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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먹을거리

일단 이제 할 일이 없으니 먹을 거라도 잘 먹어보자.

by 포테토칩
독일음식? 맛없다.
맥주랑 감자와 소시지가 끝인 나라.
옆나라 프랑스와 대조될 정도로 절제한 식생활.

이곳에 와서 외국인 학생들을 막론하고, 독일인들과 대화 시 아이스브레이킹용으로 하기 쉬운 주제인 독일 먹거리는, 항상 위와 같이 마무리지어집니다.

애초에 먹을 것을 기대하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생각보다 좋은 퀄리티에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하지만 1주일 안 갑니다. 여행으로 오신 분들이라면 해 먹지 않는 이상, 주로 외식을 하거나 마트 등에서 산 냉동식품, 반조리식품을 많이 드시게 될 텐데, 맛은 나쁘지 않지만 일단 짜요. 짜거나, 기름지거나, 달거나. 셋 중에 무조건 하나는 들어갑니다. 그래도 독일 나름의 특색있는 식문화도 많습니다. 오늘은 '독일의 먹거리'에 대해서 말씀드려보려고 합니다.



REWE라는 이마트 같은 대형매점에 있는 빵 섹션. 저런 식으로 한 면이 다 빵입니다. 출처 : IMAGO/Martin Wagner

Brot(큰 빵, 썰어먹어야 하는 빵), Brötchen(작은 빵. 단어 끝에 -chen 붙이면 귀엽게 부르는 게 됨)은 이 나라의 주식입니다. 한국말로 흔히 부르는 밍빵, 멘 빵을 파는 베이커리는 어느 코딱지만 한 도시에 가도 있고, 커다란 마트에도 항상 빵 코너는 있습니다.

농담으로 '너 뇌가 빵이냐? (상대방이 멍청한 짓하면 하는 옛날 독일 욕)'도 있고, '독일 어린이들은 딸랑이나 쪽쪽이 말고, 딱딱한 빵을 장난감처럼 손에 들려주면 하루 종일 침으로 녹여먹느라 조용해진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만큼 빵을 많이 먹습니다.

식사빵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독일에 살기 나쁘지 않아요. 식사빵 종류도 호밀빵(Roggenbrot), 혼합빵(Msichbrot), 통곡물빵(Volkornbrot) 등, 들어가는 밀이나 곡물에 따라서 수십 가지이고(법적으로 통곡물의 함유량에 따라 이름이 달라져요), Brezel(프리첼), 라우겐(Laugen) 같이 다르게 발효시킨 빵, 아니면 모양에 따라 Rosebröchen(장미꽃 모양), Weltmeisterbrot(여러 곡물이 있는 빵. 이름의 유래는 분분한데, Weltmeister(월드컵이라는 뜻)에 여러 인종이 모이는 것처럼 여러 종류의 곡물이 붙어있다는 설 / 월드컵 때 많이 먹었다는 썰, 두 개가 유력합니다) 등이 있어요.

