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 석박사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어딘지 짠한 구석이 있다는 거다.
인문대 특성상 이공계 학생들처럼 교수님 연구나 프로젝트에 참가해 밥값을 벌 수도 없으니,
집안 어른들 보시기엔 나잇값도 못하고 밥값도 못하는 고학력 실업자다.
그럼에도 지도교수님들은 대학원생의 본업이 학업이라 굳게 믿고 계시니,
짬을 내 몸이라도 팔러 갈 수가 없다.
집안이 얼마나 먹고살 만했는지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대개 인문대 석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이미 사회와 개인, 정신과 육체의 고통을 이분(二分)할 수 있다.
혹은 이분해야만 그 괴리를 견딜 수 있으므로,
심리적으론 이인증(二人症)이라도 겪는 듯하다.
정신과 이상은 고상하고 고매하지만,
배는 고프고 돈 앞에 죄인이다.
진리는 빛이나 앞날은 막막하고,
심리적 체증이 심해져 저기압이어도
고기 앞으로 불러내줄 친구들은 모두 멀쩡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제 밥값 하느라 주변에서 사라진다.
그나마 입에 풀칠하려고 시간 강사 자리라도 꿰차면
비굴함을 틀림없이 익히게 되어 현타가 오고,
그나마도 실패해서 입시강사 길로 빠지면
집안 어른들에겐 허송세월 한 머저리고
학교에선 낙오자가 된다.
그 막힌 길을 뚫고 온 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생활의 짠내는
궁상맞고 쿰쿰하다.
관념은 결코 실천이 될 수 없어(혹은 되지 않아)
진리가 빛인데,
진리가 빚이 된 사람들.
논문 한 줄 써 내려가며 스스로를 설득하고 위로하면서도,
정작 내 삶에는 아무 논리도, 이론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글을 쓰고, 생각을 하고, 말을 아낀다.
말이 많을수록 내 초라함이 더 또렷해지는 것 같으니까.
지적 자존심은 높지만, 통장은 비었으며,
세상의 무지는 용납이 안 되는데,
정작 그 세상에 손 내밀어 본 적은 별로 없다.
그래서 어디서든 떠돈다.
지식인으로 살기엔 세속이 너무 팍팍하고,
현실인으로 살기엔 내가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한때 ‘의미’에 인생을 걸었던 자들이
이제는 ‘의미 있는 일’보다 ‘의미가 될 돈벌이’을 찾고 있다.
아직도 의미는 중요한데,
이제는 생존이 더 급하다.
생존이란 단어를 감히 입에 담게 되는 순간,
예전의 나—이상에 목매던 순진한 나—는
고개를 돌린다.
누구보다 많이 생각하고, 깊게 고민해 왔지만
그 사유의 깊이는 종종 현실과의 간극이 되어서,
삶이 아니라, 고통의 구조를 분석하고만 있다.
그래서 결국 인문대생의 짠내는
지식의 끝이 아니라, 밥벌이의 시작에서 피어난다.
삶을 견인하기 위해 '앎'을 택했는데,
이젠 그 '앎'이 삶을 견디게 만든다.
끝내, 삶을 사랑할 수는 있을까?
진리가 아닌, 진실로 살아갈 수는?
이제 먼 먼 먼 옛날얘기가 됐지만
왜 아직 진리도 진실도 멀기만 하냐.
여가 어데고 대체ㅜㅜㅜㅜ!!!
그래도 이런 '우리'가 세상에 왜 필요하냐면..
공립의료원이 장사가 안된다며
"이런 병원의 적자를 해소해야 한다!"라고 누군가 말하면,
"뭔 개소리고. 병원은 장사가 안 돼야 좋은 일이다.
넌 장례식 가서 '축하한다'라고 말하냐.
정신 차려라."
...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적자라는 '사실' 속에서도 당위적 '의미'를 발견하여
마지막 인간성을 붙드는 게 '배운 도둑질'인 사람들-.
아, 혹시 이런 짠내가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는 건가...?(너무해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