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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응급 Aug 06. 2022

S1. 코로나 일지

# 11. 119 vs. 응급실

#. 2020년 04월


 코로나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환자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응급의료기관들과 연관된 응급의료체계들도 몸살을 앓았다. 응급실 과밀화 해소를 위해 경환자를 2차 병원으로 돌리는 환자 분배가 진행되자, 결과적으로 3차 병원에 접수된 환자의 중증도가 높아졌다. 소위 걸어오는 ‘Green(그린)’ 환자들의 수는 줄었고, 베드(bed)를 써야 하는 환자들이 늘어난 것인데, 중환자들은 기본적인 검사만으로도 시간이 걸리는 데다가 퇴원하는 족족 새로운 중환이 들어와 ‘만석’이 되어 환자 수는 줄었어도 근무의 로딩(loading)은 늘으면 늘었지 줄진 않았다. 응급의료센터 환자 수용능력이 넘어가면서 응급실 밖에서 대기 환자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여 응급의료센터 폐쇄가 되면 언제 다시 응급실이 열릴지 모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진료 보지 않은 환자들은 응급실이 만실일 경우 대기를 지양하도록 했다. 이것은 119 구조대의 환자 수용 문제가 급속히 누적됨을 야기했다.

 애초에 응급의료센터와 119 구조대는 친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응급실은 119를 소위 '환자 던진다'라고 표현하고, 119는 응급실을 '환자 튕긴다'라고 표현한다. 한쪽은 수용 능력이 없는데 환자를 데리고 오는 행위를, 다른 쪽은 환자 수용 가능할 것 같은데 수용 불가하다고 하는 행위를 서로 얉보는 언어이다. 원래도 껄끄러운 사이인데 코로나 이후 수용불가[1]를 띄우는 응급실이 수두룩 하다 보니 119 구조대가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환자 하나 수용을 시키려고 119가 온 서울을 빙빙 도는 것이 루틴이 되면서, 애타고 화가 나는 단계를 거쳐 제발 어디라도 수용해주면 좋겠다며 수용하는 분노 5단계를 겪는 119 구조대원들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여차 저차 해서 우리 병원에서 수용하기로 한 환자를 이송 완료 후 얼굴이 헤쓱해져 뒤돌아가는 119 구조대의 등이 유난히 작아 보였다. 그렇게 서로 낯을 붉혔었는데, 조금 친했더라면 등이라도 토닥였을 정도로 안쓰러웠다.

 

 관할 지역이 아닌 경기권에서까지 119 상황실에서 환자 수용 문의가 왔다. 코로나 발열의 기준인 '37.5도' 때문에 응급실에서 일반 진료를 보지 못하는 환자들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시도를 넘나 들었지만 중환이 아니고서야 대학 병원급에서 받아줄 수 있는 환자는 거의 없었다. 아마 자리가 날 때까지 응급실 밖에서 기다리거나 진료를 포기하고 오전 진료 때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대기할 수 있는 환자라면 그렇게라도 하면 되지만 당장 급한 환자의 경우는 어쩔 수 없이 배정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나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2].

 응급실에 들어왔다고 끝난 것도 아니었다. 퇴원이 아닌 입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본원 병실이 부족할 경우 여유 병상이 있는 타 병원에서 입원하기 위해 전원을 고려해야 했는데, 이 전원 역시 쉽지 않았다. 그나마 큰 병원인 우리 병원 병실이 꽉 찼으니 다른 대형 병원이라고 비었을 리 만무했다. 이쯤 되니 일단 열이 나는 환자는 확진이 아니더라도(당시에 코로나 PCR 검사 결과를 보기까지 약 하루가 걸렸다) 격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격리 병상이 있는 병원을 찾는 게 관건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전원 전용 응급실 핫라인이 불타올랐다. 코디네이터 선생님들의 주도 하 누구보다 빠르게 각 병원의 수용 가능 여부를 실시간 파악하기 위해 전용 전화기가 쉴틈이 울렸고, 어쩌다 격리 병상이 비면 서로 그 병상을 차지하기 위한 병원 간 눈치 싸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때가 일일 검사 수가 80-90명 정도였던 때였다. 코로나와 함께 한지 5개월이나 되었지만 더 퍼지면 퍼졌지, 수 그라들 기세는 염원 정도로 마음속에만 존재했다. 피로도 축적이 심해져 코로나 환자를 보기 위해 임시 의료 인력이 아닌 감염 전문 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의료 봉사로는 메꿔지지 않는 간격이었다. 전선에서 아등바등 막아내는 동안 정부는 코로나 전담 병원을 지정하는 등 전반적인 의료 시스템의 청사진을 속속히 발표했고, 학계 및 제약회사는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백신 출시된대!"


곧 몇몇 백신이 임상실험을 거쳐 상용화가 될 것이라는 기사가 떴고, 우리 모두가 한줄기 희망을 본 것 마냥 신나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백신... 꼭 맞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P.S

 코로나의 응급의료시스템에 대한 순기능을 찾자면, 과학기술의 빠르게 적용되었다는 점이 있겠다. 우리나라의 경우 '데이터 3 법'과 의학 검사 결과가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제한이 다른 나라보다 많아 의료정보를 기반으로 한 기술 개발이 의외로 늦은 편이다. 진행되는 개발마저도 대형 회사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의료 신기술 개발'을 하려는 벤처가 많이 없다. 하지만 코로나가 퍼지게 되면서 비대면 진료 및 의료 자동화를 위한 개발이 국가 주도 하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고, 무엇보다 임상 의사들이 개발의 필요성을 느낀 점이 빠른 개발의 원동력이 되었다 (의료 시스템 개발 중 임상적용을 위해서는 실제 환자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는 병원이나 의료진을 거치지 않으면 굉장히 어렵다). 비대면 치료나 빅데이터 기반의 자동 진료 시스템에 대해서 의료계 각 층에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개인적으로 거시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의료 시스템 개발의 방향성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것이 어떻게 얼마나 효율적으로 적용하고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의료에 써먹을 수 있는지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이 미래 의사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발병 초반에는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을 알기 위해 119나 병원 별로 유선 연락하는 방법을 사용했지만 곧바로 응급실이나 수술실, 격리실의 여유 병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홈페이지가 활성화되었고 서면 및 유선 신고로 이뤄지던 보건소 전원 의뢰 시스템 역시 전산화되었다. 이 중 몇몇 시스템은 코로나라는 계기가 없었더라면 '환자 개인정보 보호'의 명목으로 개발이 훨씬 오래 걸렸을 것이다. 또한 충분히 서면이나 유선 상으로 일처리가 가능했기 때문에 시스템 개발의 필요성이 필수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코로나를 겪으며 행정적으로 일손이 달리면서 개발된 시스템들만으로 의료 지연이나 과부하를 처리하기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지만, 2년 만에 국가기관에서 이 정도로 빠르게 도입했다는 것은 괄목할만한 일인 것 같다. 그 외에도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여 중증도 및 근거리 별 수용 가능한 병원을 찾아주는 응급환자 이송 시스템, 환자 정보를 다른 병원 의료진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 클라우딩 시스템 등의 의료기술이 개발 중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쪼록 좋은 성과를 근시일 내에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주석 :

[1] 응급의료센터의 수용능력을 초과한 경우, 119 상황실에 연락하여 공식적으로 이송 자제를 요청하는 것

[2] 추후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자가 많은 연휴 등의 기간에는 중환의 경우, 요일 혹은 날짜를 지정하여 '그날의 전담병원'을 정하고 무조건 수용하는 방법이 마련되기도 했다.


[ 사진 출처 : Photo by Nate Isaac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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