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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응급 Aug 09. 2022

S1. 코로나 일지

#12. 금요일에 만나요

 #. 2020년 12월


 코로나 발발 1년을 지날 무렵, 본격적으로 백신 생산을 앞두고 있었다.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얀센, 모더나 등 굵직한 제약회사에서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서 개발한 제품들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이 백신들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지만, 일단 전 세계 석학들이 의쌰의쌰해서 만든 백신들이었고 수요 대비 공급이 딸리는 마당에 국가에서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이마저도 재력이 있는 국가 먼저 순차적으로 가져가는 걸 보면서 역시 돈이 최고다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도 빠른 시간에 백신이 들어왔고, 의료진과 고위험자, 노인들에 우선적으로 제공한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의료진 중에서도 중환자실, 응급의료센터, 코로나 병동 근무자에게 우선적으로 제공된다고 했고, 곧 병원 감염관리실에서 백신 접종을 권유하는 공식 공문이 내려왔다.


“너 맞을 거야?”
“고민 중이야.”
“나도.”

“선생님은요, 선생님은 맞을 거예요?”
“저는 맞아도 맨 마지막에 맞으려고요.”


 의외로 동료 의료진들은 백신 맞기를 꺼려했다. 맞으려는 쪽이 반, 아닌 쪽이 반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백신이 효과가 있을까보다는 부작용은 없을까, 이게 중요했다. 단 5개월 만에 만들어진 백신 부작용이 부담스러웠다. 백신 개발의 모체가 되었다던 CMV 백신 개발이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는데 코로나 발병 2년 만에 10여 개의 백신들이 시판되었다. 임상까지 어떤 약이 이렇게 빠르게 통과되었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FDA 승인을 받았지만 이마저도 ‘특별 케이스’ 여서 다른 개발된 약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게 과연 괜찮은 걸까? 당연히 괜찮지 않았다. 정부에서 의료진에게 먼저 제공하는 게 감사하지만 마루타가 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신을 맞은 이유는 근무를 하려면 '접종 완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백신을 맞지 않으면 근무처에서 2주 1회의 PCR 검사를 받아야 했고, 백신을 맞지 않고 코로나에 걸리면 병원 측에서 그 직원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카더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압박이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백신을 맞지 않는 의료진에게 진료 제한이 발생함을 뜻했다. 개인 병원이 아니라 남의 병원에 고용된 피고용인으로써, 나의 진료 공백은 그 자리를 채워야 할 다른 피고용인 의료진에게 돌아가게 된다. 막 학년에 언제 근무복과 아이디카드(ID card) 집어던지고 나갈지 날짜 잡던 망나니 같은 우리도 추가 근무가 부담스러운데, 이렇게 되면 안 그래도 쪽쪽 빨아 먹히는 전공의들은 탈수기로 쭈압쭈압 빨아먹힐 때까지 일할 게 뻔했다. 그래서 결국엔 높은 비율의 의료진이 백신 접종을 결정하였다. '남에게 피해는 안 가게 하자'는 마음과 '설마 내가 부작용이 생기겠어? 생겨도 빨리 처치할 수 있겠지'라는 마음, 그리고 '백신 준다고 할 때 맞자'라는 마음이 적당히 이루어진 결과물이었다. 나는 사회적 이득과 의학적 불이득 사이에서 접종 여부를 곱씹으며 최대한 백신 접종을 미뤘는데, 결국 지금 바로 접종을 신청하지 않으면 백신 우선 접종 거부로 분류되어 언제 맞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공문을 받은 이후 결정했다.


“교수님, 맞으실 거예요?”
“모르겠어, 나도. X 교수한테 물어보려고.”
“X 교수님이요?”
“우리 병원 오기 전에 백신 연구하셨잖아, 그분.”
“교수님, 빨리 전화 한번 해보세요!!”


 마지막 날까지도 백신 접종하러 갈까 그냥 접종 예약을 취소할까, 아침 내 고민했는 데 알고 보니 주변에 이전에 백신 연구를 하신 교수님이 계셨다. 친한 교수님께 졸라서 그 교수님께 백신 맞을지 말지 물어보자고 했다. 교수님도 마침 고민 중이셨는지 바로 휴대전화를 들었다.