Weltmeister. 위에 붙은 곡물은 참깨 / 대마씨 등 여러 가지입니다. 맛은 그냥 맨 빵맛(빵 안 좋아함) 출처 : 핀터레스트

빵 가게에 가면 이런 '식사빵'이 80%이고, 나머지 20%는 크로와상, 디저트빵(타르트 / 케이크 / 초코 바른 빵) 등인데 놀라울 만큼 그냥 그렇습니다. 옆나라가 제과제빵의 나라, 프랑스라서 '프랑스에서 배워온 제과제빵'이라고 쓰여있는 빵집에 가도 그냥 한국 베이커리랑 비슷합니다. 10군데 중 1군데가 '와, 진짜 맛있다.' 정도입니다. 에센이나 뒤셀도르프처럼 일본인이 많은 동네에 가면 일본 제과제빵집이 있어서 단팥빵, 멜론빵 이런 것들도 곧 잘 판다던데, 브레멘에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실 '빵'에 대한 자부심은 독일인도 프랑스인만큼 많많치 않습니다. 특히 '사워도우'는 꽤 많은 사람들이 애완동물처럼 길러서(!) 직접 빵을 오븐에 구워 먹는 걸 즐기고, 집마다 '우리 할머니 비법 레시피로 만든 파이/타르트/케이크'이라고 부르는 게 있을 만큼, 케이크류는 거의 안 사 먹고 만들어 먹는다고 해요. 키트도 잘 되어있는 편이고요. 그래서 유럽이라고 빵을 기대하고 독일에 온다면 의외로 많이 낙담하고 가실 수 있지만, 맨 빵 - 심심하니 그냥 꾸역꾸역 먹게 되는 빵을 좋아하신다면 가격도 싸고, 맛도 좋아서 잘 적응할 수 있습니다.


친구가 놀러 왔을 때 접대할 수 있는,

독일 전통요리


브레멘 크닙. 출처 : https://www.bremer-gewuerzhandel.de/

부모님이나 친구가 놀러 왔을 때, 대접해야 할 일이 있다면 골머리가 썩기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딱히! 먹고서 미쳐 돌아버릴 만큼 맛있거나, 특색 있는 독일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거든요. 브레멘 전통음식이라고 불리는 음식인 크닙(knipp)이 있긴 한데, 그냥 간 고기를 양파, 향신료랑 버무려서 기름에 튀기듯 부친 듯한 커다란 동그랑 땡과 불고기 중간계의 음식이 있습니다. 간 구운 맛이 살짝 나는데, 사진으로만 봐도 예상할 수 있는 그 맛입니다.

굳이, 독일 와서 '문화체험을 목적으로 이건 먹어보면 좋겠다' 정도로 추천해야 할 만한 독일요리가 있다면 카레부어스트(소시지 구이 + 카레향신료가 포함된 소스를 끼얹은 간식)이나 슈니첼(서양식 돈가스. 경양식 왕돈가스랑 비슷한데 튀김옷에 좀 더 소금이랑 향신료 간이 들어가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맛있게 먹음), 학센(돼지무릎고기 삶고 튀긴 것. 족발이랑 비슷하다고 하는데 족발을 한 번 더 튀겨서 기름지고 탱글한 느낌), 폼메스(감자튀김 + 여러 가지 소스. 소스는 마요소스가 진리. 소스를 고를 수 있는 곳에 가면 야피(Japie Soße, 일본식 매콤소스)소스가 있음. 미묘하게 고추냉이 섞인 듯한 머스터드+마요네즈 소스이지, 청양마요 아님. 개인적으로 비추)가 있어요.

저는 위 음식들을 “꼭 먹어"라고 추천드리지 않습니다만, 저 중에는 카레부어스트가 극호라고 했던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소시지 맛'이라고 했는데, 우연히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독일에 있는 3일 내내 먹었다는 한국분도 보았습니다.


이런 고로, 저는 누가 한국에서 오면, 음식의 맛보다는 분위기를 더 보는 축입니다. 아예 예약해야 하는 고급 레스토랑(브레멘은 Rathaus 가 대중적입니다. 한 끼당 20-30유로고 음식도 다양한 독일지역 음식. 부모님 모시고 가기 좋음), 강변의 맥주 음식점(Paulaner, Beck Haus처럼 맥주제조사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생맥주와 안주 먹기, 중화/아시안 레스토랑(Asian Food 가 채식과 건강에 좋다+외국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꽤 사람들이 자주 갑니다. 길거리에 있는 종이박스에 아시안 음식 담아주는 곳 말고 '레스토랑'으로 찾아가세요. 저는 브레멘서 인생 탕수육 + 마파두부집 찾았습니다.)이 제가 추천할 만한 테마들입니다. 어차피 음식은 거기서 거기. 여행 오시는 분이라면 2시간만 꾹 참고 국경 넘어서 프랑스, 조금 더 가서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맛있는 거 드세요.


