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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응급 Jul 11. 2022

S1. 코로나 일지

#3. 언더 마이 스킨

# 2020년 01월


뭔가 느낌이 싸했다. 평소에 촉이 잘 맞고 이런 쪽으로 예민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정확한 것은 모르겠지만, 일단 느낌이 그랬다.  

 2020년 1월 13일, 중국 정보는 우한 폐렴으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하였다. 내가 생각하는 중국이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배 째라는 식으로 중국 정부에 불리한 발언은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사람이 우한 폐렴으로 사망했다는 팩트만 딱 적은 기사를 낸다는 것 자체부터 께름칙했다. 아마도 첫 '공식' 환자였을 것이다. 그 말인즉슨, 더 많은 사망자가 있지 않을까라는 합리적 의구심이 들기 충분했다.

 예상보다 빠르고 강한 전파력에 코로나(우한 폐렴이라는 단어는 우한 지역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져오므로, 공식 명칭인 코로나-19로 불러달라고 중국 정부의 요청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입에 익은 건 우한 폐렴이었다.)에 대해 의료 계층 외 일반인들의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또 깊어졌다. 우리 역시 간식으로 핫바를 씹을 때 같이 씹는 주제쯤이었던 우한 폐렴이라는 존재를 제법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기사보다는 학회지에 실린 케이스 논문을 찾아보며 최신 동향에 대해 파악하려고 애썼는데, 우한 폐렴에 노출된다면 순위에 들게 뻔한 응급실 최말단 근로자인 전공의로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그 이유였다. 코로나 의심 환자가 응급실에 접수가 된다면 호기심에 처음 한 두 번은 전문의(a.k.a 교수)가 보겠지만, 그 이후로는 가장 만만한 전공의인 우리가 초진을 볼 것이 틀림없었다. 알아야 이긴다고, 아직 데이터가 많지 않아 "posibility", "able to" 정도로 정리된 코로나 데이터를 닥치는 대로 주워 눈에 발랐다.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했고, 졸국도 하기 전에 전염병 따위에 죽을 순 없다는 삶에 대한 갈망이 끓어올랐다(뜻밖의 코로나의 순기능). 그리고 그것보다 '격리'로 인해 출근일 수를 채우지 못해 졸국을 못하고 1년 동안 추가 수련을 받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것이야 말로 몸을 던지고 갈아 막아야 할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나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병원이 전반적으로 어수선해졌고 수뇌부 회의가 자주 열린다는 소문이 돌면서 의사, 간호사, 주임님, 여사님 할 것 없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모든 근로자의 인식 변화가 피부로 느껴졌다. 특히 위생에 대한 인식 변화가 우선적으로 일어났는 데, 외래 진찰실에서부터 인적이 드문 복도 끝까지 병원 곳곳에 알코올 손소독제가 구비되었고, 청소 여사님들의 청소차 물품이 배로 늘어났으며, 넉넉하게 구비되었던 일회용 마스크가 부족해 근무 전에 마스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코로나에 대해서 잘 모르긴 어제나 일주일 전의 나와 매한가지였지만 마음가짐은 180도 뒤바뀌어 적극적으로 코로나에 대한 방어를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탐색했다. 이전에는 단순히 마주칠 수 있는 전염병 정도의 인식이었다면, 지금은 마주치면 위험할 수 있는 두려운 존재라고 각인되어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그리고 코로나 발발 후 두 달 남짓한 뒤, WHO 의 발표가 있었다.


 ‘우한 폐렴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파된다.’


