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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연말 나기

1년을 정리하면서

by 포테토칩

작년 11월말, 눈이 많이 와서 결항될까 맘 졸이던 비행기를 타고 16간만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입국하여(그때 전쟁때문에 돌아가느라 16시간정도 걸렸음) 진 빠진 고양이를 데리고, 꾸역꾸역 브레멘에 도착한 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그때는 이것저것 정신없이 연말을 보냈는데, 올해는 (고작 1년이지만) 그래도 잘 정착했는지, 여유로운 연말을 보낼 수 있게되었습니다.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연말은 독일뿐만 아니라 여러 유럽국가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연휴입니다. 작정하고 노는 것이죠. 그래서 많은 독일 도시들은 11월 말부터 시내(Mitte, 중심부)를 중심으로 각종 크리스마스 관련 상점이 설치됩니다. 시에서 입점하는 상점들을 하나하나 관리까지 하는게, 한국 지역축제를 닮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근데 조금 더 컨셉에 미쳐있는..)


브레멘은 11월 24일부터 12월 23일까지 한 달간, 열립니다. 다른 곳보다 유명한 편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외국인뿐만 아니라, 독일 사람들도 많이 구경 옵니다. 사실 브레멘 자체가 독일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관광지입니다. 지방 도시치고 작지 않고, 건물들도 잘 보존되어 있고, ‘브레멘 음악대‘ 라는 도시로 평생 울궈먹을 수 있는 테마도시(실제로 동물들로 구성된 음악대는 브레멘 오지도 않음)로 볼거리가 많습니다. 이번에는 저도 연휴기분 좀 내려오,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사기 위해 마켓 돌아다니기로 했습니다.


브레멘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크게 2곳입니다. 시내 중심의 광장에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 그리고 브레멘의 강가를 따라 열리는 "Schlachte-Zauber(슐라흐테의 마법)"입니다. 마켓은 크리스마스 관련 오너먼트, 장난감, 장식품, 선물, 간식거리(츄러스, 견과류 등) 등 크리스마스느낌이 물씬나는 테마라면, "schlachte-Zauber"은 중세 독일의 테마로 (원래 도로가 맥주집을 비롯한 음식점이 있는 곳이라 그런 지) 술과 먹거리(폼메스, 커리부어스트 등)을 주로 취급합니다.


"크리스마스 마켓"

입구부터 전시되어 있는 음료를 파는 가게

크리스마스가 왔다는 것은, 글뤼봐인(Glühwein)을 길거리에서 파느냐, 안 파느냐로 알 수 있습니다. 길을 가다 보면 달콤한 데펴진 와인향이 흘러나오는데, 추운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안 마실 수 없습니다. 뭐, 어느 집을 가더라도 맛은 비슷비슷한 것 같아요. 이때는 개장한 지 별로 안된 오전이었고, 아직 에너지가 남아있을 때여서, 아직 음주를 시작하진 않았지만, 사람들은심심찮게 술을 들고 돌아다닙니다.

퇴근하는 3-4시 이후가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서 빈 책상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놉니다(앉아 마실 곳은 거의없음). 다른 때, 노상에서 술을 먹는건 훌리건들이나 마약중독자들이 하는 짓인데, 이맘때쯤이면 다들 길에서 술 한잔씩 하는 일상에 관대해집디다. 평소에는 점잖던 사람들이 다들 기어나와 북적이는 연말 분위기를 만드는 게 재밌습니다. 이런게 한달을 쭉 갑니다.


중간이 디스코 팡팡 같은 돌아가는 놀이기구인데, 그거랑 관람차는 타면 사람 죽을 것 같이 굉장히 빠르게 움직임.

어른들만 즐길 수는 없죠.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처럼 긴 연휴만 되면, 저런 이동식 놀이기구들이 하나 둘 설치되는데, 진짜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밤에 조명이 켜지고 뒤의 성당 건물과 함께 보면, 예쁘긴 합니다.

놀이 기구들은 간단한 회전목마, 관람차, 빙글빙글 도는 팽이 같은 것들이 설치되는데, 아이들이 꽤 많이 탑니다. 한 번에 3,5유로 정도인데 옆에서 구경만 했는데도 '저러다 애 하나 죽겠다' 싶을 만큼 빠릅니다. 애들 머리가 양 옆으로 쏠리고 난리 나요. 깔깔대면서 웃는 걸 보니, 확실히 재밌어보이지만 가끔 한국만큼 안전불감증이 팽배한 나라 같아요…

애기들을 위한 '실내 놀이동산'. 그냥 빙글빙긍 돌아가는 놀이기구임.

