시 환자는 소아응급의료센터를 거쳐서 입원하면서 코로나 스크리닝(screening, 입원할 때 모든 환자가 예방적으로 검사를 진행했다)에서 음성임이 확인되었지만, 보호자에 대한 스크리닝이 이뤄지지 않아 놓친 것이었다. 요즘은 입원 환자 보호자도 모두 검사를 한 뒤 입실하지만, 당시는 의심되는 증상이 없을 경우 소아 보호자는 검사 없이 입원실에 들어갔다. 이는 소아의 발병률이 낮음과 동시에 보호자가 꼭 필요한 환자군이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환아가 소아 보호자였던 확진자는 환아가 다니던 재활 병원에 확진자가 다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입원하는 데 문제가 생길까 봐 말을 아꼈고, 결국 병원의 느슨한 감염관리가 패착의 원인이었다. 어쩌다 걸린 코로나를 발견하는 것도 힘든데 마음먹고 숨기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준 사례였고, 상대적으로 감염 관리가 느슨했던 소아과 영역의 방역 및 예방이 대대적으로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1].


 확진자의 수가 점점 늘어나 추적 검사가 버거워질 정도가 되자, 급하게 마련한 격리 구역의 문제점이 도드라졌다. 격리구역은 전 구역에 음압이 걸려있고[2] 환자의 동선 통제가 이뤄지는 곳이었지만 코로나 전파를 100% 막을 수는 없다. 모든 의료진이 4종 보호구(AP 가운, 장갑, 마스크, 고글)를 착용한 뒤 아크릴 칸막이를 사이로 환자 진료를 진행하며 이중 삼중 방어 진료해도 이는 코로나 확산 100% 방지의 의미보다는 의료인 감염의 방어의 의미가 더 컸을 것이다. 오만가지 일이 일어나도 환자와 대화가 되는 성인 구역은 그나마 이 방식이 효과적이지만, 보호자라는 변수가 존재하는 소아 구역에서 물리적인 방식의 예방은 빈틈 송송 투성이었다. 뒤돌면 환자 보호자가 분유 타러 가느라 지정 자리에서 이탈해있고, 보호자 교대 불가함에도 어느 순간 아빠 대신 엄마가 들어와 있었다. 코로나 당시 소아는 보호자 1명만 동반 입실이 가능하며 교대가 불가능했는데, 이러한 제지는 이전에 허용되던 것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반감을 샀다. 병원의 제제만으로는 더 이상 제대로 된 의료와 방호의 공존이 무리라고 생각하는 찰나 기가 막히게 정부에서 전염 및 감염 개념에 대해 국민을 대상으로 교육, 광고 등이 진행하였던 것이 의료진의 한 숨을 돌리게 한 신의 한 수였다.


 현대 사회에 있어 전염병에 대한 기본 개념을 갖추기 전까지 진짜 기절한 만한 일이 많았다. 비디오테이프를 본 있는 사람이라면  “옛날 어린이들은 호완,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라는 구문과 함께 얼굴에 천연두 자국이 덕지덕지 올라온 아이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나 역시 아직 전염병 하면 생각나는 게 그 화면이니 어쩌면 그 정도가 우리 세대의 감염병에 대한 보편적인 이미지일 테다. (어릴 때 접하는 매스컴이란). 아이를 기르는 사람들이라면 때 맞춰 예방 접종을 맞혀야 한다는 정도가 살면서 '예방'이라는 단어를 쓸 일의 전부였을 것이기 때문에 코로나를 막고자 벌어진 각양각색의 민간요법을 들을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제균을 목적으로 소금물을 사람들의 손과 입에 분무하다가 감염병이 우르르 퍼진 경우도 왕왕 있었다. 무지하다고 뭐라 할 게 아닌 게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소독제를 몸에 주입하면 안 되냐는 발언을 했다. 천연두가 없어지고, 홍역과 파상풍, 독감 백신들이 개발되고 WHO에서 감염병에 대한 캠페인과 여러 사업을 진행하여도 대중의 인식을 한 계단 올리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니, 현재 2년여 만에 대중의 위생이 이만큼 올라간 것도 기적이었다.


'창문 환기를 1시간에 10분씩'

'마스크를 둘 다 착용하면 99% 전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외출 후 돌아오면 손을 꼭 씻어요'

'알코올 젤 사용 방법'


 이 외에도 팔오금에 대고 기침하기 등 이상하지만 효과는 있는 사회적 규범들이 빠르게 전파되면서 사람들의 감염에 대한 인식과 지식수준이 그렇게 해도 안되던 올바른 손 씻기 전파와 비교했을 때 가파르게 상승하였다. 논문 등 공신력 있는 자료를 찾아보지 않았지만 체감 상 마스크 착용 이후 응급의료센터를 방문하는 모든 질병의 소아 환자의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만 해도 얼마나 마스크를 잘 착용했는지 알 수 있었다 [3].


