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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응급 Aug 14. 2022

S1. 코로나 일지

#13. 장갑 꼈어, 안 꼈어

#. 2020년 04월


 "코로나가 뭐예요?"


이런 걸 물어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이제는 '코로나'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이전까지 내가 알던 '코로나'라는 단어는 코로나 맥주 혹은 코로날 컷(coronal cut, 해부학적 관상면 용어) 정도였는데 지금은 당연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코로나는 우리 사회 전반 깊숙이 파고들었으며 정부가 초반에 확산을 막기 위해 펼친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 속 거리두기’ 캠페인이 시들해질 정도로 시간이 지났다. 캠페인은 행정 명령이 아니었지만 사회적 분위기와 공포감이 더해져 무엇보다 더 강력한 제재로 작용하였다. 4인 미만으로 모임을 제한하면서 각종 회식과 약속, 모임이 무기한 연기되었으며 시민들 스스로 집안에 가두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공부하거나 노상에서 노가리 까는 모습이 없어졌고 22시만 되면 거리에 불이 꺼졌다. 매우 성공적이었지만 그만큼 강력한 제재였기 때문에 슬슬 지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도 당연했다. 만 5개월 동안 코로나가 스며들면서 사회적 감옥에 가까울 만큼 금욕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 보니, 이탈자가 생겨나는 건 어찌 보면 순리에 합당했다. 처음 알아챈 것은 거짓말을 하는 환자를 마주했을 때였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목이 좀 아파서요.”
“혹시 중국, 청도 기타 등등…. 확진자와의 접촉력이나 전염 가능성이 있을까요?”
“아니요, 없습니다.”

“그럼 일단 먹을 약 먼저 드릴게요.”

“혹시… 검사는 안 되나요?”


 전에 중국이나 청도 등 외국 입국자들이 해외에서 바이러스가 묻어왔을까 봐 걱정되어 검사를 하려 온 사람들이 국가 간 이동이 막히고 나서 줄었는데, 확진 가능성을 부인하면서 검사만 위해 새벽에 기습으로 응급실을 방문하는 젊은이들이 슬슬 눈에 띄었다. 이들은 절대로 검사의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으며(그냥 얼버무렸다), 이유는 다음날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 등의 기사를 통해 유추할 수 있었다. 그 기사를 훑으며 예전이라면 ‘시기가 시기인데 집에 좀 있지’ 하고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그래, 너네도 힘들겠지. 놀아도 되니까 제발 어디 갔다 왔는지 알려줘’로 바뀌었다. 물론 새벽 2-3시에 콧물이나 목이 아파서 응급실에 방문하는 사람들 중, 입김에서 진한 알코올이 느껴지면 화나긴 했다. 그동안의 감을 토대로 이런 밤이 지나가면 십 중 팔구 다음날 근처 클럽, 술집, 밥집 등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고 뉴스가 뜬다. 확진자 자체를 진료하는 건 나의 일이니 상관없지만, 거짓으로 진료를 보는 환자들 때문에 진료 지연이나 마비가 생기는 것은 매우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놀아도 좋으니 거짓말만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매일같이 빌었다.

 환자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하기 전까지 응급의료센터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확진자에 대한 동선 파악을 자체적으로 진행하였다. 대부분의 확진자 접촉자는 접수 인력, 안내원, 간호사 및 의사로 한정되었지만, 해당 환자와 마주쳤을 법한 격리구역 환자들의 동선까지 모두 파악해서 감염성 여부를 확인했다. 대부분은 통제 하 진행되어서 문제가 없었지만, 가끔씩 의료진 모르게 동선을 이탈하는 환자들이나 보호장구를 잘 착용하지 않은 의료진은 곧바로 격리조치되었다. 동선 파악은 의료의 항상성 유지에 효과적이지만 굉장히 폭력적이며 비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정부는 IT 강국답게 확진자의 카드내역, 대중교통 내역,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서 그 사람의 사생활을 탈탈 털었고, 우리 의료센터도 이에 발맞추어 진료구역 내 CCTV를 돌려보며 환자 및 의료진의 행동을 일일이 분석하였다.


“이 선생님 또 고글 안 썼네.”

“아이고 얘 또 장갑 벗고 손 안 닦았네!”


 CCTV 돌려보는 걸 구경하고 있으면 인민재판이 따로 없었다. 화면 속 각 의료진마다 보호장구를 착용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녹화된 걸 보면서 잘하던, 못 하던 모든 행동이 기록되었다. 속살이 드러나진 않았어도 발가벗겨지는 기분이었다. 이 인민재판의 성격을 띤 CCTV 돌려보기는 검사 결과가 확진으로 확인된 이후에 진행되므로 보통 해당 듀티(duty) 이후에 진행되었는데, 이는 근무 시간 이후 병원 발 기쁘지 않은 전화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이트 근무가 끝나고 밝은 햇살을 피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이 들었는데 전화가 울렸다. 치프인 기간에는 항상 벨소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치프의 스케줄은 누구나 알 수 있으므로 오프라고 못 받고 그럴 수 없었다(근무 때는 오히려 바쁘니까 못 받을 수 있다). 잠긴 목을 가다듬고 최대한 상냥하게 통화버튼을 눌렀지만 나쁜 일(좋은 일로 자는 치프를 깨우는 그런 파렴치한 의국원은 없었다) 임이 틀림없다.