맥주

확실히 맛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한국의 맥주가 물처럼 꿀꺽꿀꺽 마셔도 괜찮을 정도로 맑고 깔끔하다면, 독일 맥주는 확실히 향과 맛이 개성이 브랜드마다 강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의 생맥주보다 독일 맥주가 더 입에 잘 맞습니다. Krombacher, Paulner, Erdinger, Becks 한국인들도 알 만한 지역맥주도 정말 많고, 그렇지 않은 맥주도 많은데, 잘 모르겠으면 '사람 얼굴 들어간 맥주' 고르시면 평타 이상 합니다.

잘 고른 예(왼쪽 핑크 테두리)와 그렇지 못한 예. 출처 : 각 회사 홈페이지

물론 싼 값에 많이 마시기 위해서라면 저렴한 맥주를 드셔도 좋지만, 모든 맥주가 거의 1 Euro 안팎, 싼 것이 0.55 Euro 정도라서 한국돈으로 6-700원 정도 차이 이기 때문에 그냥 맛있는 거로 많이 드세요.

물론 저렴이 맥주가 취향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인공적인 맛이 나는 경우가 많아서, 차라리 그럴 거면 '러시아 마트에 가서 싼 러시아 맥주'를 마시는 게 훨씬 만족도가 높습니다.

독일 맥주 다 드셔보시고 질릴 때쯤이 된다면, 러시아 마트 추천합니다. 모종의 이유로 최근들어 이민 및 난민자가 증가한 독일에서는 이제 터키, 러시아, 중동음식점이나 마트는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러시아는 보드카의 나라답게 맥주도 분명히 5% 이내라는데 맛이 진하고 7% 처럼 느껴집니다. 참, 라들러라는 독일 맥주 종류도 있는데 과일주스같이 상콤한 맛에 알코올도수도 0~2% 내외라서 여성분들에게 추천합니다(전 안 먹어봤어요).

겨울에는 Glühwein 같이 데워먹는 술이 유행입니다. 뱅쇼랑 똑같은데 이름만 하나는 프랑스, 하나는 독일일 뿐이에요. 기호에 따라 거기에 럼, 위스키 등을 추가해서 먹기도 합니다.

그 외에 술도 한국보다 먹는 재미가 많습니다.

와인도 10~20 Euro 면 기분내고 싶을 때 적당히 고급진 맛을 가진 와인을 고를 수 있습니다. 혹시 마트에서 3-4 Euro 보다 싼 와인을 판 다면 요리용일 가능성이 더 높아요. 진짜 맛없으니, 그것만 잘 피해보도록 합니다.

위스키도 주류세가 낮다보니 어느 주류샵을 가도 한국보다는 저렴하게, 다양하게 구입할 수 있어요. 술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독일이 아니더라도 유럽 어느 국가를 가셔도 좋은 추억을 남기실 겁니다.


제철요리

위에서 신랄하게 '독일 음식... 추천하지 않아'라고 돌려 말했지만 어디까지나 '외식'을 생각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외식물가도 비싸고, 해산물이나 이색음식(여기 사람들에겐 아시안 이겠죠)이 아니면 굳이 사 먹지 않고 ‘해’ 먹습니다. 그래서 오후 3-4시경 마트에 가면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다들 그날의 요리를 위하여 퇴근하고 장을 보러 온 것이죠.

흥미롭게도 독일은 집집마다 냉장고가 작습니다. 양문형 냉장고에 김치냉장고가 기본인 한국과 달리 독일은 작은 소형 냉장고로 한 가족이 먹고삽니다. 우리는 배추, 짠지 등 '오래 보관해서 먹을 수 있는 반찬류'가 발달한 식문화이기도 하고, 다양한 식재료를 재철로도 먹고, 말렸다가 시래기처럼 나중에 국 끓여 먹기도 하고, 냉동실에 뒀다가 나중에 조리해서 먹기도 하고 각양각색으로 먹을 방법이 넘쳐나는데, 여기 사람들은 '그날 신선한 재료(특히 야채)를 먹을 만큼만 사서 그날 요리해서 먹는' 식문화가 강하다고 해요. 그래서 마트 가면 통조림 하나, 사과 하나, 빵 한쪽, 맥주 하나. 이렇게 사서 가는 사람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어요.

