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노력 그리고 성공
운은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르네상스와 계몽주의가 득세하면서 인류는 과학에 눈을 떴고 운에 대하여 미신, 주술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마치 세상에는 운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운에 기대는 것은 비합리적이며 현명하지 못하고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과학 이전의 시대에는 운, 신의 뜻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전쟁, 국책사업, 결혼 등 국가와 인생의 중대사는 점술, 사주, 주역, 명리학 등에 의존했다. 오늘날도 진학, 진로, 결혼, 이사, 부동산 매매, 출마, 고시 등 개인의 중요 인생사를 결정할 때는 점에 의존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에서는 점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얄팍한 사람은 운을 믿고, 환경을 믿는다. 그러나 강한 사람은 원인과 결과를 믿는다. 할 수 없는 일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춰라. 성공은 운보다는 본인의 노력과 믿음에 따라 얼마든지 이룩할 수 있다. 인생이 우연에 의해 좌우된다면 과학, 지식, 기술이나 노력 따위는 무의미하게 된다. 기계론적 물리학의 시대에는 세상은 정교한 기계장치처럼 작동되므로 기계장치의 작동원리를 이해하면 세상을 이해할 수 있고 성공하는 것이 가능하다. 정교한 기계장치에 운이 개입될 여지는 거의 없으므로 운을 가지고 기계장치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계식 시계는 과학적 세계관을 대표하는 현대문명의 대표주자라 할만하다. 성공한 남자가 찾는 로렉스 시계는 노력에 대한 보상을 상징한다.
1960년대의 황금기는 인류 역사에서 낙관주의가 팽배하고 과학주의가 최고조에 달한 과학적 세계관의 전성기다. 인류는 최초로 우주로 나아가 달을 밟았으며, 경제는 수직 상승하여 최고의 호황을 구가했다. 삶의 수준은 윤택하고 소득은 상승하였으며 비행기 여행이 이동의 자유를 획기적으로 증진시켰다. 미국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지만 1960년대는 황금의 시대다. 한국으로 치면 80년대가 그에 해당될 것이다. 노력하면 부자가 되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시대였다.
양자역학, 불확정성의 원리가 작동되는 물리학이 등장하면서 세상은 확정적이지 않고 불확정적이라는 관점이 등장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고, 죽어있으면서도 살아있는 상태가 이 세상이라는 것이다. 이 세계를 궁극으로 파고 들어가면 양자 세계가 펼쳐지는데, 여기서는 관측되기 전까지는 어떤 상태가 중첩되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양자를 관찰하는 순간 양자는 이미 거기에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연적으로 일어나는 미시적인 사건이 거시적 세게에 영향을 미칠 때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죽어있으면서 살아있는 고양이가 가능하게 된다.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양자의 위치와 방향을 예견할 수 없고, 우리가 관찰하는 순간 사후적으로 어떤 특정한 상태가 결정되는 이상한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과학적으로 특정한 상태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살아있는 고양이를 보게 될지, 죽어있는 고양이를 보게 될지는 전적으로 운에 달려있다. 성공이라는 사건이 발생할 확률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우연히 결정되는 미시세계가 거시 세계로 전이될 때 결정된다면 우리의 노력은 보잘것없는 것이 되고 만다.
어려운 물리법칙이 아니더라도 이제 세상은 정직한 노력이 배신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시대가 되고 있다. 월급을 아무리 아껴 쓰고 저축해도 결코 강남 아파트를 살 수 없다. 비트코인이라는 고도의 위험자산에 운 좋게 투자해야 부자가 될 수 있다. 명문대를 나와도 어떤 미래가 기다릴지 아무도 자신할 수 없다. 대기업이 하루아침에 경영난에 봉착하고, 조그만 벤처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똑같은 기업도 언제 증시에 상장되느냐에 따라 기업가치는 극과 극을 달린다. 기업공개를 하자마자 10배가 오르는 기업이 있는 반면, -90%까지 주가가 하락하기도 한다. 기업가치를 엄밀하게 평가해서 기업공개를 했지만, 기업평가가 무색하리만치 주가는 제각각이다.
우리는 알파고의 착수에 대해 9단 프로기사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인공지능이 주식거래, 금융거래 등에 대거 활용되는 시대에 주가는 이미 인간의 예측 범위를 넘어섰다. 인공지능끼리 거래를 통해 결정된 주가에 대해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은 신의 뜻이거나 운으로 치부될 뿐이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불가능하다. 바둑과 같이 성패가 즉각적이고 명확하다면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결과로 평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주가는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천차만별이므로 결과로 성과를 측정하기도 어렵다. 단기 수익은 인공지능이 높게 유지했지만, 장기 수익률이 낮다면 왜 매매 의사결정을 내렸는지 인간으로서는 알기 어렵다. 이렇게 되면, 인공지능이 내린 의사결정을 따라가는 것은 마치 무당의 점을 믿고 행동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생명공학은 우연에 기대는 반면, 소프트웨어공학은 완벽하게 과학적 이성에 기댄다. 1928년 스코트랜드의 과학자 Alexander Fleming이 우연히 뚜껑을 덮지 않은 실험 접시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처럼 제약회사들은 무작위로 각종 분자화합물의 조합을 시도해서 대박이 터지길 고대한다. 18개월마다 반도체의 집적도가 2배씩 증가한다는 Moore's law와 반대로 이를 거꾸로 쓴 Eroom's law는 1950년 이후 9년마다 연구개발비용 10억 달러당 승인받는 신약의 수가 절반으로 줄고 있다. 컴퓨터의 작동원리는 인간이 만든 기계이므로 명확하고 따라서 소프트웨어 공학에는 우연이 개입될 여지가 거의 없다. 반면, 생명의 원리는 고도로 복잡하고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므로 우연에 크게 기대한다.
인간이 직면하는 많은 문제는 사후 비교평가가 불가능하다. 내가 다른 인생경로를 선택해서 현재의 인생경로와 비교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단 한번의 시도만 허용되는 게임이 인생이므로 점쟁이의 말을 듣던, 인공지능이 시키는대로 선택하던 어느 것이 더 나은지는 영원히 알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