 한 줄의 간결한 문장이지만, 코로나 창궐 2년이 지난 지금 와서 다시 곱씹어보니 이만큼 강력하고 핵심만 전달한 문장이 있나 싶다. WHO를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된 우한 폐렴에 대한 설명은 WHO의 공신력을 등에 엎고 빠르게 퍼져나갔고,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큰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첫 째, 신종이라는 말은 미지의 바이러스를 뜻한다는 점이었다. 우한 폐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바이러스는 아니지만 인간이 걸린 적이 없던 바이러스로, 임상 연구가 적은 바이러스였다 [1]. 따라서 인간 혹은 개, 고양이와 같이 익숙한 동물을 매개체로 한 기존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전파 경로, 감염력, 신체 반응 및 치료 등에 대해 어떤 유사점 혹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된 것이 없음을 의미한다. 둘째, 바이러스의 숙주가 동물에서 사람으로 변화하였다는 점이다. 기존 코로나 바이러스는 박쥐를 주 매개체로 하여 전파되던 바이러스였다. 그런 바이러스가 알 수 없는 이유를 통하여 사람에게 전파되었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인간의 몸에 이 바이러스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면역체계인 항체가 없을 가능성이 매우 큼을 의미한다. 결국 저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인간 사이에 감염되는 새로운 병이 생겼는데, 뭔지 아직 모르겠다.'라고 쉽게 풀어쓸 수 있다.

  미지의 바이러스는 채 파악하기도 전에 인간에게 밀려왔고, 그 속도를 보아하니 정부나 상부 기관에서 대책을 마련하여 공지하기 전에 응급실에 도달할 것이 예상되었다. 따라서 적어도 응급실 근로자는 능동적으로 대비책을 마련하려고 애를 썼음에도 허둥댔다. 특히 직접 대면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어느 정도의 보호구를 착용해야 하는 가에 대해 왈가왈부 말이 많았다. 대부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말 전파(침, 분비물 등을 통한 전파)가 가장 유력한 전파 방법이었지만, 공기 전파(공기에 떠다니며 전파)를 통한 전염을 배제할 수 없다는 연구 결과가 몇몇 케이스(case)를 통해 보고되자 당장 내일 근무 때 착용해야 할 보호구부터 헷갈리기 시작했다. 뭘 어떻게 입어야 하나요? 하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초반에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보호구를 입기도 했다 [2].


"그래서, 파랑이(부직포 가운 형태의 보호장구 중 하나. 몸 앞뒤를 모두 가릴 수 있으며 보통 수술방에서 사용한다) 입어야 돼, 아님 AP가운(비닐 가운 형태의 보호장구 중 하나. 몸 앞에만 가릴 수 있다. 앞치마처럼 생겼다)만 입어야 해?"
"몰라. 아직 말이 없던데. 일단 다 입어. 어차피 둘 다 똑같은 레벨 아닌가? 나라면 벗기 쉬운 AP가운만 입을래"
"아 두 개다 입기는 더우니까 나도 AP만 입어야겠다…. 안경은? 고글 써야 하나? 고글 쓰면 땀 차서 안 보여. 그리고 자꾸 흘러내리고 말이야."
"일단.. 갖춰 입어봐. 모자라서 못 입는 것보단 낫지"

"그렇지..? 일단 가서 먼저 챙겨놔야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각양각색의 조합으로 보호장구를 착용하거나, 잘 착용하고 나서 보호장구를 벗는 과정에서 균에 콘타(contamination, 감염) 되거나, 혹은 기본 방역인 손 씻기를 안 해서 말짱 꽝인 경우가 수두룩했다. 지금은 누구나 마스크 착, 손 씻기 착, 창문 열기 착, 잘하는 것을 몰라서 이리저리 헤매였던 코로나 초반에는 매일의 근무가 저런 식이었다. 우한 폐렴이 코 앞에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으며 아직 국내에 상륙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시간문제일 뿐인 걸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농담거리로 쓸 만한 주제가 아니었다. 우한 폐렴은 현실이었다.