야채도 조금씩 조금씩. 개인이 먹기 좋게 포장되어 있거나,
아예 이런 식으로 가족 단위로 그날 요리할 수 있게 팔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철 음식이 독일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중요합니다. 서로 안부물을 때, 처음 본 사람과 이야기 나눌 때 '너 여름인데 Spargel(슈파겔, 하얀 아스파라거스) 안 먹니?', '딸기가 제철이야! 맛있더라고.' 이런 대화를 할 수 있으니까요.

기본적으로 과일은 대부분 다른 유로국가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바나나 / 사과 / 오렌지 등은 상시 구비되어 있지만, 가을 즈음이 되면 더 다양한 사과를 만날 수 있고, 여름이면 복숭아와 수박, 겨울에는 베리류가 나옵니다.

같은 사과인 듯 다 다른 사과. 과일 많은 것은 우리나라랑 비슷해요.

오늘 맛있었다고, 내일 과일이 또 맛있는 게 아니고(놀랍게도 맛 편차가 큼), 오늘 알배추가 있다고 내일도 알배추가 입고될 거란 보장이 없기 때문에, 좋은 식재료가 보이면 사야 합니다. 그래서 제철에 그때의 과일이나 야채, 식재료를 구입해서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야채류가 우리가 먹는 향채소(깻잎) 거의 없다는 점(파슬리, 로즈메리, 딜 같은 것은 많지만 우리처럼 반찬으로 해 먹지는 않아요), 고기 부위가 다양하지 않다는 점(목살, 뱃살, 등살, 필렛, 다릿살 정도, 뼈의 유무 정도로 나뉩니다. 세분화해서 사려면 터키나 러시아 마트가시면 돼요), 과일이 한국만큼 당도나 과즙이 많지 않다는 점(저는 독일 과일이 덜 달아서 좋긴 한데, 처음 먹으면 맹맹합니다)이 아쉽지만, 또 적응합니다.


식사의 구성

재료를 샀으면, 요리를 해야겠죠. 그런데 이 식사의 구성이 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독일 친구들 밥 먹는 거 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아침은 바쁘니까 오트밀, 시리얼, 우유나 커피 같은 음료로 때우고 점심은 빠르게 간단하게 먹기 위해 샌드위치나 집에서 해온 파스타, 빵류를 먹습니다.

그러면 저녁에 맛있게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전형적인 독일저녁이란 뜻, Deutschabend(도이치 아벤트)의 구성은 '슬라이스 한 빵 + 치즈 또는 스프레드 + 햄'입니다. 이게 끝이에요.

이런 식습관의 유래도 특이한데, 어쨌거나 저녁식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이 주로 준비해 왔습니다. 하지만 독일도 점점 일을 하는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일도 하고 음식도 하라는 것은 너무 힘들어!'라는 인식이 생기게 되었고, 가장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식사로 대체하게 되었다는 속설이 있어요. 그게바로 빵 + 치즈 + 햄의 구성인거죠.

우리는 '더 든든하게 먹고 싶어? 그럼 네가 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해. 저녁을 대충 먹고 실망해 봐야, 여성이 집안일을 하는 고충에 대해서 남자들과 아이들이 이해한다니까?(실제도 독일인이 말해줌).