이런 완전 어린이를 위한 놀이동산형 카페도 있고(일종의 키즈카페형. 놀이기구가 중심, 가장자리를 따라 보호자가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습니다), 다른 도시에는 '산타가 운영하는 DJ Pub', '감성다방' 테마의 술집과 카페도 있습니다.

일단 저는 집을 장식하기 위한 장식품과 선물용 장식품을 사러 왔기 때문에, 놀이기구 구경은 그만하고 발을 옮겼습니다. 트리 같은 큰 장식은 할 수 없고, 작고 예쁜 소품이 있나 보러 왔는데, 항상 지나던 길가 지하에 상점하나가 있어 들어가 봤습니다.

도자기 제품과 소품을 팔던 곳. 눈사람이 너무 귀여웠음.

직접 운영하는 공방에서 만든 작품들을 파시는 것 같은데, 예쁘지만 아쉽게도 예산 초과로 구경만 하고 나왔습니다.

이런 식으로 상점, 간식 파는 곳, 술 파는 곳이 섞여서 주욱 늘어져 있습니다. 골라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이제 마켓의 중심부로 들어가 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음식 종류와 맛은 대동소이합니다. 어디가 더 싸고 더 비싸고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상점은 가게마다 취급하는 물품들이 꽤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공장에서 떼오는 것 같지만, 품목이나 디자인이 많이 겹치지도 않고, 직접 만든 제품들도 많습니다. 저의 목표는 "Räuchermann"이라는 독일 전통 장식품이었습니다. Rauchen 은 담배를 피우다는 뜻이라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쉽게 아로마초 홀더예요. 연기가 담배처럼 뿜어져 나오도록 디자인되어 있는 독일 전통 인테리어 소품입니다. 물론 오스트리아에서도 동일하게 ‘우리 전통’이라고 말한다는 걸 전해들었습니다. 뭐, 출신이 중요한가요. 예쁘기만 하면되죠.

향을 피워서 몸통 안에 넣으면, 아저씨의 입을 통해 연기가 퍼집니다. 출처 : sikora-weihnachtswelt.de/

이런 아저씨를 원했는데,

갑자기 크리스마스에 오토바이 아저씨가...

이런 아저씨밖에 없더군요... (예쁘지 않잖아)

물론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만, 비싸길래 발품을 팔아보려고 했던 것인데, 이 제품 말고는 질이 조잡하거나, 너무 비싸서 영 구매욕이 안듭니다. 결국 계획을 바꿔, "Räuchermann"은 직접 DIY로 만들고, 다른 것을 구경해 보기로 했습니다. 연말이라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선물을 보내려고 계획했었거든요.

이런 벌의 밀랍왁스로 만든 양초들도 있었고 (달큼한 꿀향이 퍼지고 있어서, 선물용이나, 수면용으로 좋아 보임),

이렇게 대놓고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는 장식품과 오너먼트를 파는 곳들도 있어요. 확실히 디자인과 작은 소품의 마감은 한국이 훨씬 좋아서, 눈에 차질 않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소품은 중국제가 많듯, 이곳은 체코제가 많습니다. 하지만 마감이 많이 안 좋아요).

그래서 다시 마음을 돌려 '컵' 사기로 했어요.

Schlachte-Zauber로 가자!


"Schlachte-Zauber"

슐라흐테는 브레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베저강을 따라 있는 거리의 이름입니다. Schlagen(때리다)라는 어원에서 발생한 것인데, 예전부터 커다란 항구였기 때문에 여러 침입자들과 싸움이 많이 일어난 곳이라서, 또는 (때릴 수 있는) 노예를 사고팔았던 곳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어요.

중세시기에 유래한 이름이라 그런지, 컨셉이 중세입니다.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귀염뽀짝한 '크리스마스 마켓'과는 다르게 중세시대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민속촌 같긴 한데, 어딘가 묘하게 무섭습니다.

„슐라흐테의 마법(Zauber 가 마법이란 뜻)"이라는 키워드를 가진이 곳은 술(글뤼바인), 먹거리(카레부어스트, 빵 등 식사용), 사주(별자리 같음) 카페 등이 강가를 따라 느러져 있습니다.

