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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서 Feb 19. 2021

낭만적 여행과 코로나 이후의 일상

일상과의 거리두기

스페인 세비야의 플라멩코 거리공연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한 건 유럽 여행을 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학교에서 짧게 단기로 스페인에 교환학생을 보내줬지만, 처음 가는 유럽인만큼 더 둘러보고 싶어서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3주 정도 더 여행했다. 그런데 체코에 있을 무렵부터, 중국과 한국을 비롯해서 몇몇 국가가 코로나에 잠식되기 시작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여행한 국가는 스페인이었는데 돌아올 때쯤 확진자 열명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스페인에만 3백만 명이 넘는다. 


오히려 문제는 한국이었다. 2월경부터는 대구에서 코로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갑자기 몇 천명씩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었다. 체코에서 여행을 하고 있을 무렵부터 몇몇 가게에서 중국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걸어 붙여놨다. 간혹 공항에서 보이는 뉴스에서는 온통 중국과 한국을 비롯해 코로나와 관련된 뉴스가 나왔다.


사실 그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전 세계적으로 심해질 줄은 몰랐다. 한국인 여행자들 사이에서 한국인도 여권을 보여줬음에도 몇몇 식당에서 입장을 거절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쩐지 허탈해졌다.


우리는 중국인과 다르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다 똑같은 '아시아인', '동양인'으로 보였을 터이다. 사실 우리나라에 있는 다른 외국인을 보고 '서양인'이라고 총칭해서 부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미 이전에도 다른 국가를 여행하,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 같은 소리를 많이 들었기에 익숙하긴 했다.


코시국 여행이긴 했지만, 여행이 나쁜 기억으로 가득했던 건 아니었다. 대다수의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는 문제가 없었고 보통 친절했다. 현지인은 딱히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힘이 됐던 건 같은 여행자였다. 왠지 모르게 당신도 타지에서 힘들게 고생하고 있구나 싶어서 동질감을 느꼈고, 의외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자기가 안 쓰는 티켓이나 교통카드 같은 걸 받기도 했고 여러 가지 다양하고 유익한 정보를 주기도 했다. 거리를 걷다 보면 간혹 인종차별을 겪긴 했지만, 코로나와 관련된 경우는 아니었고, 그냥 무지해서 그러겠거니 싶어서 무시했다. 그런 몇 번의 경우를 제외하면  꽤 괜찮은 여행이었다.


이 글이 여행 자체에 대해서 쓰고자 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그 이후에 여행이 나에게 남겨준 것, 그리고 여행 이후의 일상에 대해서 더 쓰고 싶었다.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이후의 일상>이라는 책은 낭만적 연애보다 그 이후의 일상에 대해서 얘기한다. 여행은 연애와 비슷한 점이 있다. 낭만적인 순간은 잠깐이고, 그 이후의 일상은 지루하다는 점이다.


스페인 톨레도의 한 전망대에서 너무 아름다운 커플을 찍었다.


'그렇게 그들은 낭만적으로 여행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내용은 나보다 더 재미있게 꾸며 보여주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그보다는 이후의 남겨진 것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다. 나는 여행을 꽤 좋아한다. 그것도 혼자 하는 여행이 좋다. 처음 혼자 여행을 갔을 때는 불안하고 무서웠다. 혼자서 뭘 해야 하는 거지 싶어 외로웠다. 거기에 정보를 찾아서 표를 끊고 낑깅거리며 빠트린 건 없는지, 무거운 짐을 챙기고 다니자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점점 혼하는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에게 여행은 견문을 넓히고 싶어서 가는 건 아니다. 여행에서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것, 그 자체는 굉장히 짧은 시간이다. 사실은 오히려 이동하고 길을 찾으려고 애쓰는 시간이 더 많다. 그럼에도 여행이 낭만적일 수 있는 이유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닌 '일상과의 거리두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계속해서 이동하다 보면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다. 그래서 해외여행이 아니더라도 일상과의 거리두기는 필요하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만 살다 보면 앞만 보면서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시간에 방향성,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모두가 앞을 보면서 살기에 뒤를 돌아본다는 건 어쩐지 불안하거나 사치스러운 일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살다 보면 시선은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고정된다. 한쪽만 바라보 눈이 피로해지듯이, 사람도 금세 지치기 마련이다. 여행을 가게 되면 앞으로만 가는 시간은 모두 강제적으로 멈춰 서게 된다. 대부분 모두 앞으로 가는 법에 대해서만 얘기하지, 그 누구도 멈춰서는 법에 대해서는 얘기해주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옆으로 세기도 하고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를 시간도 필요하다.


여행과 연애의 공통점은 어쩌면 낭만적 연애, 환상적인 여행이 아닌, 그 이후의 일상에 중요함이 달려있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뜨겁고 낭만적이었던 시간은 잠깐이며,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은 계속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여행 프로나 유튜브 여행 영상들은 여행의 화려한 모습만 보여주지, 아무도 그 후의 지루함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일상을 산다.


포르투의 트램 안에서 자전거를 타며 반갑게 손을 흔들어준 커플.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과 연애의 지루함을 이겨내는 동력은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계속해서 좋았던 시간을 기억 속에 새겨놓고, 가끔은 꺼내보면서 또 새로운 기억을 채워나가길 기대하며 버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좋았던 기억이 많을수록, 새롭게 채워나가는 기억이 많을수록 관계든 일상이든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나오는 거 아닐까?


그래서 여행이 나에게 무슨 변화를 남겼냐면, 사실 드라마틱하게 변한 건 없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하다 보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긴 것.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고 타인과 나에게 좀 더 관대해진 것.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은 것 정도이다.


사실 변한 건 나보다는 코로나로 바뀐 세상이었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 한국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너무 많아서 마스크 물량이 부족했다. 당시 유럽에선 마스크를 쓰는 사람은 오히려 이상하게 취급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한국에 마스크 대란이라는 소식이 오히려 낯설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공항에서 쓸 마스크를 구하러 다녔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있던 도시 마드리드에는 확진자가 3명이었고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약국에 가서 마스크를 파냐고 물어보면 전부 매진이다. 소문을 들어보니 누군가가 사재기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역시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이제는 백신이 나오더라도 코로나 이전과 같은 여행의 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해도 이전처럼 자유로울 순 없고 이 상황이 끝난다고 해서 쉽게 변할만한 건 아닌듯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아시아인으로서 코로나 때문에 받게 될 따가운 눈총이나 차별이 두렵다. 그래서 코로나가 끝나도 몇 년 동안은 혼자서 여행을 갈 수 없을 거 같다.


요즘은 매일 코로나 관련 뉴스를 보게 되면 쉽사리 피로하고 불안해진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심화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일상과의 거리두기는 점점 멀어진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낭만적인 순간도, 그 이후의 일상도 앗아가 버렸다. 얼른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다. 이른 시일 내에 어깨에 놓인 무거운 짐이 늘어나더라도,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을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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