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알아 그 마음
“슬퍼서 전화했어. 네가 옆에 있으면 좋았을 텐데… 넌 왜 그렇게 멀리 갔어. 하필이면 왜 거기야.”
수화기를 타고 건너온 낮은 울음소리에 시계를 보았다. 매서운 바람과 눈발이 날리는 이곳의 오후, 친구가 머무는 한국은 모든 소음이 잦아든 새벽 4시였다.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지만, 우리는 깊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한 번도 같은 반이었던 적 없던 우리가 다시 만난 건, 졸업 후 내가 살던 동네였다. 친구의 직장은 내 집 근처였고, 내가 다니던 회사 또한 그 골목 어딘가였다.
어느 점심시간, 식당의 소란 속에서 우리는 단번에 서로를 알아봤다. 같은 반은 아니었어도 오가며 마주쳤던 서로의 잔상이 반가워 환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친구는 커다란 콘트라베이스를 켜는 음악가였고, 나는 그림을 그리는 미술가였다.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공부하던 시간에 대신 악기를 잡고 붓을 들며, 각자의 꿈을 향한 예체능계 여고생들. 그 시절의 공통분모가 우리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학창 시절엔 접점 없던 인연이 서먹함도 없이 이토록 깊게 뿌리내린 건, 아마도 같은 공간을 공유했다는 기억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금세 어색함을 지워냈고,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진 순서처럼 자연스럽게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수화기 너머로 내 이름을 불렀다.
“수진아…” “네 목소리 듣고 싶어서. 그냥…”
친구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 짧은 침묵에 더 긴 대답을 담아 보냈다. “그래, 잘했어.”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다. 누군가가 사무치게 생각나서, 그저 그 사람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고 싶은 날. 대단한 위로보다 그저 네가 거기 있다는 사실 하나에 안도하고 싶은 그런 마음. 그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내 이름을 부르는 친구의 떨림에 나는 '나 여기 있다'는 존재의 신호만을 보냈다.
차라리 내가 네 곁에 있었더라면, 너는 조금 덜 슬펐을까. 내가 네 눈물을 직접 닦아주었더라면 너는 조금 더 괜찮았을까. 아무 말 없이 내 이름만 되풀이하는 친구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선명히 읽히는 마음, 그리고 뒤따라올 말들. 나는 감히 다음을 예상하지 않은 채 오직 그녀의 호흡을 기다렸다. 친구는 한참을 울기만 하다 전화를 끊었다. 그저 울었다. 슬퍼서 전화했다는 그 한마디에 나는 내가 여기 있다는 무언의 신호를 보냈을 뿐이다.
“그래, 괜찮아.”
전화가 끝날 때까지 '무슨 일이야', '말해봐', '왜 그래' 같은 질문은 꺼내지 않았다.
그저 쏟아지는 울음소리를 묵묵히 받아내었다. 그것이 내가 그 새벽, 먼 곳에서 해줄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깊은 포옹이었다.
멀리 있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서로에게 가장 친밀한 우리였는데, "왜 멀리 있어"라고 묻는 그녀의 물음이 가시처럼 박혀 나를 아프게 했다.
사실 나도 그랬다. 슬퍼서 울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억지로 참아냈다. 어쩌면 그녀의 행동은 나 자신의 반추가 아니었을까. 전화기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고, 눈물을 삼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괜찮은 척 하루를 보냈다.
우리가 사는 곳의 시차가, 그 시간의 차이가 못내 버거워 혼자 삼켜버린 밤들이 내게도 있었다.
친구 또한 그랬을 것이다. 시계를 확인하고, 지금 전화해도 괜찮을지 수십 번 고민한 끝에 간신히 용기를 내어 번호를 눌렀을 것이다. 예전에는 한 걸음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살았는데, 이제는 그리움을 참아내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 사이의 거대한 벽이 되어버렸다.
서로를 너무 아끼고 배려하느라 지켜온 그 예의들이, 어쩌면 우리를 서서히 멀어지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기대고 싶은 마음을 단념하며 서로의 존재가 희미해져 가던 찰나였다.
오늘 친구가 터뜨린 전화는, 그동안 내가 너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대신 쏟아내 준 것만 같았다.
나도 그랬어. 나도 네게 전화하고 싶을 때가 있었어. 슬퍼서, 네가 그리워서.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울음을 참아내는 법을 알아갔다. 물리적 거리는 마음의 거리마저 재단하려 들었고, 나는 네가 가장 필요할 때 곁에 없다는 걸 '배려'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지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새벽에 도착한 너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우리 사이를 가로막던 시차의 벽을 단번에 허물어뜨렸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에서도 네 슬픔의 파동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을 느끼며 깨달았다. 우리가 나눈 것은 깊은 마음이었고 진심이었다는 것을.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 동안 정적 속에 머물렀다. 비록 당장 친구의 눈물을 닦아줄 손길은 닿지 않겠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이곳에서 보내는 오후의 햇살이 너의 깊은 새벽을 비추는 위로가 될 수 있음을. 그리고 네가 부른 나의 이름이, 내가 견디고 있는 이 낯선 타국에서의 시간을 지탱해 주는 가장 다정한 응원이었음을.
멀리 있다는 미안함 대신, 멀리 있어도 너의 첫 번째 나였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다음에 네가 다시 이름을 부를 때,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 더 크고 선명한 목소리로 대답할 것이다.
"응. 나 여기 있어."
S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