어쩌면 조금 극단적인 여성인권운동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불평없이 잘 먹습니다(먹는데 큰 의미를 두지 않는사람의 비율이 많은 듯). 그리고 바이에른 지역(음식자부심 높음. 실제로 맛있기도 함) 을 빼고는 요리법도 결국대동소이해요. 몇 권의 독일 요리 레시피 책을 뒤져보아도, 파스타 / 감자요리 / 고기 스튜나 오븐구이 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향신료, 양념도 분명히 판매하는 곳에는 수백가지 양념을 파는데 대체적으로 소금, 설탕, 후추, 파프리카나 허브류를 많이쓰지 나머지는 잘… 안쓰는 것 같아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독일인한테 물어봤을 땐 ‘글쎄… 그러게…’ 라는 대답을 들었어요).


하루 세끼 다 음식 해 먹으려고 하니, 못하는 요리가 없어집니다. 지금은 하루에 한 끼정도만 제대로 요리를 하지만, 짜장면, 짬뽕, 탕수육, 초밥, 회 뜨기는 이미 마스터했고, 조만간 휴롬사서 두부 만들고, 팥 쒀서 찐빵 만들 거예요.

요리를 못하시는 분도, 독일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아주 시골동네 아니면 대부분 아시안 마트가 있으니 거기서 사 드셔도 돼요. 아니면, 1 인식 간편 요리도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요플레 + 과일, 간편 스파게티 + 음료 조합으로 식사하는 것 같아요.

1 인식 간편 요리. 냉장 또는 냉동 섹션에 엄청 많습니다. 건강해 보이진 않아요. 대신 맛있겠죠.

독일에서 먹을 수 있어서 좋은 것과

못 먹어서 슬픈 것

일단 유제품류가 많고, 또 맛있습니다. 치즈류는 2일마다 열리는 동네 장터에 전문 판매원들이 오기도 하고, 아예 치즈가게가 있을 만큼 좋고 다양한 치즈들이 많아요.

하지만 놀랍게도 여기서 먹은 유제품 중 가장 입맛에 맞았던 것은 러시아 마트에서 산 러시아 치즈와 아이스크림입니다. 아이스크림은 꼭, 러시아 아이스크림(아무거나 다) 시도해 보세요.

그리고 소시지의 나라답게, 소시지가 정말 많고 다양합니다. 맛도 있고, 숯불구이(5~7월이면 다들 가족 / 친구단위로 피크닉 가서 고기 구워 먹음)해서 먹으면 천상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독일에서는 도저히 먹을 수 없어, '한국에 가서 꼭 먹어야지' 했던 음식은 회. 생선, 어폐류를 포함한 모든 해산물입니다.

독일은 법률상 '살아있는 물고기를 운송'하는 게 법적 제재가 심하다고 들었어요. 기술에 문제인 지, 위생상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아있는 채로 내륙까지'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활어회를 먹기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겨울이 되면 손질해 둔 연어를, 그때그때 오는 트럭 생선가게에서 저렴하게 살 수 있지만(키로 3만 원 정도), 연어, 참치(아예 초밥용으로 손질해서 파는데 비쌈), 고등어(생물고등어. 직접 회 떠야 함) 외의 생선들은 회로 먹기 힘들어요.

일식 초밥집이나, 초밥집에 가면 그나마 흉내 낸 음식들이 나오는데, 작정하고 비싸거나 일본인이 운영하는 것 아니면, 대부분의 경우, 회는 연어, 참치, 새우에 치우쳐져 있고, 튀김, 야끼소바, 두부조림 등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놓습니다. 4-5군데를 가봤지만 모두 만족스러운 초밥과 초밥은 먹을 수 없었어요. 베를린, 함부르크 같이 큰 곳에 가면 있으려나 모르겠는데 - 항구도시인 함부르크에서도 만족할 만한 초밥집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초밥이 아니라 회를 먹고 싶은 거니까... 그냥 생선 종류 이름 알아가서 사 와서 회 뜨는 게 맘 편합니다(여기와서 고등어봉초밥 마스터함).


