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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응급 Jun 30. 2022

S1. 코로나 일지

#1. 하이, 코로나

 # 2019년 12월


 어지간한 대형 병원은 그 크기만큼 여러 계층의 의사가 근무를 한다. 면허가 갓 프린트되어 나온 인턴부터 면허증 찾으려면 한참은 뒤적여야 하는 테뉴어(종신재직권)를 받은 교수님까지 말이다. 그만큼 의료에 대한 스펙트럼이 넓으며 저변이 두텁지만, 이 모든 걸 흔들 고난이 매년 같은 시기에 찾아온다. 4년 차 선배들이 국시(전문의 국가시험)를 치르고 오기 위해 약 한 달간 장기 휴가를 내고 병원을 나가는 연말 연초가 그때이다. 뒤도 안 보고 떠난 선배들이 담당하던 중환자 구역 근무 배정표에 본격적으로 후배들의 이름이 올라가면, 대학 병원에서 가장 아슬한 시기인 ‘보릿고개’가 도래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는 양적 질적 인력 감소와(전공의 마지막 연차는 국시를 대비하여 공부하기 때문에 가장 똑똑하고 빠릿한 엑기스 인력으로 간주되며, 그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자산이다) 함께 대대적인 연차 별 인계가 이뤄져 정신이 없기 때문에, 이런 생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 하는 '연말 연초에는 대학 병원을 피하라'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닌 것이다. 겨울에 대학 병원에 갔는데 누가 봐도 허둥지둥 정신없어 보이거나, 멍하거나, 꾀죄죄한 의사가 평소보다 많이 보인다면 십중팔구 그 시기이다.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나는 3 번째 보릿고개를 맞이함과 함께 치프(chief) 일을 물려받았다 [1]. 치프는 소위 '과 전공의 대표'로 일컬어진다. 의국 내 거의 모든 일에 대한 자치권을 가지며 대내외적인 간판이다. 정치하고 싶다고 마음만 먹으면 밑도 끝도 없이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자로 일부는 원하지만, 그만큼 책임과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 일부는 꺼리는 감투이다. 나는 전자에 가까운 후자였다. 다만 우리 과는 모든 4년 차가 번갈아가서 치프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번씩은 경험해야 했는데, 돌아온 여름 즈음 내 차례의 '치프'가 되기 바로 전에는 아지테이션(agitation, 불안감)이 생길 정도였다.

 어쨌거나 하긴 해야 하므로 굳센 마음으로 시작한 치프 일은 권력이 가져다준 달콤함도 꽤 있었지만(스케줄 조절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내 선에서 해결하거나 아랫년차에게 내릴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서류 작업이 줄었다 [2]), 여전히 감투는 무거웠다. 그런 나에게 책임은 피하되 적당한 달콤함을 누릴 수 있는 자리가 있었는데 치프가 아닌 '치프 연차'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본인의 치프 기간을 제외한 기간은 '치프 연차'라고 불리는데, 어느 정도 권위와 책임을 나눠가지며 의국 잡일에서 해방되기 때문에 꽤 자유로운 병원 생활이 보장되어 있었다. 이 자유는 근무 스케줄을 포함하여 의사 결정에 있어서 비교적 다른 연차보다 자유롭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그런 지 돌이켜 보면 이 마지막 연차에 우리는 가장 열적이고 다채로운 모습으로 병원에 종사했고, 사건들을 마주했던 것 같다.


 안타깝게 아직 그걸 깨닫기 전인 보릿고개 초반은 모두들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시기였고, 나 역시 영혼이 탈출하기 직전이었다. 전공의들은 근무가 끝나면 탈출하는 넋의 끝을 붙잡고 의국에 들어와 차례로 소파에 구겨져 있다가 어느 정도 기력이 충전되면 겨우 일어나 퇴근을 했는데, 낮 근무자 들은 어두워진지 한참 된 밤에, 밤 근무자들은 남들 점심 먹을 시간 즈음에 집으로 향했다.


"선생님 퇴근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어, 너도. 빨리 정리하고 가. 수고했어."

