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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응급 Jul 14. 2022

S1. 코로나 일지

#4. 새끼가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또 새끼를 낳고

# 2020년 01월 13일 ~ 26일


"이거 진짜 좀 문제다, 문제."
"교수님, 왜요?"
"방어전선 한 번 뚫리면 대책 없을 것 같은데?"

 아침에 아슬아슬하게 출근해서 담당 교수님께 인사드리고 자리에 앉았다. 빨리빨리 안 다니냐고 한 소리 들을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나는 안중에도 없이 근심 어린 얼굴로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시며 인터넷 뉴스를 보고 계셨다(다행이었다). 당시 병원에서는 응급실을 비롯하여 우한 폐렴 환자가 발생할 경우, 병원 전체를 폐쇄하여 원천 봉쇄하는 방어 전선을 구축하는 시나리오가 세워져 있었다. 특히 우리 병원의 경우 수도권에 위치해 있지만 유동인구 대비 의료기관이 적은 지역에 있는 환자 밀집도가 높은 병원이었기 때문에 다른 의료기관들보다 더욱 폐쇄적인 제제가 필요했다. 그래야 이동을 통한 2차 감염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역 의료 시스템이었다.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우리 병원이 마비되면 지역 의료 시스템에 미치는 타격이 클 것이 뻔했다. 특히 환자가 많은 주말이나 야간에는 인근 의료기관과 연계하며 환자를 분산시키는 방법으로 응급의료체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 중 하나의 병원이라도 펑크가 나면 환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야 했으며, 연쇄적으로 환자 과밀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응급의료 시스템이 정착한 지 별로 되지 않은 한국 응급의료에서 어떤 응급실도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긴 하지만, 소위 의료 금싸라기 위치에 있는 의료기관 응급실 과장님의 마음은 한층 더 무거보였다.


"설마요. 뚫리겠어요?"

"이대로라면 시간 문제지. 환자를 잡아다가 독방에 가두는 거 아니면."
"그렇게 까지?!"


 설마, 그렇게까지 퍼지겠어요?라고 말하면서도 나도 마음 한편이 영 찜찜했다. 그렇게까지의 범위가 과연 어디까지일까. 국내에 감염자가 한 명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얼마나 생길지는 가늠이 안됐다. 감염자의 수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면 대책이 없을 거라며 아주 먼(?) 미래를 고민하며 한숨 쉬시는 과장님의 안 그래도 희미한 머리숱이 하루하루 더 희미해지는 건 기분 탓이었으면 좋겠다.

 아침마다 졸린 눈으로 읽는 인터넷 뉴스를 읽는 게 습관이 되었다. 매일 달라지는 뉴스의 내용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폭발적으로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를 피해 우한을 빠져나가려는 전쟁 피난민과 같은 ‘생존자’들의 역동적인 사진은 덤이었다. 딱 퓰리처 사진전 중 전쟁 섹션에서 볼 법한 장면들이었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중국에 매우 가깝다. 북한이 사이에 있긴 하지만 육로도 이어져 있고, 바다도 함께 쓴다. 바람들 타던, 뭐를 하던 중국 외 국가로 우한 폐렴이 퍼진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나라가 순위권 안에 들어가는 건 당연한 순리였다. 기사가 나오는 걸 보고 있으니 정부에서 기민하게 중국 동향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는 듯했다. 빠르게 ‘중앙 방역 대책본부’를 세운 뒤, 우한 발 국내 입국자에 대해 전수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미 5000여 명의 사람들이 우한을 벗어났던 때라 '중국발 입국자'를 모두 막자부터 '해외 입국자를 전수 조사하자', '인권보호 차원에서 그럴 수 없다' 등등 의견이 매우 분분했다.


"네가 만약에 우한에 갇혔어."
"내가 왜?"

"그냥 그렇다고 해."

"그니까 왜."

"그냥 내 장단에 좀 맞춰줘 봐. 아무튼 넌 우한에 휴가를 갔고, 안타깝게도 코로나가 퍼졌대. 근데 네가 타야 했을 한국행 비행기가 취소되어서 귀국을 못해. 그럼 어떻게 할 거야?"
"꼭 한국 와야 해? 휴가를 왜 우한으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발리를 갔어야지)이 기회에 어쩔 수 없이 휴가를 연장.."
"안돼 꼭 돌아와야 해. 안 그러면 너 유급해."
"왜?"