 이런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환자 수 증가 속도가 더뎌진 것일 뿐 여전히 환자는 늘어나는 추세였다. 응급의료센터가 마비되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결국 4월 아산 병원이 확진자 발생으로 소아 응급의료센터가 한동안 폐쇄되었다. 그전까지는 확진 의심자가 머물렀을 경우 방역하기 위해 몇 시간 정도 응급의료센터를 폐쇄 후 다시 진료를 하는 형태였는데 이렇게 며칠 동안 센터 전체가 셧다운 된 것은 처음이었다. 센터의 셧다운이 발생했다는 것은 최전장 전쟁터인 응급의료센터가 버티지 못한다는 걸 의미했고, 다른 응급의료센터들은 도미노처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기를 썼다. 응급실 문턱이 높아졌고 경환자는 응급실 입구에서 입구 컷 당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원래 응급의료센터에는 저녁 시간대에 환자가 많다. 특히 낮에 개인 사정으로 병원 갈 짬이 나지 않는 직장인들이 퇴근하면서 약을 타러 오거나 간단한 진료를 위해 오기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사정이 달라져 이런 환자들에게,


“지금 응급실 과밀화로 진료 지연 가능성 있습니다. 특히 저희 병원은 코로나 중증 전담 의료센터로 급하지 않을 경우 타 병원에서 진료받는 게 더 쉽습니다.”


 라고 타 병원 진료를 권유하거나 익일 일반 병원에 갈 것을 안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료를 원한다면 막을 수 없다. 다만 오래 걸린다고 반복해서 말해야 후에 탈이 나지 않았다). 이것도 우리 병원이 코로나 전담 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환자를 회유할 수라도 있지, 그렇지 않은 다른 응급실에서는 환자를 거부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미 쌓여있는 환자 위로 더 많은 환자를 쌓았다. 한두 번이야 환자들도 그려려니 하지만 병원 튕기기와 무한 대기가 반복되자 응급의료센터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을 쳤고, 이를 대신해 밤늦게까지 진료하는 병원이나 반차를 사용하여 오전에 병원, 그마저도 힘들면 처방전이 필요 없는 편의점이나 약국 약에 의존하는 일들이 발생했다.


병원과 환자는 존재하지만 그 둘을 잇는 진료의 공백이 생겼다.

 

P.S

 응급실 과밀화는 항상 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는 데 신경 써야 할 가장 중요한 항목 중 하나이다. 한국의 응급의료의 특징 중 하나가 경환 비율이 높다는 것인데, 다른 나라보다 저렴한 응급실 의료비용 때문이기도 하지만 야간에 질병 발생 시 응급실을 대체할 만한 다른 의료 기관이나 시스템이 원활하지 않은 점도 있다. 경환의 경우 편의점 약으로 해결되는 환자들도 많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야간 의료 시스템 자체가 굉장히 열악하다. 최근에야 야간 진료를 하는 내 외과 병원들이 생기고, 응급의학과 전문 의원이 생기는 추세이지만 아직 '밤에 아프면 응급실', '빠른 진료를 하기 위해서는 응급실', '외래가 안 열 땐 응급실'이라는 인식이 많은 만큼 쉽사리 과밀화가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코로나처럼 감염관리로 인해 그마저 있던 응급의료센터가 축소되고 제약이 걸리게 되면 정작 피해를 보는 것은 위중한 환자들이다. 미국의 경우 'emergency center'외 'Fast tract'와 같이 일반 응급실보다는 저렴하지만 빠르게 진료 및 약을 처방받을 수 있는 병원들이 있어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응급의학과를 중심으로 이런 병원들이 생기려는 낌새가 보이고 있는데, 아무쪼록 잘 정착이 되면 좋겠다.


주석:

[1] 여담으로, 이 사건에 대해서 병원 홍보팀은 '(소아병원은 코로나에 뚫렸지만) 소아응급의료센터의 코로나 방어에 성공했다'라는 기사를 띄웠다.

[2] 음압시설이란 공기의 흐름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격리시설의 종류이다. 압력을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의 압력을 낮추어 바깥의 공기가 안쪽으로 흐르도록 만들어둔 장치인데, 공기 혹은 비말을 통해 전염이 되는 병원균 등이 바깥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다. 환자가 격리실을 드나들면서 문이 열리면 한순간 음압이 풀리고 균이 쏟아져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음압시설과 일반 시설 사이에는 '전실'이라는 제3의 공간이 있어 음압을 항상 유지하게 한다. 실간 음압 차는 -2.5Pa를 유지하는 것이 기준이다.

[3] 소아의 경우, 성인에 비해 감염 환자의 비중이 크다. 계절별로 유행하는 질병이 정해져 있을 정도인데, 마스크 착용과 함께 손발 씻기를 잘하 고난 뒤에 확연히 열나는 환자의 수가 줄어들었다.


[ 사진 출처 : Photo by Songkai Liu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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