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로 이사 오기 전까지 난 초읍 재개발지역에 살았다.
어린이대공원 근처엔 늘 비둘기 떼와 노인들이 터를 잡고 놀았다.
그리고 대공원에서 삼광사 내려오는 길목엔
방물과 생활용품들로 난전을 여는 백발노인이 있었다.
비가 오는 날만 아니면 빨간 날도 검은 날도 모두 정상 영업 중인 할아버지.
나는 출퇴근길에 항상 할아버지가 난전을 펴고 라디오를 듣는 모습을 봤다.
내가 양 부장에게 옴팡 깨지고 욕지거리를 읊으며 퇴근할 때도,
친구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무거운 마음으로 귀가할 때도,
내 지난 사랑이 내 앞으로 남긴 빚 독촉장에 황당할 때도,
그는 석상처럼 무심하게 앉아 방물을 팔았다.
들여다보면 참 하잘것없는 물건들.
지금은 누가 쓰나 싶은 검은 고무줄, 참빗과 꼬리빗,
빨랫줄로 썼던 초록 나일론 줄이나 바늘과 굵은 명주실.
한 번도 그 난전에 손님이 있는 걸 본 적이 없는데
할아버지는 내내 거기서 무언가를 팔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난 뭔가를 사주고 싶었다.
그가 특별히 지나가는 날 향해 호객행위를 하거나,
하다못해 눈을 맞추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저 매일을 그 자리에서 마주친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쩐지 빚이라도 진 느낌이었다.
매일 그 마음이 커져서 자꾸 난전을 유심히 바라보게 됐다.
혹시나, 혹시나 내가 필요한 물건을 팔고 있을까 봐.
그러던 어느 날, 커튼을 바꾸다가 커튼침이 부러졌다.
나는 오천 원짜리 지폐를 들고 난전으로 내달렸다.
늘 뭔가 사주고 싶었지만 마땅히 살 게 없어 미뤘던 일.
부러진 커튼침이 호재도 아니건만,
이상하게 커튼침 사러 가는 길이
빚 갚으러 가는 사람처럼 달가웠다.
그런데 그 자리에 할아버지가 없었다.
몸이 편찮으신가, 집에 일이 있으신가.
당장에 늘어진 커튼을 달아야 했지만
어쩐지 딴 데선 사고 싶지 않아서
나는 인사도 한 번 하지 않은 할아버지를 내내 기다렸다.
고정되지 못한 커튼은 밤낮으로 축 쳐져 거슬렸다.
그렇다고 딴 데서 사고 싶지도 않은 내 맘도 거슬렸다.
하루가 이틀이, 사흘이—
꼭 숙제를 미룬 아이처럼 난전 있던 자리를 서성거리다가
마침내 할아버지가 난전을 열었다.
난 꼭 약속을 바람맞은 사람처럼 할아버지에게 따져 물었다.
“왜 이제야 열어요, 커튼침 사러 몇 번을 왔었는데!”
할아버지는 놀란 기색도 없이 웃는 낯으로 그랬다.
“그랬나, 미안하다. 시골에 좀 갔다 왔다.
죽은 마누라 묘지에 벌초하러 다녀왔다 아이가.
미안하다, 미안해. 불안했더나?”
불안? 무엇이?
이름도 모르는 구십 먹은 노파가 사고라도 당했을까 봐?
내 안의 불만은 커튼침을 사지 못해서 생긴 것뿐이었는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내게 할아버지는 그랬다.
“내 나이 구십에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지.
집에서 기다리나, 여기서 기다리나 그래서 나와서 앉아 있는 건데
한 번씩 시골 가면 아줌마들이 그러대.
‘할아버지를 봐야 아, 어제 같은 오늘이구나,
오늘 같은 내일이겠구나 싶어 진다’고.
그 소리 듣고 나니 점빵 문을 못 닫겠더라.
늘 있던 게 갑자기 없으면, 뭔 일 날까 불안하다 아니가.”
껄껄 웃는 할아버지 앞에서 나는 알게 됐다.
아, 이 난전에 손님들은 방물을 사는 게 아니구나.
검은 날도 빨간 날도 따로 없는 할아버지 난전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을 위한
‘안심부적’을 팔았다.
그러니 난 빚진 게 맞네.
그 할아버지, 지금도 거기서
추억을 내놓고 안심부적이 되어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할아버지가 매일 난전을 펼쳤던 것처럼
브런치를 시작한 지 보름—
나도 매일같이 글을 쓰고 있다.
또 모르지,
누군가는 보잘것없는 방물 같은 내 글들을
안심부적 삼아
어제 같은 오늘을, 오늘 같은 내일을
간신히 꾸려가고 있을지도.
우린, 서로가 서로의 안심부적으로 사니까.
당신들이 지켜준 내 하루에 대한 보답으로
고작 ‘라이킷’밖에 못 누르지만,
늘 고맙습니다.
당신의 하루를 함께 살게 해 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