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제나 응급 Jul 09. 2022

S1. 코로나 일지

#2. 전염병 알못

# 2020년 01월


 새해가 밝았다. 해가 지날수록 새해 첫날이라는 이벤트에 감흥이 없어진다. 그냥 365일 중 하루지 뭐. 주변에는 '새해를 맞이하여...'로 시작하는 덕담들이 돌아다녔다. 밝고, 새롭고, 산뜻하고, 활기차고, 희망스럽고. 이와 같이 긍정적인 단어들이 주위를 맴돌았지만 출근하며 응급실 문을 지나는 순간 그 기운이 싹 사라졌다. 애초에 응급실에서 “메리해피설날” 과 같은 정 넘치고 몽글한 분위기는 기대하면 안 된다. 기쁜 날 응급실에 오는 환자의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연중 몇 없는 큰 명절에 스케줄이 걸려 근무해야 하는 의료진 또한 기분이 좋을 수 없다. 기분 좋지 않은 양측의 사람들이 만났으니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물건너 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새해복많이받아."


 출근길에 마주치는 간호사 선생님과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일정한 톤의 문장을 표정 없는 얼굴로 숨도 안 쉬고 건넸다. 이런 인사치레는 우리가 아직 사회적 인간의 범주안에 있다는 걸 짚고 넘어가도록 했다.


 여느 명절 아침과 다를 바 없이 접수 환자가 꽤 되어 보였다. 경환들이 대부분이지만, 그중에 섞여 들어오는 중환들을 놓치면 안 되니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게다가 중국 발 전염병에 대한 기사까지 더해져 응급실의 분위기가 부쩍 어수선했다. 올해 첫날의 응급실에서는 잡담 타임의 절반 이상의 비중을 타국에서 발병한 '질병'이 가져갔다. 가십이 아닌 게 이례적일 정도였는데, 전염병과의 적대가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다는 배경이 그 원인이었던 것 같다. 전염병은 발생한 지역 이름을 따 '우한 폐렴’이라 불렸고, 원인으로는 메르스(MERS) 때와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고 중국 정부에서 답지 않게 빠르게 발표하였다. 잇달아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WHO는 팬데믹(pandemic)을 선언하였다.

 이 새로운 전염병의 발발에 의료계가 활활 타올랐다. 학생 때 예방의학 과목에서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감역 학적으로 3-5년 정도의 주기로 전염병이 발병한다. 5년 전에 메르스였으니, 5년이 지난 지금은 우한 폐렴이 '이번의 전염병'으로 꼭 들어맞는다. 질병의 전염 경로 및 생태에 대한 갑론을박이 전 세계 석학들을 필두로 이뤄졌고, 유례없이 많은 스터디 케이스(study case)[1]들이 유명 학회지에 줄을 이어 발표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중대본'처럼 각국의 정부는 전염병에 대비한 시스템 구축에 매우 기민하게 반응했다. 이렇게 보면 매우 유연하게 코로나를 맞이한 것처럼 보인다. 대규모 연구에 발맞춰 정부 기관의 설립이 거의 동시에 진행되는 것 자체도 굉장히 괄목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한 폐렴을 코앞에서 마주하기 일보직전인 임상 최전방 응급실에서 근무자들은 막상 별 감흥이 없었다. 우리는 연구자도 아니고 정치인이나 의료 컨트롤타워도 아닌 직번 '293번'쯤 되는 고용된 의사였다. 상부에서는 대비책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아직 어떠한 지시나 결제된 사항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어제와 같은 오늘을 근무하고 있는 말단 의사와 일맥상통한다. 폭풍전야가 고요한 것처럼, 눈앞의 우한 폐렴을 우리는 새삼 쾌활하게 마주했다.


“우한이 어디지? 장가계 근처인가?”

“몰라, 장가계는 어딘데? 나 잘 몰라."

"넌 아는 게 뭐니."

"내일 나 오프인 거. 폐렴을 내가 알 바야? 일단 우리 병원이나 내 근무 때 안 오면 좋겠다.”

