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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브라를 검색했더니, 빅데이터가 티팬티를 보냈다

딥러닝 빅데이터 기반 개인 맞춤 광고, 네 이놈!

by 퇴B



팔 운동을 한 다음 날엔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도 집에.

팔 근육이 아파서 도무지 등 뒤의 브라 후크를 끌를 수가 없다.
기괴한 소리를 내며 몇 번 시도하다가 결국 아래로 내려서 꾸물꾸물 벗었다.
벗어놓고 보니 꽤 씁쓸하다.

이거 느낌이 그거 같아 —
예전에 혼자 사는 중년 연예인이 등에 파스를 붙일 때,
땅바닥에 널어놓고 그 위에 냅다 누워 붙이던 걸 봤을 때의 그 묘한 기분.
아픈 건 팔인데, 속이 쓰리다.

티셔츠처럼 후크 없이 입고 벗는 스포츠브라가 왜 ‘스포츠브라’인지,
not 스포츠 인간인 나는 몰랐던 거지.
이게 홀로 이렇게 웃픈 꼴일 줄이야.
세상엔 다 이유가 있었다. 나만 몰랐지, 또.

같은 일을 두 번 당할 순 없으니까
서둘러 스포츠브라를 검색했다.

그런데… 빅데이터, 무섭다.
‘딥러닝 빅데이터 기반 개인 맞춤형 광고’의 다른 말이 혹시 역술가인가요?


내가 검색한 건 스포츠브라였을 뿐인데,

통계를 통해 원인과 결과를 거쳐 미래까지 본 모양이구나.


그러니까 네 말은,

팔 운동 열심히 해서 스포츠브라를 검색해야만 했던

팔이 고장 난 슬픈 독거 중년 여성은

결국 브라 후크를 끌러줄 배필을 만나

스포츠브라 같은 건 필요 없어지고,

대신 신혼여행 때 입을 속옷이 필요해진다 이 말 아니야?

그게 그러니까, ‘통계적으로’.

후후후, 후후후, 후후...


하지만 빅데이터여,

이 우주엔 백 퍼센트에 버금가는 확률을 뚫고도 꽝을 고르는 똥손도 있고,

구태여 운명을 역행하며 사는 강직한 꼴통도 있다네.

그리고 그게 바로 날세.


브라 후크를 끌러줄 사람이 없어

스포츠브라를 검색하는 나는 분명 외로울 것이라는

자네의 통찰은 좋았네만—

자네는 내 불운의 서사를 너무 얕봤어!


나는 90퍼센트의 확률로 뽑을 수 있는

특별 카드를 세 번이나 놓친 게임 유저일세!

통계의 범주를 찢고 존재하는 이상치(Outlier)!


언젠가 검색이 필요하면

정직한 검색어로 찾아갈 테니, 미리 김칫국은 마시지 말게나.


근데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빅데이터는 과연 우리의 어디까지를 수집하고 있을까?

그렇게 수집된 정보에 따라 선택한 소비는

정말 ‘내 자유의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스토킹 범죄 신고는 112,

범죄 피해 상담은 1366인데,

어딜 가나 따라다니는 저 광고는 어디다 신고해야 합니까ㅜㅜ!


아픈 건 팔인데,

볼 때마다 자꾸 속이 쓰려요!!


... 뭐, 부적의 의미로라도

그 팬티는 하나 사둘 걸 그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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