그 외에도 시래기 국밥, 열무김치, 깻잎쌈(장아찌류는 다 팜), 단팥빵처럼 먹고 싶은데 진짜로 못 구해서 못 먹는 음식들이 꽤 있어요.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시래기는 그린콜을 말려서 먹으면 얼추 비슷한 맛이 나고, 열무김치는 그냥 무를 길러서 열무를 만들면 되고, 깻잎은 나중에 아마존에서 모종사서 심으면 먹을 수 있습니다.

순대국밥? 감자탕? 러시아 마트에서 돼지 간, 심장, 귀, 혀도 파는 마당에 못 끓일 것도 없죠.


어쨌든, 독일에서 먹을 것이라는 건, 정말로 생활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배달음식이 없는 게 아쉽지만(있어도 그냥 그럼),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날그날 맛있는 것 찾아서 요리해서 먹는 게 은근히 쏠쏠합니다.

독일에도 24 절기 같은 게 있었더라면,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어쩌면 한국보다 더 다양한 음식 문화가 생겼을지도 몰라요(그럴 리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곧 다가오는 1월부터는, 한국의 24 절기와 함께, 1년의 각 시기마다 어떤 독일의 제철음식을 먹으면 좋을지, 한번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P.s. 시험 그 뒤.


시험을 합격하고 난 뒤, 벌써 1달 하고도 20일이 지났습니다. 합격한 바로 다음 날, 브레멘 "여성 및 건강청"에 메일을 넣어, 합격소식을 알렸습니다. 의사 시험과 질 관리는 의사협회에서 진행하지만, 의사 면허 발부는 최종적으로 관공서에서 주관하기 때문에 '건강청'에 합격사실을 언질을 주어야 합니다.

오, 축하해! 일하려면 알려줘. 첨부한 파일에 사인해서 보내주면 임시면허 발부해 줄게.

첨부파일은 병원 근로계약서, 건강검진확인서(의사 진료 후 건강에 이상 없다는 소견서), 그리고 범죄 경력 이력서(요즘에는 인터넷 발급 가능)가 있습니다. 갑자기 해야할 일이 없어지니까, 인근 병원에서 아르바이트 겸 보조의사 겸 독일어나 연습할까 했는데 마땅한 자리가 브레멘에는 없습니다.

MFA(Medizinischer Fachangestellt, 전문 의료보조의원) 알아? 병원에서 의사 보조하는 건데, 기록하고 환자 전화해서 안내하고, 각종 검사 자료 안내하는 거래. 한번 찾아봐!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이런 일자리도 있다고 알려줘서 찾아봤는데, 저것도 따로 자격증이나 해당분야 졸업증이 필요하더라고요. 물론 작은 개인병원에서는 비서 겸사겸사 해서 고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굳이...?

그래서 찾아본 게 이제 공부하고 싶었던 수혈의학의 Hospitation(견학 같은 것)이었고, 면접까지 잘 마쳤지만 2월에나 된다네요. 바로 가능할 줄 알았는데… 어차피 이곳도 제가 정식 면허(Approbation)가 없으면 어떤 일도 하기 어렵다고 해서 알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고로, 약 4개월을 기약 없이 쉬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무직이었지만, 공부를 하고 있어서 뭐라도 할 거리가 있었는데, 더 이상 지긋한 독일어 책은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독일어를 쓰는 다른 일자리나 간단한 부업을 찾아도, 현재 거주허가 연장 신청 중이라서, 가지고 있는 거주허가증은 만료되었기 때문에 불법으로 알음알음하는 거 아니면 일은 못하게 됐습니다(법적으로 불법체류는 아니지만, 또 일은 못하는...). 게다가 한국 가면 다 시들어올 때 비자를 한국에서 다시 신청해야 하고, 이게 3-4개월 걸리는 거라서 또 애매하게 되기 때문에 한국도 못 가게 되어서, 의도치 않은 도비(Dobby)가 되어 집안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쉬니까 좋아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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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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