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선을 긋는 이유

우리, 친구가 될 수 있을까

by 이수 E Soo

출근 전, 불쑥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직장 동료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어젯밤 늦은 시간, 곧 이태리로 돌아가는 동료에게서 도착한 다정한 메시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 어떤 요일에 시간이 돼? 네 스케줄에 맞출게."


한국을 떠나오던 날, 나는 몇 명의 오랜 친구를 제외한 모든 관계를 단호하게 끊어냈다. 그땐 사람에 대한 미련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쉼 없이 몰아치던 직장 생활에 지쳐버린 탓에, 동료라는 이름의 인연들과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팀원 간의 소리 없는 경쟁, 잦은 회식, 매주 월요일마다 숨 막히게 이어지던 팀장 회의. 팀원 관리와 상하 조직의 위계, 협력사들과의 복잡한 이해관계까지. 나는 그 모든 현장의 소음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캐나다에서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는지,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뭐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다시는 디자인 일을 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내가 쌓아온 커리어와 사람들을 미련 없이 밀어냈다.

하지만 삶은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후회의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다시 디자인 일을 해야겠다'라고 마음먹었을 때, 비로소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내게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던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토록 매정하게 밀어냈던 한국의 동료들이었다.

내가 그어버린 선(線) 밖에서 혼자서도 충분할 거라 믿었던 오만이 무너지기도 했다. 어젯밤 동료가 보낸 "네 시간에 맞출게"라는 짧은 문장이, 예전처럼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캐나다에 온 이후, 한국 번호가 사라지고 새로운 캐나다 번호가 생기면서 신기하리만치 많은 것이 함께 지워졌다. 카톡과 메시지로 간간이 소식을 물어오던 팀원들, 그리고 동료들의 연락처가 자연스럽게 내 삶에서 소멸했다.

잘 지내는지, 캐나다는 어떤지, 낯선 타국 생활에 적응은 잘하고 있는지. 나를 걱정하며 건네던 그 모든 안부들이 그때는 왜 그리도 버거웠을까. 다정함조차 소음으로 느껴지던 시절, 나는 그들의 연락이 불편했다.

그렇게 나는 직장 동료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동료는 그저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의 몫을 다하며 잘 지내면 그뿐인 존재였다. 사무실 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의 연결 고리는 마땅히 끊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 밖의 소중한 시간을 나누며 따로 만남을 이어갈 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절실한 관계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미 관계에서 지칠 대로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적당한 거리감만이 나를 숨 쉬게 하는 유일한 공간이라 여겼다.


지금 내가 일하는 공간에는 다섯 명의 동료가 있다. 국적도 배경도 제각각인 그들은 매일 8시간을 함께하며 서로를 '패밀리'라 부른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제안하는 퇴근 후의 모임을 몇 번이고 거절했다. 나에게 그들은 여전히 '동료'라는 선 안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선을 자꾸만 넘어오려던 건 내 앞자리의 발렌티나였다. 이태리에서 온 그녀는 늘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다. 주말에 간 레스토랑, 필라테스 수업 이야기, 그리고 이태리 고향에서 보내온 쿠키를 내밀며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나누고 싶어 했다. 건조한 내 일상에 스며드는 그녀의 밝고 투명한 다정함. 나는 그것이 내 따분한 하루를 지탱하는 작은 즐거움이라는 것을 애써 모른 척하며 지냈다.

그런 그녀가 오늘 아침, 나를 보며 울먹인다.

"수, 나 이태리로 돌아가야 해. 비자 연장이 안 됐어. 너와 계속 여기서 일하고 싶은데... 다음 달이면 떠나야 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랐지만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속상한 사람은 그녀일 테니까. 나는 대신 가녀린 그녀를 품에 꼭 안아주었다. 내 품에 안겨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그녀의 떨림을 느끼며, 나 역시 예고 없는 이별 앞에 슬퍼졌다.

비로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찰나였다. 이제 막 곁을 내어주려는데 그녀가 떠난단다. 낯선 땅에서 누군가를 친구로 받아들이려는 순간 찾아오는 이별의 소식.

'결국 헤어지는구나'라는 허망한 생각이 내 마음을 흔들었고, 울고 있는 그녀를 보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발렌티나가 떠나고 나면 나의 오피스는 다시 고요해지겠지만, 나는 이제 안다. 내가 그어놓은 선을 기어코 넘어와 준 그녀 덕분에 나의 건조했던 일상이 아주 잠시나마 환하게 밝아졌음을.

이태리로 돌아가는 동료를 생각하며 쓴 캘리그래피, 마음을 전하고 싶다.


모든 관계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지만, 이곳에서의 인연은 유독 연기처럼 허무하다. 내가 인연의 끈을 놓지 않는다고 해서 이어지는 것도 아니며, 마음을 나누려 하면 어느새 손가락 사이로 허망하게 빠져나가 버린다. 낯선 타국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점점 버거워지고, 조금씩 열리던 마음은 다시 빗장을 걸어 잠근다.

어쩌면 내가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려 했던 건, 사실 헤어짐이 두려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시는 상처받기 싫어서, 외로움에 지치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픔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는 인연의 소중함과 이별 뒤의 성숙을 말하지만, 나에게 남겨진 것은 그저 감당하기 벅찬 슬픔과 외로움뿐이었다. 내가 그어놓은 선은 타인을 밀어내기 위함이 아니라,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울타리다. 다시 이별이라는 찬바람이 들이닥칠 때, 나는 또다시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고 싶지 않다. 관계의 시작보다 중요한 건 나의 평온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이제 나는 떠나가는 것들을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내 곁에 남은 고요를 온전히 끌어안는 쪽을 택하려 한다. 낯선 이 땅에서 비로소 내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으며, 이 고요한 시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조금씩 확장해 나가고 싶다.

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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