P.S

 그래도 메르스가 가까운 과거에 있었기 때문에, 코로나 확산에 대비한 방어 전선을 구축은 꽤 빠르게 진행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일반국민이나 의료진 등에 대한 안내는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사이에 환자를 접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예를 들면 공항만 검역 관련자들, 초기 격리 시설 관련자들, 응급의료 관련자 등) 은 정확한 지침보다는 독자적인 의료 지침을 설계해야 했던 점은 다소 아쉽다. 이 과정에서 교과서와 임상, 지침과 현실이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방호복 선택에 있어 어떤 방호복을 입을지 고민을 하기 앞서 차라리 미지의 바이러스를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경우 모든 것을 방호할 수 있는 방호복을 입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럴 경우 보호력은 100%이겠지만 효율성은 현저히 낮아 불가능하다. 그리고 보호구를 완벽하게 갖춘다고 해도, 의료진을 포함하여 감염병 환자의 진료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이 상시 가능한 의료기관은 전무하다 (물론 병원마다 감염병의 창궐을 대비해 법적으로 갖춰야 할 시설들은 구비되어 있겠지만, 이 것이 감염 환자를 상시 진료를 할 수 있음을 뜻하진 않는다). 이는 전염병이라는 분야 자체가 투자 대비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으로 감염 구역 운영을 위한 각종 장비와 설비, 장소 마련 및 유지에 굉장히 많은 비용이 듦에 비해 국가에서 관리하는 분야로 추가 수익이 날 여지가 거의 없는 분야임을 뜻한다. 특히 전염병은 말 그대로 한철 왔다가는 질병으로, 병원도 엄연한 사업체임을 고려하였을 때 공익성을 고려한다고 하여도 그 순간을 위해 모든 시설을 영구적으로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전염병이 발병하기만 하면 ‘임시 진료소’ 등의 말과 함께 텐트, 컨테이너 등의 진료소가 주차장이나 병원 인근 공터에 세워졌다 없어진다.

 이례적으로 길었던 코로나 덕에 지금은 컨테이너가 아니라 전문 감염 진료 시설을 갖춘 병원들이 꽤 많다. 시간이 흘러 결국 수익성을 이유로 폐쇄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지만, 적어도 지었던 것을 다시 허물 수는 없을테니 아무쪼록 효율적으로 사용하였다가 다시 감염병이 전국적으로 도는 상황이 생기면 재빨리 제 용도로 변경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설비보다는 의료 인력의 항상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시설이 있어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없으면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염에 대한 교육 과정이 모든 의료진 전반에 걸쳐 이뤄지되, 교육의 기회가 많은 3차 병원 근로자 외 1, 2차 병원의 의료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면허 유지를 조건으로 필수 교육 형식의 제도가 마련되면 좋겠다.

 

주석:

[1] 의학은 사람이 주 대상이기 때문에, 인간의 면역체계를 침범하는 경우가 아니면 존재의 유무와 상관없이 연구의 주된 주제가 되기 어렵다. 코로나의 경우 도기존에 박쥐를 통해 전파되었던 바이러스임을 알고 있었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치료 등에 대해서는 굳이 의학 연구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사람에게도 전파가 되며 활발한 연구가 진행된 케이스다.

[2] 아시다시피, 방호복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오염물질(코로나의 경우 바이러스가 되겠다)에 따라 커버(cover)해야 할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국제표준 기준에 따라 보호복은 레벨 A에서 레벨 D까지 각각 구분되며 A부터 차례로 피부 및 호흡기 감염 원천 차단, 강력한 호흡기 감염 차단, 공기를 통한 전파력이 낮을 경우 호흡기 감염 차단, 피부 감염 차단이 목적으로 사용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입는 하얀 방호복인 레벨 D의 경우 가장 낮은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착용해야 할 보호복 및 장치가 많다. 레벨 A 는 혼자 입을 수 없을 정도이다. 보통 병원에서 생화학 물질 감염이 의심되는 경우 레벨 C로 커버(cover) 하라고 되어있으므로 사실상 일반인 수준에서 레벨 A, B를 마주칠 상황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위에서 언급된 내용을 보면 저렇게 고민해도 결국 같은 레벨D 급의 보호복안에서 경중을 따지고 있었던 것으로, 의료인임에도 불구하고 보호복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음을 알 수 있다.


[ 사진 출처 : Photo by Cassi Josh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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