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자 눈앞에 설경이 펼쳐져 있었다.
첫눈이라는 말을, 전하지 못했다.
몇 주 전에 연봉 협상 이메일을 사장에게 보냈다는 말도,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묻는 일도 할 수 없었다.
파마와 염색이 마음에 들지 않아 컴플레인을 했다는,
그렇게 사소한 일상들까지도.
이제는 더 이상 전할 수 없다.
모든 일상을 나누던 네가 사라진 지도 오래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을 겹겹이 쌓아두고 있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야.’
이성으로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감정은 아직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게 슬프다.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그 빈자리를 드나드는 거센 바람이 시리다.
수많은 기억 중에서 좋은 것들만 떠오르는 건
그 시간이 햇살처럼 눈부셨다는 뜻이겠지.
이제, 그만. 정말 그만하자.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에게 선언했다.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로 하루가 쉽게 무너져 내렸고,
잠을 뒤척이며 밤을 지새운 날도 많았다.
이러다 정말 내 마음과 몸이 먼저 부서질 것 같았다.
최근, 심리치료사와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실망, 좌절, 배신, 무기력, 원망, 슬픔, 아픔, 미움, 상실 그리고 후회.
커다란 돌덩이에 눌린 듯 명치가 답답했던 이유를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마음먹는다고’ 달라지지는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진다는 말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의 빈자리를 희망적인 무엇으로는 채워야 했다.
텅 빈 마음의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오래 생각했다.
상담사가 말한 그 ‘빈자리’를 이제는 마주해야 했다.
최근 책에 마음을 기울였다. 책을 읽는 사이사이,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쓰디쓴 삶이라도 이야기로 써서
고통너머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마음을 쓰는 일에 나를 쓰는 것
그것이
나의 사랑이라고 아직 믿고 있어요 /p341"
"저는 겪은 일을 쓰기보다는 겪는 감정을 쓰는 편이에요 /318"
"제가 생각하는 어른은...
어른이어야 할 때는 어른답게 말하고 행동하고 마음을 쓰는 사람인 거죠 /333"
-쓰게 될 것, 최진영
책을 읽으며 위로받는 순간들이 생겼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어느새 글쓰기와 책 읽기가 내 마음의 빈자리를 천천히 감싸는 방법이 되어 있었다.
상담사는 말했다.
“지금은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세요.”
누군가를 위로하듯,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부재는 결국 그 사람을 잊는 일이 아니라, 그가 남기고 간 마음의 틈을 내 방식대로 다시 채워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그 빈자리를 서둘러 지우려 하지 않아도, 억지로 새로운 것으로 덮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텅 빈 공간은 때로 고요했고, 때로 아팠지만 그 자리에서 나는 나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한 문장을 오래 붙잡고 있는 동안 나는 아주 천천히 회복되는 마음의 움직임을 느꼈다.
누구에게도 건네지 못한 말들은 이제 나를 이해하는 문장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언젠가 이 모든 시간이 내 마음을 다시 단단하게 세워줄 거라는 믿음이 아주 조금은 생겼다. 그리고 그 아주 작은 믿음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
그렇게 다시, 나에게로 돌아가는 중이다.
나다워진다는 건 무엇일까.
글쓰기, 책 읽기, 사진, 산책, 그리고 고요한 틈.
남이 아닌 내가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가는 일.
어쩌면 그게, 진짜 나다운 일인지도 모른다.
Just as I am, Soo.
브런치스토리 작가명을
Soo 수진 → 이수 E Soo로 변경합니다.
글의 마음은 그대로입니다. 앞으로도 같은 결의 글을 이어갑니다.
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