"어 나도 인정. 오면 또 시간대별로 뭐했는지 정리해서 발표하라 할 걸."


 딱 이 정도가 우한 폐렴이 한국에 상륙하기 직전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다.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생활의 반 이상이었으니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의욕도 없고, 바로 당장 눈앞에 쌓인 일을 처리하는 게 인생의 목표였던 때였다. 들어 본 적도 없는 우한 같은 해외 지역은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 언급되는 도시 정도의 임팩트가 담긴 남의 나라 얘기였다. 그래도 매스컴에서 유난스럽게 호들갑을 떤 덕분에, 그리고 전염병이라는 관련 분야의 정보라는 이유 덕분에 다른 주제보다 손톱만큼 더 귀에 '우한 폐렴'이라는 단어를 발랐고, 자연스럽게 우한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내 상상 속 우한은 청록빛 잔잔한 바다의 수면 위에 비쭉 솓은 높은 돌산에 나무 몇 그루 우뚝 서있고, 흐릿한 안개가 자욱한 그런 곳이었다. 이런 이미지를 같게 된 이유는 우한 폐렴의 매개체로 지목된 것이 박쥐였기 때문이었다. 전염병은 숙주를 통해 전파된다. 따라서 코로나가 증식하려면 숙주인 박쥐가 좋아하는 거주 환경이 최우선적으로 갖춰져야 했다. 이왕이면 동양풍의 수중 동굴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머릿속에는 정글이 펼쳐졌고, 그 상상은 이면지에 그대로 전사되어 종이 가장자리를 따라 나무가 빽빽하게 그려져 숲을 이뤘다. 나 정글 좋아하는데. 한번 가보고 싶다. 여행 가고 싶다. 의식의 흐름이 종잡을 수 없었다.


"우한 나중에 한번 가보고 싶다. 정글 같을 거 같아."
"음, 나는 패스. 난 호텔 갈 거야. 정글 안 가도 정글처럼 살 수 있어. 근데 박쥐를 먹어서 그렇다던데 왜 박쥐를 먹지?”

“우리도 시골장 가면 아직도 개고기 염소고기 이런 거 막 팔잖아. 그런 거지 뭐.”

“메르스 때 낙타 고기 먹지 말라고 했던 것처럼 박쥐고기 먹지 말라고 공문 내려오려나.”

"그거 진짜 웃겼는데."

"그러니까, 낙타고기를 어디서 구한다고."

"인터넷에 팔지 않을까. 구할 수 있을 듯."


여행으로, 정글로, 박쥐로, 음식으로. 상상 속 우한이 머리에서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대로 대화가 이뤄졌다. 편의점에서 파는 2개에 1700원짜리 핫바를 데워 나눠먹으며 딱 그만큼의 영양가를 갖춘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다른 주제가 머리를 채울 것이라 생각해서 가볍게 스몰토크 주제로 사용했던 우한 폐렴은 의외로 반짝 눈길을 끌고 끝나는 주제가 아니었다. '해외토픽 세상에 이런 일이' 정도로 올라오던 기사들이 사회면을 채우기 시작했고, 농도 짙은 의미가 담긴 기사로 바뀌어갔다. 그제야 WHO에서 판데믹 선언을 했던 게 피부에 서늘하게 전달되었다.


 진짜 전염병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내가 가장 최근에 마주한 전염병은 메르스였다. 그때 나는 아직 의사가 아니라 응급의학과 실습 학생이었고, 전염을 이유로 실습이 2주가량 취소되어 뜻밖의 방학을 맞이했으며, 그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응급의학과를 전공으로 택했다. 그러니까 사실 상 전염병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는 의사였다. 의대생이나 의료진이나 몸으로 직접 부딪히지 않는 이상, 이론과 임상은 결이 매우 다르다. 특히 전염병은 매년 발병하는 질병이 아니니 임상을 겪은 의료진 많을 수 없었다. 메르스 때 인턴이었던 선배들은 우한 폐렴 이후 방호복이니 N95니하며 제법 걱정하는 게 느껴졌지만, 먼발치에서 메르스를 구경한 나는 '코로나 = 박쥐고기'정도의 사고가 최선인 일반인에 가까운 이름만 의료진인 존재였다. '박쥐 고기라니. 앞으로 장 볼 때 원산지 좀 더 챙겨야겠다.' 정도로 전염병을 알지 못했던 내가 코로나에 대해 첨예하게 파고든 것은 그로부터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PS.