“네~”

“어, 난데! 혹시 너 아까 A 환자 볼 때 옷 잘 입었니?”
“.. 교수님 안녕하세요.. 옷이요..? 아마도요...?"
"그 중환 구역 9번 환자. 너 씨라인(c-line, central line. 중심정맥 도관) 잡았던데."
"헐. 그 환자 확진 났어요?!”
“어, 그래서 이제 CCTV 돌려 볼 건데. 널 믿는다, 일단 집에 있어.”


 교수님은 왜 날 믿으시지, 나도 나를 못 믿는데. 원래도 오프 중 병원에서 오는 전화는 극혐이지만 이제는 극혐 + 자기반성 + 두려움이 동반되어 한두 시간을 집안에 콕 박혀 자기 성찰을 하며 재판이 끝나길 기다렸다. 답답한 마음에 냉장고를 뒤져 맥주를 깠다. 다행히 두어 시간 뒤 다시 걸려온 전화에서 격리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미 잠은 다 깨어 날아간 지 오래였다.

 이런 일들이 거듭되었다. 아직까지 전공의 중에서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누구 또 마스크 안 올렸다더라, 누구 장갑 안 꼈다더라 하는 내용의 뒷이야기가 무성했다. 의도는 '우리 모두 조심하자'지만 실상은 앞담 화인 내용이 단체 카톡방에 올라오면서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이 생겼다. 나중에 친한 간호사들에게 물어보니 거기는 더 심했다고 했다. 의사보다 직접 접촉이 많은 직군이기 때문에 격리가 되면 스케줄이 바뀌게 되어 여러 사람이 피해를 입기 때문에 파트장의 질타를 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감염 환자가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더 큰일이 일어났다.


"얘들아, 그 환자 확진 자래. CCTV 돌려봐야 된대."


근무 전 듀티 때 있었던 환자가 확진이란다. 나는 근무 중이었고 옆 데스크의 컴퓨터로 간호사 선생님들이 CCTV를 돌려보는 중이었다. 갑자기 '으아악?!', '어머 뭐야', '헐 미쳤다. 대박'과 같은 단말마가 쏟아져 나왔다. 뭔가 해서 귀를 기울이니 해당 확진자가 격리 구역에서 진료를 마치고 장례식장을 통해 병원에 들어왔단다. 원래 격리 구역 진료 이후에는 최대한 자차를 이용하여 바로 귀가하도록 안내하는데 환자가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병원 입구는 안내원들이 게거품을 물고 못 들어오게 하니 상대적으로 감시가 허술한 장례식장 화장실을 사용했는데, 문제는 장례식장이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라는 점이었다. 다행히 새벽녘이라 환자가 화장실을 사용하고 유유히 걸어서 CCTV 화각을 벗어날 때까지 마주친 사람이 하나도 없어 망정이지, 정말 큰일 날 뻔한 일이었다. 그 즉시 거의 설교에 가까운 감염 관리 교육을 해당 환자에게 유선상으로 전달하고 나서야 우리는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런 게 자꾸 발생하니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놀라서 심장마비로 먼저 죽겠다고 생각했다.


P.S

 환자 수가 많아지면서 보건소를 중심으로 지역자치단체에서 '선별 진료소'가 많이 마련되어, 검사만을 위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많이 줄었다. 애초에 응급의료센터는 병원이기 때문에 검사만 진행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만, 초기에는 동선 통제를 위해서 일시적으로 응급실에서의 검사를 허용했던 걸 추후에 사람들이 빠른 검사를 위해 이용하기도 했다. 물론 응급의료센터에서 ‘검사만은 진행하지 않는다’라는 설명을 듣고 귀가하는 환자들도 있었지만, 검사를 목적으로 오면 검사 거부가 되는 걸 아는 몇몇 사람들은 목이 아프거나 열이 난다는 식의 증상을 호소하며 진료와 함께 진료를 받곤 했다. 진짜 진료를 보는지, 검사만 원하는지 어떻게 아냐고? 검사만 원하는 사람들은 비용 때문이라도 약이나 주사 처방을 거절하고 딱 검사만 하고 귀가하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눈 뜨고 코베이는 격이었지만, 진료를 원할 경우 의료법 상 진료 거부는 불법이기 때문에 진행해야 했다.

 2022년 7월 현재, 다시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철수되었던 선별 진료소가 다시 열린다고 한다. 아마 오전부터 오후 시간에 열리겠지만 현재 코로나의 주 감염 연령대가 20-30대의 젊은 인구이며 개인 생활을 이유로 주간에 병원을 이용할 수 없는 검사 대상자가 많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저녁에, 나아가서는 야간까지 운영하는 선별 진료소를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 사진 출처 : Photo by Anton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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