 

 밥이나 먹을래? 이런 이야기는 서로 입만 아팠다. 말의 억양이 없어져 문어체가 되었고,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사람이 극단에 몰리면 누구나 내가 우선이기 때문에 저런 말뿐인 겉치레에도 별로 마음 상하지 않았다. 퇴근도 고년차였으니 그나마 빠르지, 저년차 애들은 근무 후에도 작성해야 할 각종 기록들이 남아 있어서 더 늦게 퇴근할 것이다. 여유 있는 나도 밥을 거르고 잠을 자는데, 더 적은 쉬는 시간에 쪼들리는 후배들의 황금보다 귀한 찰나의 시간을 식사라는 사회생활로 뺏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입으로만 잘 가라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후배들이 안쓰러운 것도 잠시, 석자인 코를 들고 빠르게 집으로 향하며 편의점에 들렀다. 예전에는 편의점에서 칼로리 따져가면서 맛 대비 적은 칼로리의 식품을 고르느라 고민했다면, 이 시기에는 가격 대비 고 칼로리 식품을 고르느라 고민했다. 고른 것은 매운 진라면 작은 컵에 참치마요네즈 삼각김밥 하나에 우유 200ml. 먹고 자면 더부룩하지 않고 딱 좋은 양에 2000원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메뉴로 이 시즌에 애용하는 편의점 메뉴다.

 보릿고개 끝 무렵이 되자 중환자를 봐야 한다는 압박감도 그럭저럭 견딜만했고, 진짜로 친구들이랑 밥 약속을 잡을까 고민할 만큼 여유가 생기며 진짜 치프년차로써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동안 치프가 되면 해보고 싶었던 교육, 전공의 친구들과의 교류 등 작고 소박하지만 하고 싶었던 것들을 동기들과 이야기하며, 우리가 치프일 때는 어떤 사건 사고가 터져도 잘 헤쳐나가자고 결의를 다졌다. 그래도 그렇지 하늘도 참, 그런 생각했다고 바로 사건 하나를 만들어주셨다. 얼마나 걸릴지 그때는 예측 못한 일을 12월 마지막 날에 선물처럼 말이다.


 그날도 똑같은 12월 31일 그 해의 막날이었다. 원래 연휴 전날은 비교적 환자가 붐빈다. 아무래도 다음 날 여는 병원이 적어서 응급실에 방문율이 높아진다. 연말이라 과식하고 생긴 배앓이 같은 경환들이 늘어난 환자의 대부분이어서 바쁘긴 하지만 처리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나는 중환 위주로 보기 때문에 늘어난 복작스런 응급실 대비 여유로웠고, 환자 보는 사이에 숨 돌릴 틈이 날 때마다 누구보다 빠르게 책상에 널브러져 체력 안배에 집중하였다. 경환 구역은 바쁜가 본 지 타닥거리며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도와줄까 생각이 들었지만 '바쁨을 이겨낼 줄 알아야지!', 어련히 알아서 하다 안되면 연락할 것이라 믿으며 내 체력 회복에 집중하기로 했다. 보통 이럴 때에는 옆 동료들과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눈다.


"아니 나도 들은 건데, 내가 선생님한테만 말하는 건데~"

"어, 저 입 0.1mg인 거 아시죠. 깃털보다도 가벼워서 불지 않아도 날아가요."


 어차피 상대방도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라면, 이미 퍼지고 퍼지고 돌고 돌아 나한테 온 것이다. 비밀 보장 불가를 먼저 깔아 두고 들은 정보는 기억도 안 날 만큼 별 것 아니었지만, 졸음을 쫓을 만큼 흥분감을 주기엔 충분했다. 잡담과 일을 반복하며 시간은 수월하게 흘렀고, 점점 줄어드는 응급실 명단을 보며 올해가 이렇게 지나가고 또 시작하는구나 싶었다. 새벽이 짙어지면 잡담보다는 조용히 마가 뜨는 때가 있는데, 잠을 깨려고 휴대전화를 들어 인터넷을 켜 이것저것 둘러보았다. 연예면에는 매년 기사가 뜨더니 올해 별다른 뉴스는 없었다. 스포츠면과 사회면을 거쳐 무심코 ‘후베이성 우한에서 원인불명 폐렴 27명 환자 발생’ 했다는 중국발 기사를 클릭했다. 기사 타이틀과 대동소이한 내용의 짤막하고 깔끔한 기사였다. 자세히 안 읽었으나 겨울에 폐렴이 걸리는 게 뭐 큰 이슈인가 싶었다. 중국처럼 큰 나라면 지엽적으로 생기는 질병들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 말이다. 최근 읽었던 기사 중 몽골 내 흑사병이 발생했다는 기사가 뇌리를 스쳐가며 요즘 전염병 많이 발생하는가 보다 생각하며 스윽 넘겼다. 곧이어 틀은 유튜브의 먹방에 금세 눈과 마음을 빼앗겨 폐렴 따위에 대한 기사는 싹 잊어버렸다.