"그냥 그렇다고 해. 아직 장단 안 끝났어."

"그래도 유급은 좀 너무하네. 무슨 그런 말을 야식 먹으면서 하니? 섭섭하게. 아무튼 돌아와야 해? 그러면 나는 버스나 기차 타고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 갔다가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탈래."
"그게 안되면?"
"돈이면 다 돼."


 돈이면 다 되긴 하지, 그렇긴 한데…. 야식을 먹으면서 진행한 ‘우한 폐렴에 갔다면?’ 하는 가정 놀이를 했을 때, 나 역시 다른 변수 다 빼고 생각했을 때 완전 봉쇄가 감염병 전염 관리 차원에서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지역의 완전 봉쇄를 하려고 하면 고려해야 할 것이 굉장히 많다. 일단 국민의 이동권을 억압하는 것 자체가 인간 존엄성을 건드리는 것이며, 사회 경제학적으로 굉장히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또 분명히 위와 같이 법망을 피해, 혹은 어겨가면서 봉쇄 지역에서 탈출하려는 시도가 발생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얼마만큼의 공권력이 투입되어 제제를 가하느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모든 이해관계와 득실을 따져야 하므로 단순히 '우한 지역 다 봉쇄해버려!'라는 정책을 공표 및 시행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동 제한을 최소한으로 하되, 고도화된 IT 기술을 기반으로 입국자에 대해 행로를 추적하여 선택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택했다. 주민번호와 인터넷망이 어디에나 깔려있는 시스템을 가진 다분히 한국 맞춤형 시스템이었고, 초반에는 K-방역이라고 하면서 꽤 선전했다.

 사회 정치 외교계에서 우한 폐렴의 국내 발발을 틀어막으며 우한 폐렴과의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다면, 의료계는 코로나 페스티벌 폭죽을 터뜨리고 있었다. 뜻밖의 전염병이 석학들의 탐구 열정을 건드렸고, 하루 멀다 하고 권위 있는 학회지부터 언뜻 보면 관련성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조그만 학회지까지 우한 폐렴에 조금이라도 걸쳐있는 주제들로 이뤄진 연구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대형 전염병에 대해 이렇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활발히 연구가 이뤄질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아마 거의 모든 학자들이 '향후 몇 년 간 전무후무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따라서 이 기회외 자신의 학술적 역량을 펼치며 연구를 진행하며 의료계에 신바람을 일으켰다 (코로나 시기에 발표된 논문 수와 질, 논문 시스템에 대한 논문이 나올 정도였다). 한쪽은 이 현상을 재앙으로 간주하여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면 다른 한쪽은 연구의 기회로 삼으며 흥미에 흥분해 있었던 게 아이러니하지만, 그만큼 우한 폐렴은 각 계층 곳곳으로 커다란 센세이션을 몰고 왔다.

 왜 그 많은 전염병 중 왜 우한 폐렴이 사람들에게 꽂혔을까. 얕지만 눈에 바른 지식을 빌려 우한 폐렴이 사회에 가지는 의의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자면, 우한 폐렴은 전파 범위와 치명률에 있어서 인류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임계점을 넘은 가장 최신의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7년 전 발병했던 메르스(MERS)와 우한 폐렴은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 군이다. 같은 군이란, 생물 분류체계 인 '종속 과목 강 문계'에서 같은 속이란 뜻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아는 동물 이름은 '속'이고 종류는 '종'인데, 메르스와 코로나-19는 같은 속이다. 즉 같은 '개'에 속하지만 코로나는 '몰티즈', 메르스는 '푸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아무튼 두 코로나 바이러스는 같은 군에 속하지만 특성이 다르고(푸들과 몰티즈가 다른 것처럼), 특히 우리에게 중요한 치사율과 R 값에서 차이가 났다. 메르스는 치사율 34% 과 0.4 ~ 0.9의 R값을, 우한 폐렴은 치사율 1%과 1.4 ~ 2.5의 R값이 예상되었다 (WHO, 2020 발표).