 

 '어, 난데, 지금 교수실이야? 아 그래? 통화되지? 그게 아니라 혹시 백신 맞았나 해서.. 이게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해가지고 다들 걱정이 많길래 혹시 X 교수는 어떻게 생각하나 해가지고.. 아, 아. 오, 그래? 그렇단 거지? 알았어, 응, 고마워~'

“교수님, X 교수님이 뭐라세요?”
“벌써 맞았대.”
“그럼 교수님 저 맞을래요!”
“응 나 먼저 다녀올게~”


 백신 연구자였던 X 교수님의 논리는 이러했다.


 '물론 부작용 있을 수 있지만, 세상에 부작용 없는 백신은 없으며 퍼센트로 환산해서 봤을 때 백신의 효율성을 헤칠 정도는 아니다. 다른 백신도 부작용이 있지만 이슈화가 되지 않은 것일 뿐이지, 따라서 치명적인 부작용이 없는 한 맞는 게 이득이라고 본다. 그리고 지금 전 세계적으로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현 과학 기술로 이보다 더 좋은 백신을 생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라고 하시며 본인은 백신 개발 첫날에 맞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답답했던 가슴이 화악 편해지면서 그 길로 바로 백신 접종을 하러 갔다. 나는 접종 후 발열, 오한, 구토와 몸살 기운 등이 약하게 지나간 것 말고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 만족스러운 결과는 코로나 감염에서 자유로울 것이라는 의학적 의미보다는 주기적인 코로나 검사에서 해방, 사회적 격리에 대한 1차 면제부, 그리고 부작용을 피했다는 안도감 그 이상 이하의 의미를 가지지 않았다.


 2020년 4월, 4차 유행이 발생했다. 델타 변이가 발견되며 우세종으로 변화했다. 감염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응급의료 외 일반 의료에까지 과부하가 걸렸다. 병원 입원실 내 격리 시설이 부족했고, 새로 격리 시설을 만들려고 해도 공간이 부족했다. 음압 수술실, 음압 분만실, 음압 분만실, 음압 투석실이 턱없이 부족해서 모든 게 딜레이가 되었다. 의외로 잘 버틸 던 전공의들과 인턴들도 해를 넘기며 코로나가 길어지자, 힘든 병원보다는 작고 편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걸 택하며 중도 사직을 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허덕이던 메이저급 병원의 일손이 눈에 보이게 달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진료의사 및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등 인력을 충원하기 시작했지만 당연히 의료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1].

 응급의료센터에는 Expert 검사, 소위 신속항원검사가 들어왔다. 검사부터 결과까지 약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새로운 검사였는데, 하루에 20여 개 정도밖에 여분이 없었다. 이에 어떤 환자가 사용해야 하는 가에 대해 각 과마다 의견이 달랐다. 일단 응급의학과 판단 하 응급 수술 및 시술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사용하기로 했는데, 항원 검사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과에서 그럼 우리 수술은 안 급한 수술이냐며 항의를 해와 과 간 미묘한 신경전이 발생했다. 응급 수술이 아니어도 응급센터의 운영을 위한 일정 수량도 확보해야 했다. 응급의료센터 내에 전문 장비가 없는 몇몇 과는 각 과의 전문 치료실에서의 진료를 하기 위해서는 화자가 병원을 가로질러 이동해야 했는데, 사실 상 코로나 검사가 나오기 전까지 환자의 이동이 불가하기 때문에 ‘별거 아닌데 기다리게 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특히 소아응급실에서 이런 불만이 고조되었다. 결국 '상황에 따라' 신속항원검사의 순위가 결정되었는데, 이는 그날 응급의학과 근무자와 그날 당직 수술 의사 중 가장 높은 사람의 과에 따라 '상황'이 변했기 때문에 가능한 신속항원검사 개수가 충분히 늘고 나서야 신속항원검사에 대한 순위 논란이 사그라들었다.

