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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시옹은 이미 당신의 손가락에 있습니다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그리고 하이퍼리얼리티

by 퇴B



다이아몬드는 사랑의 증거가 아니다.
그건 사랑을 흉내 내는 이미지, 손가락 위의 시뮬라시옹이다.




내가 어릴 때, 부자 시댁으로 시집간 작은 이모는
이모부에게서 받은 완두콩만 한 다이아를 자랑하느라
제사 준비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도 손가락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다.

결혼예물이라곤 번듯한 금가락지 한 쌍조차 없었던 엄마는
철부지 동생의 자랑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잘해주는 남자 만나 좋겠다”를 연발했지만,
내심 속이 상했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꼭 내게 말했다.

“다이아반지 정도는 해주는 남자한테 시집가라.”

나는 그 말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 다이아반지를 ‘살 수 있는’ 여자가 되라가 아니고,
‘사주는’ 남자에게 시집가라가 된 걸까.
또는 사랑이 어떻게 물건으로 증명될 수 있게 되었을까?
왜 ‘얼마큼 비싼 물건인지’가 ‘얼마큼 사랑하느냐’의 증거가 되었을까?

하여간 엄마는 강하게 원하고 있었다.
‘사랑받는 여자의 증명’으로써,
다이아 반지를 획득한 여자가 되기를.

나이가 좀 들어 김중배의 다이아반지를 알게 된 이후에도
이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다만 비싼 물건을 받는다는 것이
여성의 생존 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다 몇 년 후, 작은 이모는 눈물바람으로 새벽에 우리 집에 찾아와
엄마 품에 안겨 이모부의 외도 사실을 알렸다.
그때도 여전히 작은 이모의 손가락엔
앙증맞은 다이아반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다이아반지는 사랑을 증명하는 거라며?
반지는 여기 있는데 사랑이 없다고?
그럼 반지는 뭐야?”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사랑의 증표로 반지를 준 거라면,
사랑이 끝나거나 외도할 땐 다이아를 회수했어야 맞는 거 아냐?”

나이가 훨씬 더 들어서야,
나는 이 기괴한 현상을 설명할 ‘단어’를 찾았다.
철학자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이것을
‘시뮬라시옹(Simulacra)’이라 불렀다.

보이지 않는 사랑을
보이는 이미지(다이아반지)로 대체하곤,
원본인 사랑은 사라진 채
그 대체물(기호)만 애지중지하는 일 말이다.

애초 작은 이모의 손가락 위에서 반짝이던 ‘다이아반지’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짜 사랑’을 대신하는 기호이자 이미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모부의 외도(‘진짜’의 소멸)에도
다이아반지(‘기호’)는 여전히 그곳에서 반짝일 수 있었다.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랑의 ‘기호’와 ‘상징’만이 가짜인 채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런 다이아반지를 부러워하며
내게도 강요했던 것이 바로 그 ‘복제된 욕망’이었다.
즉, 사랑을 갈망한 게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욕망’을 복제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어디에도 ‘진짜’ 사랑은 없었다.
추상적 개념인 사랑은 애초에
원형을 증명하거나 물질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니까.
귀하고 비싼 물건인 다이아는
우연히 사랑의 이미지(상징) 자리를 차지했을 뿐,
사랑과 다이아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없었던 거다.

이제 나이가 이이-만큼 들어,
내가 다시 궁금해진 것은
‘랩다이아몬드(천연 다이아와 구분이 불가능한 인공 다이아몬드)’가
출현한 이후의 ‘이미지’다.

‘진짜(사랑)’를 흉내 낸 ‘가짜(다이아)’를,
다시 ‘진짜(천연다이아)’처럼 흉내 낸 ‘가짜(랩다이아)’는
대체 무엇을 증명하게 될까?

당신이라면 생각해 보라.
전문가조차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1캐럿의 천연다이아와 1캐럿의 랩다이아 중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혹은 1캐럿의 천연다이아와 10캐럿의 랩다이아라면?

만약 약속(사랑)이 ‘진짜’라면
다이아가 천연인지 랩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꼭 선택해야 한다면,
아마도 그 기준은 “내 사랑의 약속을 타인들이 어떻게 봐주는가.”
얼마나 비싸고 귀해 ‘보이는가’ 일 것이다.

즉, ‘사랑’이 아니라
얼마나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말하자면 이제는,
‘원본(사랑)’을 흉내 내는 ‘복제품(천연다이아)’이 아니라
‘원본(천연다이아)’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는’ 복제품(랩다이아)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보드리야르가 말한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
즉 ‘초실재’다.)

랩다이아의 출현 이후
천연 다이아의 가치는 미친 듯이 하락 중이다.

기존의 권위가 해체되고,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무너지고,
이제 ‘진짜’보다 진짜처럼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해져 버린 세상.

비슷한 사례는 이보다 훨씬 많다.

예를 들어, ‘마음을 담은 선물’이라는 말.
어떻게 해도 선물엔 ‘마음’을 담을 수 없다.
선물은 결국 선물한 자의 노고가
받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 평가될 뿐이다.
결혼기념 선물로
고액의 사치품과 손으로 접은 종이학 중
무엇이 더 ‘마음을 담았다’고 느끼는가는
저마다의 기준일 뿐이다.
결국 선물엔 마음이 안 담긴다는 것이 확실하다.

혹은 ‘브런치 라이킷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라이킷이 증명하는 건
그저 ‘글을 본 사람이 있다’ 일 순 있어도,
진정한 ‘공감’이라 할 수 있을까?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아마 애매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꼭 공감까진 아니어도 ‘힘내요’, ‘응원해요’ 정도면 되지 않냐?”

맞다.
어차피 기호는 원본을 영원히 대체할 수 없는 법이고,
아무런 공감도 없는 라이킷에서조차
관계가 생겨나기도 하는 걸 보면—
그 자체로 우리는 지금
시뮬라시옹이 폭주하는 하이퍼리얼리티의 세상을
살고 있는 중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 모든 것이 너무 흥미롭다는 말이다.

재밌다, 세상.
그리고 지디는 말했지.

“영원한 건 절대 없어.”

영원한 사랑의 상징, 다이아몬드.
너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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