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날씨 이야기

관찰한다는 것은, 결국 사랑한다는 것

by 이수 E Soo

사람은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예민하고 모든 감각이 매 순간 꿈틀거리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2주 내내 영하 14도에서 22도까지 곤두박질치는 기온. 바깥바람에 닿는 순간 손발과 귀는 얼어붙고 감각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퇴근 후 즐기던 산책 루틴이 사라진 지도 오래다. 반짝이는 햇살 없는 낮과 유독 빨리 찾아오는 겨울밤은 지루하고 피곤하기만 하다.

토요일 아침, 창밖이 환하다. 밝은 기운의 빛이 방 안 가득 들어찬다. 하늘은 끝 간 데 없이 푸르고, 그 위를 떠다니는 구름은 자유롭기만 하다. 창 너머 풍경은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해 보이는데, 실제 기온은 영하 14도. 한파경보다.

갑자기 마음이 요동친다. 이런 날, 왜 하필 반짝이는 윤슬이 보고 싶은 걸까. 해가 하늘 높이 뜬 것을 확인하고서야 집 주변의 호숫가를 검색하기 시작한다. 밝은 빛이 가득한 날은 집에 있을 수가 없다. 마음이 들뜬다.

차로 한 시간 거리 안에는 수많은 호수가 있다. 어디를 가야 내 마음이 맑아질까. 무엇을 보아야 마음 가득 빛을 담아 올 수 있을까. 하나하나 지도를 넘겨보며 빌딩 숲에서 벗어난 호숫가를 찾는다. 오롯이 자연만 보이는 곳에 닿고 싶었다. 인위적인 것들에 내 시선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으므로.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는 낯선 이들과 자연스럽게 날씨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은행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도, 마트 계산대에서 앞사람이나 캐셔와 눈이 마주칠 때도, 집으로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오늘 날씨 정말 좋죠?"라며 서로의 하루를 물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더 이상 날씨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나에게 말 걸지 마'라고 무언의 선언을 하듯 에어팟을 깊숙이 끼거나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다. 누군가 말을 걸면 그제야 에어팟을 살짝 빼며 "미안, 못 들었어. 뭐라고 했어?"라고 묻는 일들. 이제는 나 역시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서로에게 다정한 안부를 건네는 일이 더 이상 쉽지 않은, 그런 서늘한 거리감이 우리 사이에 생겨난 것이다.


그럼에도 캐나다의 자연을 마주할 때마다 기어이 경탄하고 만다. 매일이 다른 날씨와 공기, 나무들의 미세한 흔들림, 피부에 닿는 바람의 결. 아침이면 눈부시게 차오르는 붉은빛과 저물녘 오렌지빛과 노란빛이 뒤섞이는 황홀한 어울림. 이 모든 놀라움을 발견하고 그 감각을 누군가와 마지막으로 나눈 게 언제였을까.

"오늘 아침 해 뜨는 거 봤어? 색감이 어쩜 그렇게 다양할까. 오렌지빛인가 싶으면 살구색이 섞여 있고, 핑크빛인가 하면 어느새 보라색이 번져 나오고..."

운전 중에 스치는 나무들은 때로 불편한 자세로 서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이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려는 강철 같은 의지였다. 견고하게 우뚝 서 있는 그 모습은 이 겨울을 단단히 버텨내라는 에너지를 건네는 듯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대개 매일 스치는 것들에 무심하다. 하늘과 바람, 눈부신 햇살과 나무들, 가까이에 있는 것에 깊이 고민해야 할 주제로 여기지 않는다. 그저 매일 반복되는 단조롭고 우연한 풍경일 뿐이라 치부한다. 그 흔한 현상을 단 1분이라도 눈여겨보거나 감탄하는 일을 무의미하게 여기곤 한다.

하지만 아주 한가로운 순간, 눈앞의 찬란한 풍경을 우리는 어떤 언어로 그려낼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수많은 말을 내뱉는 사람들 틈에서, 오늘 구름 사이로 쏟아지던 빛줄기의 찬란함을 발견한 사람이 있을까? 어젯밤 해가 저물 때 구름들이 붉게 물들며 추던 춤을 가만히 바라본 사람은 있었을까? 눈이 내리는 순간 빛이 그 결정체 사이에서 찰나로 반짝이던 그 눈부심을 목격한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윤슬과 겨울 바람이 차갑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호숫가에 서 있다.

차가운 공기에 코끝이 찡해지고 손등이 발갛게 얼어붙어도, 눈앞에 펼쳐진 호숫가의 빛을 마주하는 순간 깨닫는다. 혼자 간직하기엔 이 광경이 너무나도 눈부시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가 날씨 이야기를 멈춘 건 서로에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매일을 살며 해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기에 감성적인 언어를 나눌 여유가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내일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출근길에 오르겠지만, 관찰하는 것이 곧 사랑하는 것이라 했던 존 러스킨*의 말처럼, 나는 오늘 본 것들을 마음에 세밀하게 담아 동료들에게 '말 그림'으로 건네려 한다. 오늘 보았던 반짝이는 순간의 찬란함과 거센 바람에 느낀 온도, 유유히 흐르는 조각구름의 움직임을 묘사할 것이다.

“주말에 뭐 했어?”라고 물을 동료들에게 건네주고 싶은 건, 오늘 본 햇살에 비친 호숫가의 반짝반짝 빛나는 윤슬이다.

“날씨 너무 좋았잖아.”

바람이 칼날처럼 매서워서 손이 금세 빨개졌지만, 너희들에게 보여주려고 사진을 찍어왔다고. 이 눈부시게 황홀한 장면과 그 속의 벅찬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Soo+

*존 러스킨(John Ruskin): 영국의 예술 비평가.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 곧 사랑하는 것"이라 믿으며, 세밀한 관찰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언어와 그림으로 재현할 것을 강조했다.
여행의 기술, 저자: 알랭 드 보통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마음에 선을 긋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