 퇴고를 하는 2022년 07월, 글을 올리기 무섭게 원숭이 두창과 코로나 재확산이 보건복지계 최고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앞서 말했지만 원숭이 두창 또한 WHO에서 주의 깊게 보고 있으며 다음 주 비상사태 선언에 대한 회의가 진행된다고 한다. 코로나 역시 감염력이 높았던 오미크론의 변이종이 다시 확산되면서 일 2만여 명의 확진자가 나타나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방역에 대해 촌각을 세우며 예민하게 대비하는 사람들은, 정치권을 포함하여 많지 않다. 사실 상 자연면역이 되었다고 보기엔 그 확산세가 너무 빠르고, 이미 미국과 유럽은 코로나의 재유행을 선포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반 이상 코로나를 겪었던 세대임을 고려했을 때 시민들의 전염병을 대하는 자세가 굉장히 시큰둥하다. 의료계도 마찬가지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인 지, 잘 모르겠지만 ‘설마 1차 코로나만큼 힘든 지침이 내려오겠어’ 내지 ‘하라는 대로 하면 언젠가 또 없어지겠지.’라는 생각이 과반을 넘는 것 같다. 의료진의 경우 특히나 감염학적인 근거 외의 값들이 진료 프로세스에 연관된 것이 보이고 있는데, 전에는 의학적 지식에 의거하여 격리 및 진료 프로세스가 결정되었다면, 지금은 ‘적당한 선’에서 의료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 적당한 선에는 경제, 정치, 금융 모든 이유가 조금씩 자리하고 있다. 물론 2019년에 비해 보건복지부에서 하방으로 전달되는 각종 공적 지시사항들이 말할 수 없이 빨라졌지만 질적인 면에서 이전의 과오를 과연 답습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전염병을 맞이했을 때에 대한 학습의 효과가 남아있음에도 정치부터 시민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굉장히 수동적이고 회의적이다. 13일 정부에서 거리두기에 대해 다시 중대발표가 있다고 하는데 있다 한들 지키는 사람이 얼마나 될 지, 상상속의 사회는 썩 코로나를 준비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 학습하지 못해 당했던 2019년 제1기 코로나 시대와 비교했을 때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습의 결과를 실천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지금 사회적 분위기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사람은 모름지기 망각의 존재라고 변명하기엔 망각할 시간이 너무 짧았던 지금, 편의에 의거하여 선택적으로 이익에 맞춰 전염병을 마주하고 있는 현재를 되돌아보아야 할 시간이다. 점점 더 불안해져 간다.


주석:

[1] 연구 결과를 공적으로 기록하는 방법 중 하나. 'Original article' 이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소위 '논문'이라는 연구결과를 기록한 저서라면 'Case study'는 'original article'보다 연구의 주제가 깊지 않거나, 연구를 뒤 바침 할만한 가설, 방법, 결과 및 결과의 해석이 충분 히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Case study"는 실제 환자의 사례를 바탕으로 질병의 생태나 치료 방법 등에 대한 결과를 공유하는데, 이런 사례들을 토대로 다른 연구들이 이뤄지게 된다. 초기 코로나의 경우, 아직 코로나에 대해 명확히 알려진 것들이 없어 일반화시킬 수 있는 부분들이 적었고, 환자 또한 폭발적이지 않았으며 공통된 검사 및 치료방법이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 사례별 증례 보고가 주로 이뤄졌다.


[ 사진 출처 : Photo by Yohann LIBOT on Unsplash ]

작가의 이전글 S1. 코로나 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