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모이 감상평
“다마내기 좀 이빠이 가져와”
“다마내기? 이빠이? 할머니 그게 뭔데?”
“아 양파 그리고 많이”
“양파는 양파지! 다마내기가 뭐야! 그리고 많다고 하면 되지 이빠이는 또 뭐야?!”
어릴 적 할머니와 나눴던 대화이다. 할머니는 양파를 다마내기라고 불렀다.
우리가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첫 기억이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겪은 증조할머니 밑에서 태어난 외할머니는 자연스레 일본어를 습득했다.
이처럼 말은 그 시대의 역사를 보여준다.
양파를 양파라고 부를 수 없었으며 내 이름조차도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불러야만 했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나라를 지켰다.
그 중 ‘한국어’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사람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 ‘말모이’를 소개하려 한다.
1940년대 우리말이 사라져가고 있는 경성. 아들 학비 때문에 가방을 훔치다 실패한 김판수(유해진).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조선어학회’에 면접을 보게 된다. 그곳에서 본인이 훔친 가방의 주인이자 조선어학회의 대표 류정환(윤계상)을 만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판수는 조선어학회 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글을 쓸 줄 모르는 그는 돈도 아닌 말을 모으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난생처음 한글을 읽으며 우리말의 소중함에 눈을 뜬다. 그 후 누구보다도 열심히 전국의 말을 모으는 ‘말모이’를 시작한다. 그런 판수를 통해 정환 역시 ‘우리’의 소중함에 눈을 뜬다. 앙숙으로 시작한 인연에서 동료가 된 그들은 힘을 합쳐 우리 말을 지키기 시작한다.
민들레처럼 피어난 독립 그리고 조선어학회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큰 걸음이라고, 마을 사람에게 글을 가르치셨거든요. 그러면 민들레처럼 그 걸음걸음이 퍼져나가 세상을 바꾸고 결국엔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요. 그랬던 아버지가 어느 순간 친일을 했고 그 모습이 너무 싫고 원망스러워 도망치듯 유학을 떠났습니다. 5년 만에 집에 돌아오던 길에 한 아이와 부딪혔는데 그때 결심했습니다. 사전을 만들겠다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 말이 모이고, 마음이 모이는 곳에 그 뜻이 모이고, 그 뜻이 모인 곳에 비로소 독립의 길이 있지 않겠냐고, 우리 동지들을 설득했죠.”
정환이 판수 집에 찾아가 했던 말이다. 정환이 조선어학회를 설립하고자 한 목적을 알려주는 대사이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에 일제의 탄압에서도 우리 말 사전을 제작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우리’였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피어난 동지애 덕분일까? 마침내 우리 말을 지켜낸다.
목숨보다 소중한 우리 말 ‘한글’
그 과정 속에는 판수의 숭고한 희생이 숨겨져 있었다. 아들로 인해 비밀공청회 장소가 들통났다. 아들은 동생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판수를 집에 데리고 가려 했지만 이를 눈치챈 판수는 거부하고 공청회 장소로 돌아간다. 판수는 아들과 자신의 목숨보다 ‘우리말’을 지키는 게 더 중요했다. 정환은 원고를 판수에게 넘기고 일본 경찰에 붙잡힌다. 한편 판수는 원고를 갖고 부산으로 이동한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직감한 판수는 잠긴 창문을 뚫는다. 그리고 그곳에 원고만 던진 채 도망갔다. 끝내 일본 경찰들의 총에 죽음을 맞이한다.
시간이 흘러 광복이 되었고, 우리말 큰 사전도 완성되었다. 정환은 사전을 들고 판수의 아
들 덕진과 딸인 순희에게 사전과 함께 판수가 한글로 쓴 편지를 건넨다.
이 장면이 나오는 내내 많은 눈물을 흘렸다. 평범한 시민이 말의 소중함을 느끼는 순간 독립운동가가 되어 나라를 지키는 데 앞장섰다. 본인의 삶이 더 중요했던 판수. 그에게는 이젠 ‘우리 말’이 더 중요해졌다. 그렇기에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었다. 말과 독립을 향한 그들의 간절한 마음이 내 가슴 깊숙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신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극복하고 나아간 독립운동가. 그들
은 그 누구보다도 말의 힘과 언어의 가치를 안 사람이었다. 암흑한 현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한글은 '세계 유네스코'에 등재될 수 있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를 지켜내는 게 나라를 지키는 방법이고, 미래를 위한 길이란 걸……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입니다.” 이 대사는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한국어’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한국어 창제의 시작은 권력을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아닌 ‘백성’과 ‘민족’ 우리를 위해서였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백성이 가여워 만들기 시작한 훈민정음. 일본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길 때도 되찾을 거라는 희망을 품은 채 지켜낸 게 ‘우리 말’이었다. 어쩌면 이들이 간절하게 지키고 싶었던 건 말이 아닌 우리나라 문화의 고유성과 ‘우리’라는 가치 아닐까? 언어라는 건 사람과 나라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결국 ‘언어’가 사라진다는 건 ‘우리’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른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
영화를 다 본 후 나는 과연 한국어를 잘 쓰고 있나? 정확한 뜻도 모르고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은 없었나? 되짚어 보았다. 한국어는 다른 언어와 달리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무수히 많다. 같은 감정이라도 미묘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단어를
‘짜증 나’‘몰라’라고만 표현한다. 예컨대 엄마와 다툼이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아 몰라. 짜증 나”
과연 이 사람은 짜증이 난 걸까? 사실 깊이 생각해 보면 엄마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 속이
상했을 수도 있고, 엄마 말을 듣지 않은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엄마
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의 감정을 자세히 파악할 겨를도 없이 ‘짜증 나’라고만 표현한다. 그런 상황들을 보며 한국어를 적재적소에 맞춰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요즘처럼 각종 줄임말과 비속어가 아무렇지 않게 쓰이는 디지털 시대에 올바른 언어 습관은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한국어를 알고, 찾고, 활용하는 것. 그리고 한국어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한글을 지켜낸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노력과 과정이 헛되지 않도록..
끝으로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으로 목숨 바쳐 ‘우리말’을 지켜냈다면 나는 이 말로 사람을 살
리고 싶다. 그것이 글이 될 수도 혹은 말이 될 수도 있다. 허나 분명한 건 그 중심에는 ‘우리 말’이 있다. 말의 힘과 소중함을 알기에, 그 말로 사람을 살리고 싶기에 나는 오늘도 단어를 찾으며 세상을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