 R 값은 뭐고 치사율은 또 무엇일까. 학생 때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머릿속에 잠시 넣었다가 꺼내버렸던 지식을 이 기회에 복기해 보았다. R값이란 재생산 지수(정확히 기초 감염 재생 산수, reproductive ratio)로 1명의 환자가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 나타내는 값이고, 치사율이란 확진자의 몇 퍼센트가 사망하는 가를 의미한다. 메르스의 경우, R값이 1 미만이었다. 즉 한 명의 환자가 한 명보다 적은 사람을 감염시킨다 [1]. 즉 어떤 균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려면, R 값이 1 이상이어야 한다. 메르스는 R값 1 미만, 치사율 34% (환자 3명 중 1명이 죽었다는 뜻)로 감염의 통제가 우한 폐렴보다는 용이한 편이었다. 메르스라는 '토끼' 종이 있다면, 얘들은 새끼를 잘 낳지도 않고 새끼가 낳아도 번식 능력이 생기기 전에 빠르게 죽어버려 수가 늘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반면 우한 폐렴이라는 '토끼' 종은 새끼가 새끼를 낳고, 또 낳고 또 낳았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죽지도 않는다. 여기서 ‘근데 이 모든 게 뭐가 문제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우리가 아는 질병 중, R이 높아 국가에서 관리하는 질병 중에는 ‘홍역’이 있다. 홍역의 R값은 12-18인데, 왜 엄마 아빠들이 빼먹지 않고 아기들에게 예방주사를 맞혀야 하는지, R값과 코로나가 창궐한 현시대를 보며 이해해보자. 홍역은 사실 죽는 병은 아니다. 치사율은 높지 않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연령대별 치사율을 구하면 의미가 달라진다. 성인인 홍역을 이겨낼 수 있어 걸린다 해도 죽지는 않지만, 애기들은 다르다.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약하고 열에 취약한 애기들이 홍역에 걸리면 합병증 등으로 사망까지 이를 수 있는데, 홍역 예방접종이 이뤄지기 전에는 5세 미만 애기들의 사망률 원인의 1위이기 까지 했다. 이렇듯 R값이 높아 잘 퍼지는 질병은 전체 치사율이 낮다고 해서 위험하지 않다고 하면 안 된다. '노인 및 기저질환자 등 취약층'은 감기만 걸려도 중환자실 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R값이 높은 우한 폐렴은 기전도 치료법도 증상도 잘 모르며, 다른 바이러스에 비해 치사율도 높았다. 즉 전파속도와 치사율을 같이 고려했을 때 세계적으로 인구 감소를 가져올 수 있는 질병인 것이었기 때문에 단순 학술적 연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범세계적 발발을 대비한 국가적 방역이 필요한 상태였다.

 코로나와의 전쟁은 선포되었고, 밀려들어오기 직전이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우리가 의료진으로서 해야 하는 일은 단순히 보호 장구를 입고 환자를 진료하는 것과 더불어 제대로 된 감염 진료 체계를 만들어내고 환자를 교육시키는 것,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한 폐렴을 대처하는 것. 그것이 목표였다.


P.S

2022년 여름 출근하는 차 안에서 들은 라디오 시사에 의하면, 최근 국내 환자의 사망자 중 90% 이상이 60세 이상의 환자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또한 최근 오미크론의 아류 바이러스가 다시 퍼지고 있어 7월 13일 중대본에서 ‘코로나 재유행’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오미크론은 R값이 다른 코로나 아형보다 높으나 치명률은 낮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후향적으로 보면 이때 젊은 인구층의 감염이 꽤 많이 일어났다. 따라서 코로나가 그냥 지나가는 감기처럼 느껴지며, 코로나에 대한 인식이 ‘생각보다 무섭진 않은 바이러스’로 격하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지만 최근 통계의 사망자의 90%이상이 60세 이상이었다는 점은, 코로나가 홍역과 같이 어느 특별 계층에는 여전히 치명적인 질병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문제는 이제는 전과 같이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한 거리두기 등의 사회 방침은 이미 지쳐버린 사람들에게 효과적일 수 없다는 점이다. 이번 발표에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개선된 내용의 사회적 거리두기나 사회 지침이 내려오길 바란다.


주석:

[1] R값에 대해, 출산률로 이해를 도와보자. 우리나라의 인구를 유지하려면 출산율이 2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혼자서 애를 낳을 수 없기 때문에 2명의 부모에게서 2명의 자녀가 있어야 가족이 유지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R값으로 표현하면, R은 자녀 수/부모 수 =2/2 = 1로, 이때의 R값이 1이다. 이것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 사진 출처 : Photo by Aswathy N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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