'마법의 물약‘. 포션병에 술을 넣어서 팔고 있었음.

확실히 '크리스마스 마켓'보다는 테마놀이동산에 온 듯한 느낌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점심 즈음이라서, 사람이 없었지만, 해가지는 3-4시만 돼도, 사람들이 한 손에 다들 글뤼바인을 들고 어슬렁 거리면서 구경을 하곤 합니다. 그러다 흥이 더 오르면, 옆에 있는 가게에 들어가서 술판을 벌이기도 하고요.

이 분은 멀끔하게 입었는데, 다른 분들은 좀 무서울 정도로 날 것의 중세복장을 입고 있었음.

우리가 컵을 사러 간 곳은 바로 '간이주점'이었습니다.

간이주점. 알코올 / 무알코올로 나눠져 있지만, 대부분 Glühwein(데운 와인)과 Aperol(데운 사과주)에 취향 따라 럼, 위스키 등을 추가해서 마심.

관광객들은 강변을 따라 주욱, 늘어선 주점에서 '컵 + 술'을 함께 살 수 있습니다. 계산할 때 pfand라고, 작은 동전모양의 코인을 주는데, 다 마시고 컵과 함께 코인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pfand를 않으면 컵을 가져가도 됩니다. 지역마다, 해마다 다른 디자인의 컵들이 나오기 때문에 이 컵을 모으는 사람들도 꽤 됩니다. 크리스마켓의 상품들 중, 브레멘을 의미를 담은 제품이 많이 없어서 고민하다 결정한 기념품이었습니다. 브레멘이라고 쓰여있진 않지만, 'Schlachte'라고 쓰여있는 컵을 얻을 수 있고, 술도 마실 수 있으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렇게 한나절을 밖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왼쪽이 pfand 동전. 컵은 이 사진밖에 없음.

물론 크리스마켓은 밤에 가는 게 훨씬 재밌습니다. 하지만 추위 + 안전 문제로 저는 요즘 4시 이후면 밖에 나가질 않아요. 그래도 기차로 한 시간밖에 안 걸리는 옆마을, 함부르크에서는 '하늘을 달리는 썰매' 쇼도( 유투브보니까 진짜로 달리는 듯 합니다)있다는데, 주말을 노려서 다녀올 예정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11월 28일이 딱, 독일에 온 지 1년 되는 날입니다. 그동안 브레멘에서 뭔가 사부작거리면서 하다 보니 벌써 일 년이 지났습니다. 금전적으로는 한국의 삶이 더 좋았겠지만(아직도 일을 하고 있었을테니까), 그 외의 것에서 굉장히 만족하는 독일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내년엔 일을 시작하고, 그 다음 해에는 영주권도 노려보고, 독일 생활에 잘 스며들 때까지 몇 년은 훨씬 더 걸리겠지만, 올해처럼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훌쩍 적응해 있을 것 같아요.


'삶이 지루해져서' 독일로 가자는 생각을 가졌을 당시는 매일이, 매년이 똑같아서 단조로움 삶이 지겨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울 증세도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2026년은 정말로 할 게 너무 많아서 기다려지는 해입니다. 연초에 자동차도 사야 하고(12월에 면허 교환 잘 되면), 그 자동차로 중부도시 탐방하면서 다음에 살 도시를 천천히 탐색해야 하고, 여유가 된다면 다른 나라도 방문해 보고, 정식 의사면허증(Approbation) 나오면 면접보고 취업비자를 신청할 겁니다. 그러고 나면 하반기에 집도 사고, 이사하고, 제때 무사히 취업 비자가 나온다면 드디어 일도 하겠죠.

어른 되고 나서 이렇게 새해가 기다려지는 것은 오랜만인 것 같아요. 브런치는, 제가 나중에 어떻게 독일을 왔는지 기록하고, 저와 비슷한 길을 걸으실 미래의 독일 이민자분들께 도움이 되고자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올 때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고생했거든요. 지금은 일단 1차 목표(시험 합격하기)는 달성한 상태라, 내년에 다음 목표(직장 구하기)를 이루고 또 다른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연말 잘 보내시고, 간간이 재밌는 일상생활글과 함께 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컵만으로는 아쉬워서, 문 앞 지킴이로 사 온 조그만 크리스마스 소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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