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사소한 Nice

알싸한 추위 속에서 만난 1도의 다정함

by 이수 E Soo

힐끔 시계를 본다. 째깍째깍, 4시 30분.

마법처럼 업무가 멈추는 시간. 퇴근 시간이다. 이곳의 퇴근 시간은 변하지 않는 법칙과 같다.

이메일이 와도 내일로 미룬다. 동료가 퇴근 5분을 남기고 일 이야기를 꺼내려하면 "내일 이야기할까?"라고 당당히 말한다. 정말 급한 일이 아니라면, 누구도 퇴근을 방해할 수 없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며 "모두 내일 봐"라고 인사를 건넨다. 동료들이 앵무새처럼 인사를 되받는다. 어떤 동료는 "Bye, Soo", 또 다른 동료는 "See you tomorrow". 그런데 캐네디언 동료 한 명은 인사가 사뭇 다르다.

"운전 조심해! 알았지? 지금 길이 안 좋아. 잠깐만, 내가 교통상황 확인해 줄게."

괜찮다고 손사래를 쳐도 그는 친절하게 도로 상황을 체크해 주며 다시 한번 안전운전을 강조한다. 과할 정도의 친절, 'Canadian Nice'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캐나다 사람들은 화합(Harmony)과 예의(Politeness)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Oh, that's interesting!" 감탄사 뒤에 "진짜 별로다"라는 속마음을 숨긴다.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어 분위기를 망치는 것을 '무례하다고' 교육받으며 자란다. 그래서 앞에서 대놓고 화를 내기보다는 "일단 좋게 좋게 넘어가자"는 마인드가 강하다.

그들의 정체성 안에는 "우리는 친절하고 매너 있는 사람이다"라는 자부심이 깊게 깔려 있다. 자신의 평판을 관리하기 위해 면전에서는 최선을 다해 나이스한 모습을 유지한다. 그래서 이들의 친절은 때로 이중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건네는 "Drive safe"라는 인사는 단순히 교통법규를 지키라는 말이 아니다. "너라는 존재가 내일도 무사히 이 자리로 돌아오길 바란다"는 공동체적 안녕을 빌어주는 습관인 것이다. 서로의 무사함을 빌어주는 면모가 바로 캐나다의 얼굴이다.


사무실 밖으로 나오니 공기부터가 다르다. 온도차가 크다. 입김에서 하얀 연기가 새어 나온다. 이 알싸한 추위가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졌다. 옷깃을 여미고 종종걸음으로 차 문을 열었다. 미리 켜둔 히터 덕분에 차 안은 방금 나온 사무실처럼 훈훈하다.

집으로 가는 길, '저녁은 뭘 먹지?' 고민에 빠진다. 엄마와 가까운 곳에 살았다면 고민 없이 엄마의 음식으로 배를 채웠을 텐데. 먹는 걸 그리 즐기지 않으면서도 매번 무엇을 먹을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건, 여기가 한국과는 너무 다른 환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배달 음식도, 밀키트도, 한국 반찬도 다 있지만, 맛보다 중요한 건 음식을 둘러싼 '환경'이라는 걸 타향살이를 하며 깨닫는다.

냉장고가 텅 빈 것이 떠올라 마트에 들렀다. 야채 몇 종류와 세일 중인 진라면 한 봉지를 집어 드니 장바구니 두 개가 꽉 찼다.

내가 사는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봤다, 눈 내리는 어느날

아파트 입구에 다다랐을 때, 저 앞에 한 남자가 먼저 들어가는 게 보였다. 양손 가득 무거운 짐을 들고 열쇠를 꺼낼 생각을 하니 벌써 짜증이 밀려왔다. 퇴근길의 장보기는 피곤을 배가시킨다. 그런데 성큼성큼 앞서 걷던 그 남자가 문을 열고 멈춰 섰다. 내가 도착할 때까지 문을 잡아준 채, 아무 말 없이 미소만 건네며.

지쳐있던 마음이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 예상치 못한 순간의 친절은 물기를 가득 머금어 무거웠던 내 몸을, 물기를 쫙 뺀 가벼운 스펀지로 만들어 주었다.

이토록 고단한 날엔 작은 'Nice'가 너무도 크게 다가온다. 나는 고맙다는 말로 그 친절에 화답했다.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남자가 내 양손의 장바구니와 어깨에 걸친 도시락 가방, 핸드백을 보더니 본인이 타고 내려온 엘리베이터를 내가 타기 편하게 잡아주고 있었다. 이 역시 '나이스'한 모습이다. 덕분에 나는 무거운 짐을 바닥에 한 번도 내려놓지 않고 집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친절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은 실천이다. 누군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도와주는 배려. 그 배려 덕분에 입안에 아이스크림을 문 듯 달콤해진다. 캐네디언의 '나이스'는 이렇듯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기보다 사회적 에티켓과 규칙을 지키는 외적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라면 어땠을까? 지쳐있는 누군가를 향해 저들처럼 달콤한 미소를 보내며 기꺼이 문을 잡아줄 수 있었을까? 내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그 피로를 타인에게 전가하며 살았던 건 아닐까.

오늘 만난 작은 '나이스'들이 쌓여 한 주의 무거웠던 피로가 씻겨 나가는 듯했다. 그들의 친절이 좋았다. 어쩌면 나도 이 캐네디언 특유의 친절함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먹던 엄마의 따뜻한 찌개 같은 진한 정(情)은 아닐지라도, 이곳에는 이곳만의 ‘식지 않는 예의’가 있다. 텅 빈 냉장고를 채우러 가는 길은 쓸쓸했지만, 돌아오는 길의 마음은 묵직한 장바구니와 달리 가벼웠다. 문을 잡아주고 미소를 건네는 그 짧은 찰나의 연결들. 그 나이스한 배려들이 모여, 얼음장 같은 캐나다의 겨울을 살아가게 하는 최소한의 동력이 되어준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때론 가식처럼 느껴졌던 그들의 과한 인사가, 이제는 내 입술에도 자연스럽게 머문다. 나 역시 누군가의 무거운 장바구니를 보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채 기다릴 것이고, 퇴근하는 동료에게 잊지 않고 도로 상황을 일러줄 것이다. 서로의 속마음까지는 다 알 수 없어도, 적어도 서로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은 이 알싸한 공기 속에 실존하고 있으니까.

오늘따라 이 친절함이 추운 날씨 속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저 나이스한 이웃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이 도시의 온도를 1도쯤 높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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