 그랬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위의 상황이 나의 코로나에 대한 첫 기억이다. 그 시간에 깨어있던 나처럼 빠르게 기사를 접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타이틀만 보고 지나쳤을 것이고, 읽는다 하여도 나처럼 그런가 보다 하며 별 의미를 두지 않고 기억에서 지워버렸을 것이다. 사스(SARS)나 메르스(MERS)가 기억난 일부 사람들 정도야 살짝 불안함을 느꼈을 테고,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그중에서도 소수였을 것이다. 우한 폐렴이 새 이름인 COVID-19을 달고 일으킨 변화에 휩쓸려 불과 2년 만에 달라진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처음은 모두에게 조용히 다가왔다.


PS.

 왜인지 모르겠지만, 처음 기사를 본 순간이 매우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당시 전염병을 공부하고 있었던 것도, 원래 전염병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던 게 기사의 내용보다는 '이런 내용을 이 새벽에 기사로 띄우나' 하는 생각이 앞섰던 것 같다. 연말연시에 쓸 다른 기사거리도 많았을 텐데 말이다. 그 이후로 사회나 국제면을 더 자주 보는 습관이 들었는데, 최근 들어 의료, 환경 분야보다는 정치, 사회 등 이전의 모습으로 많이 회귀하는 모습이 보인다.

 최근 UN에서는 2050년이 인류사회의 끝일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지구온난화를 필두로 기후변화, 식량부족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볼 수 있다 시피, 전 세계적으로 고심해야 할 문제가 생겼을 경우 각국의 이익을 위한 폐쇄적 정치보다 협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류는 아니겠지만, 앞으로 다가올 세계 단위의 의료와 환경 문제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항상 인식하고 소양을 기를 수 있도록 다양한 매스컴에서 관련 창구를 만들고 꾸준히 다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2.08

- 포털검색 플랫폼 D사 및 N사에서 '코로나 19현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첫 화면 링크를 만들어 두었다. 눈에 더 잘들어오는 것은 D사이지만 꾸준히 노출되는 것은 N사로 장단점이 있다. 어쨋거나 그간 코로나 관련 이슈와 뉴스를 모아둔 공간이 생겨 파악하기 한결 수월해졌다.

- 질병관리청 역시 검색하면 '코로나19 예방접종' 이라는 관련 플랫폼이 본 홈페이지보다 더 위에 링크되어 있다. 이전에는 공공기관 및 의료인용 보도자료나 '코로나백서'등의 정보를 위하여 접속하였지만 지금은 일반인이 보기 쉽고, 예방 접종 위주로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재택치료 및 자가 진단, 격리 등이 코로나 경증 확진자 치료의 근간이 되는데 미디어 및 인터넷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


주석 :

[1] 우리나라 전공의 수련 시스템은 대부분 4년 제로 구성되어있으며(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등 몇 개의 과는 3년제로 개편되었다), 각 과의 협회 차원에서 제시간 연차별 수련 내용과 과정을 따른다. 의료 특성상 도제 시스템이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수직적 구조를 보이며, 1년 차와 4년 차 구성원 간 능력 및 권력 차이가 크다. 특히 4년 차는 여러 매스컴에서도 보였다시피 '치프(chief)'연차라는 별명으로 불려지며, 학과 안에서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2] 치프의 권력과 개입 범위는 각 과, 병원, 의국 별로 매우 다양하여 확정 지을 수는 없지만 교육 외에도 의국 미화, 스케줄 짜기, 회의 참석 등 여러 가지 일을 도맡아 한다. 모든 일을 다 치프가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전공의 내 최종 결정권자라는 의미로, 필요시 다른 전공의들에게 일을 배분하여 진행한다.


[사진 출처 : Photo by Hush Naidoo Jade Photography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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