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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이 되었지만,

스쳐간 인연들에 대한 변명

by 퇴B




아무리 나를 잘게 부수어 삼켜도
당신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해는 소화와 같아서,
입에 넣은 모든 것이 당신의 피와 살이 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란,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 같은 것.

나는 당신의 길고 긴 내장을 통과하는 내내,
기어이 당신을 아프게 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내 삶을 통과해 간 수많은 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탐냈고, 오래도록 입안에 굴려보았고,
뼈째로 씹어 삼키려도 했지만,
나는 끝내 그들을 나의 일부로 만들지 못했고,
그래서 나는 내내 앓을 수밖에 없었다.

그 통증은 홍역 같기도, 간질 같기도,
때로는 심근경색 같기도 했다.

그들은 지루하리만치 긴 시간 동안
천천히 내 속을 할퀴다가,
잠시 나를 채우는 듯 헛된 포만감을 주었다가,
결국 내 삶의 막을 찢고서야 빠져나갔다.

아팠을까, 시원했을까.
아마 그 반반쯤이었나 보다.

끝끝내 이해받지 못한 나 또한,
당신의 어느 곳에도 자리 잡지 못하고
배설물인 채,
당신의 삶을 통과해 버리겠지.

그때쯤이면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지는 나를 보며
당신은 후련한 표정을 짓게 될 것이다.

어쩌면 당신의 체온에 익숙해졌던 나만이,
뼈를 쑤시는 오한 속에 떨고 있겠지.

결국 당신에겐 아무런 영양분도 되어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면서.

레버만 누르면
모든 것이 시간의 구덩이 속으로 쓸려 내려간다.

이 오물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대야 하는 숙명은
아마도 내가 유별난 탓.

다만 이 기이한 세상 덕에,
아무런 양분도 없는 ‘제로 인간’인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도 더러 있겠지.

하지만 나는 너무 많이 먹고
너무 적게 질문하는 이들의 체온에
위로받고 싶지 않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어떤 이들의 ‘위대한 식욕’ 앞에
끝내 고개를 숙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아 참 그런데,
서양인들은 김 소화효소가 없다며?
김이 얼마나 몸에 좋은 음식인데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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