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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iday Sep 29. 2022

창가에서...

등굣길의 아이들을 본다

불과 몇 년 전, 아이들이 한창 학교에 다닐 때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눈도 못 뜨고 부엌으로 달려갔다.

아침 준비와 도시락 준비, 식구들 등교와 출근 준비 등으로 정신없는 아침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한숨 돌리면서 커피 한잔 가지고 내 작업실로 와서 나의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이제는 아이들도 모두 학교를 마치고 코비드-19 이후로 재택근무 중인 남편도 출근을 안 하니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 들고 바로 내 작업실로 가서 창문 열고, 노트북 열고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

내가 살고 있는 집의 2층에 있는 내 작업실은 서향으로 큰 창문이 두 개 붙어있고 나는 그 창문 앞에 앉아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재봉틀도 돌리고, 영화도 보고, 노을도 보고, 별과 달도  본다.

일주일에 2~3일 정도 하는 미술 클래스도 이 작업실에서 하고 있으니 나의 일터이기도 하다.


결혼 전 한국에서 직장에 다니던 시절, 출근해서 일 시작하기 전에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그때는 인기

있었던 자판기 커피를 한잔 뽑아 '나의 창' 이 있는 자리를 찾아갔다.  건물 끝 구석자리라서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았고 아주 작은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앞에 서서 길거리 사람들을 넋 놓고 내려다보면서 커피 한잔을 다 마시고 나서야 사무실로 가는 게 내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냥 혼자 서서 아무 생각 없이... 생각이 있다면, 지금 막 출근했지만 빨리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나의 하루를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있던 자리에는 늘 '나만의 창가 자리'가 있었다.

학교를 다닐 때나 직장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혹은 차 한잔 마시며 숨을 고를 때에 항상 찾아서 숨어들던

자리에는 작던 크던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 있었다.

분명 나도 저 밖에서 들어온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갇혀서 일하는 그 건물 안에서

내다보는 밖의 풍경은 뭔가 늘 다른 느낌이었다. 바쁘고 지루한 일상 중에도 잠시 창밖을 바라보면

그 바깥세상은 지금 내가 있는 현실과는 뭔가 다른 공기가 흐르는듯했고 그 공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잠시 휴식이 되곤 했다.


우리는 왜 창가를 좋아할까?

전망이 좋던 안 좋던,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창가 자리는 항상 인기가 많다.

내 지인들도 건물 안에만 들어가면 마치 불나방이 빛을 찾아가듯이 본능적으로 창가로 가서 자리를 잡는다

사람들은 왜 창가를 좋아할까... 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건, 누구나 목이 마르면 당연히 물을 찾듯이

창가를 좋아하는 건 특별한 게 아니라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이 번에 이 단순한 궁금증을 풀어보려 작정을 하고 찾아보니 나름 꽤 설득력 있고 신뢰감이 드는 이유들을 찾을 수 있었다.

매번 자료조사를 하면서 느끼는 건데, 학자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주 어려운 주제들을 아주 오랫동안 공부하고 연구하기때문 이기도 하지만 또 아주 간단하고 쉽다고 생각하는 주제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아주 오랜 시간 연구하고 생각하고 계속 공부할 수 있는 사람들 이기 때문이다.

나름 단순한 주제라고 생각했던 이 '사람들이 창가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와 해석을


찾을 수 있었다. 그중 가장 공감이 갔던 내용은 '공간의 심리학'에 비추어서 이야기한 내용들이다.

인류가 진화를 하면서 나타나는 '진화 심리' 나 '환경 심리'를 근거로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어떤 공간을 마주했을 때 자연스럽게 본능적인 심리적 행동이 나오고 이런 본능이 각 상황에 맞는 공간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하게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내. 외적인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편안한 공간과

불편한 공간을 인지하고 자기에게 편안함을 주는 공간으로 이동하고 싶은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카페 같은 곳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창가로 가지만 또 반대로 벽을 등지고 앉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고 빛이 들어오지 않는 구석진 자리를 먼저 찾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학창 시절, 공부하기 싫었던 때에는 교실 복도 쪽 벽의 기둥 뒤가 내 자리였고(그 당시 우리 학교는 아침에

오는 데로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위기감에 정신 차려서 공부를 해야겠다 맘먹었을

때가 돼서야 스스로 빛으로 나와 창가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흥미 없는 주제의 모임에선 남의 등에 가려지는 구석진 자리를 찾아 몸을 숨기고, 내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모임에선 리더가 잘 보이는 자리를 잡는 심리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하고 보니 나도 그동안 참으로  '공간의 심리학' 이론에 맞는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이런저런 이론적 근거를 들이대지 않아도 나는 지금의 내 자리가 참 좋다.

내가 앉아있는 오른쪽에는 창문이 있어서 집 밖의 상황을 다 내려다볼 수 있고 왼쪽으로는 내 작업실로

들어오는 문이 있어 이방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한눈에 다 볼 수 있다 보니 주변을 인식하는 범위가 넓어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집안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 작업실에서 지내니 창밖을 통해 해가 지나가고 달이 지나가는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게 된다. 보통 노을지는 시간은 정말 짧게 지나가는데 가끔 보이는 그 불타는 멋진 노을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고, 한밤중 올려다본 하늘에 무심이 떠있는 상현달, 하현달, 보름달 의 변화하는 모양을 고개만 올려보면 볼 수 있는 것도 가슴 설레는 호사라고 생각한다.


집 앞에 초등학교가 있고 그 옆에는 산책할 수 있는 Walking trail 이 있어서 집 앞으로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닌다.  특히 등. 하교 시간에 학교를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시간 중의 하나이다.

재잘재잘 끊임없이 뭔가 이야기하면서 가는 아이,  말없이 그냥 걷기만 하는 아이

학교 가기 싫어서인지 뭐가 못마땅한지 팔을 휘저으며 지그재그로 걷는 아이

엄마가 등을 밀며 걸어가는 아이, 엄마가 끌고 가는 아이, 지각할까 봐 뛰어가는 아이,

자전거나 스쿠터를 타고 가는 아이, 강아지와 함께 가는 아이, 뭔가를 먹으면서 가는 아이...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아이들의 등하교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고 있는 나 자신을 어느 날 한번 돌아보았다.

'저게 뭐 그리 좋아할 일이라고 매일 보면서 즐길까...'  그냥 아이들이 예뻐서?

그건 아닌 듯... 어느 날 돌아본 저~~ 밑바닥에 있는 내 속마음은, 나는 더 이상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 아닐까 한다. 두 아이가 거의 5년 터울이다 보니 같은 초. 중. 고를

다니면서도 초등학교 2년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같은 학교를 겹치게 다닌 적이 없어서 두 아이 모두 졸업하는 동안 꼬박 17년을 학교 라이드를 했었다. 지금은 더 이상 학교 라이드를 안 한 지가 5년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아침에 눈을 뜨면 뭔가를 해야 할 거 같아서 긴장되고 오후 3시만 되면 어딘가 가야 할 거 같은 불안감이

올라오곤 한다. 그런 마음으로 창가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아이들이 등. 하교하는 모습을  보니

그냥 근거 없는 해방감이 막 밀려온다.

지금 창밖은 깜깜하고, 조금은 쌀쌀한 바람이 들어오고, 후~후~ 거리는 부엉이 소리도 들린다.

오늘은 작업 끝, 창문 닫고 노트북도 닫고, 내일 다시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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