 신속항원검사와 pooling 검사[2]가 도입되며 한 번에 대량의 검사가 가능해졌다. 이전에 소아병동 보호자로 인해 코로나가 뚫린 사례 때문에 보호자 코로나 검사까지 챙기기 시작하면서 검사 대상자도 함께 늘었는데 pooling 검사가 없었더라면 의료 전반에 대한 지연이 발생했을 것인 테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환자 수가 많아지고 복합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환자와 상주 보호자 출입 가능 여부 기준이 생기며 코로나 검사 기준은 갈수록 복합해졌다. 결국 병원 내 코로나 전담 TFT가 꾸려져 카톡방이 생성되었다. 이 카톡방에는 진단검사의학과, 감염내과, 응급의학과, 감염관리실 선생님들이 들어와 있으며 각 시간대마다 진행되는 검사 결과를 공유하고 그때그때 코로나 환자가 발생할 경우 대책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초반에 TFT 카톡방은 응급의료센터의 환자들이 대부분 논의 대상이었는데 점점 병원 내 환자들로 논의가 이뤄졌다. 이 말은 응급의료센터 말고 외래와 병동이 뚫리기 시작했음을 의미했다. 응급실이야 환자 동선 파악이 그나마 용이했으나 병동이나 외래는 방문 환자 및 지나가는 환자가 너무 많아서 역학적 조사는 불가했다. 대량의 코로나 검사가 가능하면서 한숨을 돌렸다 싶었더니,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며 말썽을 부린다. 도무지 정을 붙일 수 없는 바이러스였다.


P.S

 이론상 백신은 최대의 효과와 최소 비용이 교차하는 시점에 배포하게 된다. 너무 빠르게 하면 백신 생산과 배포에 비용이 많이 들고, 너무 늦게 하면 백신의 효과가 미미하다. 이번 코로나 백신의 수입에서, 우리나라가 1순위 국가는 아니었다. 다만 위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충분한 양의 백신을 확보하여 정확한 순간에 배포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하면 우리나라의 백신 보급은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본 글에서 저자는 백신을 극초반에 접종해야 하는 입장에서 불만을 표현하였지만(사실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불만의 주요인이다), 정부 측에서 제시한 의료진 우선 접종은 필수적인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의료 체증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법국가적 사업으로, 백신 접종 시행에 협조적이었던(사시 상 행정 명령급으로 내려온) 의료진 덕분에 제1군(의료진) 백신 접종은 큰 탈없이 지나갔다. 이들을 모집단으로 한 결과값을 토대로 백신의 효과와 감염자의 수 및 증가율을 파악하여 백신 배포 시기를 가늠할 수 있었고, 초기 중요 부작용 역시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에 다른 대규모 백신 접종이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지금보다는 수월하게 보급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초기 접종 집단으로 의료진이 손꼽히는 것은 대상자 입장으로는 꺼려진다. 백신의 질과 안정성만이 이런 불신을 잠재울 수 있을테니 결국 좋은 백신 개발이 관건이며 감염 및 예방 의학에 지금보다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주석:

[1] 진료교수란 임상교수와는 다르게 연구 등의 학술 활동 없이 병원에 고용되어 진료만 보는 전문의사를 뜻하며 병원마다 부르는 명칭이 다를 수 있다.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란 의사/한의사/치과의사의 지도하 의료를 보조하는 간호사를 말한다.  의료법 상 '의료 보조'의 범위가 모호한 상태이기 때문에 의료법 위반 행위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지만 사실 상 손이 부족한 흉부외과 등의 몇몇 과에서는 필수 인력으로 분류된 지 오래이다. 이들은 수술, 시술, 처치에서부터 진료 기록 등 의사의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현재 이런 의료진들 외에도 대형 병원의 의료공백을 위해 각종 의료 보조 인력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 기존의 검사는 '검사자 1명의 검체' →'검사 결과 1개'로 표기가 된다. Pooling 이란, 이런 검사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증상이 미미하거나 감염자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감염자가 아님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negative rule out) '여러 명의 검체' 섞어 하나의 표본으로 만든 뒤 →'검사 결과 1개'로 표현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을 통해 전체 검사 개수를 줄여 진단검사의학과의 로딩(loading)을 줄일 수 있으며 만약 '양성'이 뜬다고 해도, 그때 가서 '여러 명의 검체'의 모표 본만 다시 돌려 누가 감염자인지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이 pooling에 해당하는 검사 대상자들은 주로 상주 보호자들로 감염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음성 확인이 필요한 자들이었다.


[사진 출처 : Photo by Daniel Schludi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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