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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탕 Jun 07. 2023

츄라이! 츄라이! 먹어보고 말해!

그 음식이 네 최애일지도 몰라!



허영만 작가님의 식객 中


나는 아는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새로운 맛집보단 소박한 단골 식당을 좋아하고, 신메뉴보단 늘 먹던 김치찌개가 좋다.

그래서 생소한 외국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없는 편인데, 감바스도 그랬다.


우리나라에 감바스가 한참 유행했던 때가 있다.

감바스는 스페인어로 새우를 뜻하는 ‘감바스’와 마늘을 뜻하는 ‘알 하이요’가 합쳐진 이름이다.

이름부터 이러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건 당연했던 것 같다.


아무튼, 이런 감바스를 계속 멀리했는데 나는 기름의 비중이 큰 요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감바스를 먹었던 건 부산의 한 칵테일 집에서였다.


혼자 부산 살기를 하던 중 한 칵테일바가 눈에 띄었다.

혼술이라니. 평소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망설여졌지만, 원래 여행만 오면 없던 용기도 취향도 생기는 법이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첫 혼술 도전. 


걱정과 달리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가게에 앉은 순간 긴장이 싹 풀렸다.

가게는 단정하고 예뻤고 메뉴판은 화려했다. 형형색색의 칵테일을 보며 고민하다 '부산 한정' 표시가 굵게 표시된 칵테일 앞에서 멈췄다. 한정이라니! 이런 단어는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문제는 가게 오리지널 칵테일이라 설명을 봐도 어떤 맛인지 예상이 잘 가지 않았다.

술이 아무리 맛있어도 안주랑 어울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 신중해질 수밖에.

한참을 살피다 결국 직원분께 도움을 요청했고, 감바스에 면 추가를 추천받았다.


감바스라니! 그것도 파스타! 둘 다 평소라면 절대 먹지 않을 조합이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대답은 "그러면 그걸로 부탁드립니다." 였다.

기껏 추천해 주셨는데 맛있겠지, 맛없으면 다른 걸 시키자.

기대와 불안을 품고 기다리니 곧 감바스 파스타가 나왔다.


그렇게 처음 접한 감바스 파스타란… 무척 아름다웠다!

소면 같이 얇은 면이 돌돌 말려 있는 것도 신기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 면은 엔젤헤어라는 파스파면 이었다..)하지만 접시에 흥건하게 깔린 기름이 날 불안하게 만들었다.


느끼하면 곧장 술로 입을 헹궈야지. 결심하며 감바스를 한 입 먹는 순간….

고소한 기름 사이로 알싸한 마늘과 고추 향, 은은하게 깔리는 토마토의 감칠맛과 탱탱한 새우까지.

그야말로 맛의 향연이었다.


너무 맛있다!


이래서 편견 없이 시도해 봐야 하는 것인가.

기름이 싫다던 나는 그날, 빵으로 접시를 닦고 나서야 가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맛이 잊히지 않아서 나는 홀린 듯 감바스 재료를 샀다.

다행히 나는 먹어본 음식을 재현하는 데 어느 정도 소질이 있다.

감바스는 그 외관에 비해서 그렇게 어려운 음식도 아니다.


좋은 올리브유를 팬에 아낌없이 부어준다. (오일을 잔뜩 먹는 요리니 꼭 좋은 오일을 쓰자.)

기름을 이렇게나 먹는다고? 싶은 정도가 딱 좋은 감바스의 기름양이다.


마늘은 꼭지를 떼고 칼 등으로 으깨준다. 

편으로 썰면 예쁜 비주얼을 챙길 수 있겠지만, 향을 낼 때는 이렇게 와일드한 편이 더 좋다.

마늘도 역시 이렇게나 넣는다고? 소리가 나올 때까지. 넉넉하게 두 주먹. 잊지 말자. 우리는 마늘의 민족 한국인이다. 


그다음은 아주 약한 불에서 기름에 마늘 향이 퍼지도록 둔다.

페페로 치노도 역시 넉넉하게. 기름이 많으니 다른 요리보다 많이 넣어도 좋다.

이것도 손으로 대충 으깨고, 부수며 넣어준다.

그다음은 새송이버섯을 깍둑썰어 넣는다.

방울토마토는 반만 잘라 넣어, 감칠맛을 더한다.

소금을 한 티스푼을 넣어 간을 잡아주면 마지막으로 새우를 넣어준다.

새우의 종류는 상관없지만, 꼬리까지 달린 큼직한 녀석을 쓰면 비주얼에 폼이 난다.


이제 면만 준비하면 끝이다. 감바스 파스타엔 얇은 면이 맛있다.

엔젤헤어면은 3분이면 익으니, 이것마저 빨리빨리의 민족 한국인에게 딱 맞지, 싶다.

면이 잘 익으면 만들어 놓은 감바스에 넣어서 마무리한다.


이미 면이라는 탄수화물이 있지만 욕심껏 빵도 준비한다. 

감바스의 마무리는 누가 뭐래도 접시를 닦는 게 포인트니까.  


그렇게 첫 감바스 파스타를 겪은 뒤로 나는 무수히 많은 감바스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이제는 주변에서 알아주는 감바스 덕후이자, 최고의 감바스 파스타를 만들어 내는 명예 감바스인이다.


그날 내가 감바스를 시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찔하다. 

하마터면 평생 최애 음식 하나를 모르고 살 뻔했다!



여전히 식당에 가면 새로운 메뉴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이 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감바스를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깊이 외친다.



헤이, 츄라이! 츄라이! 일단 먹어 보자고!

그 음식이 네 최애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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