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각적 번역가입니다

직업은 그래픽 디자이너예요.

by 이수 E Soo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일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예쁘게 치장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에 흩어진 수많은 의미에 가장 적합한 그릇을 마련해 주는 일이며, 메시지라는 소중한 내용물을 온전하게 전달하는 정교한 과정이다.

디자인의 진짜 시작은 무엇을 더할지보다 무엇을 뺄지 고민하는 순간에 있다.

배치한 서체 하나, 색감의 농도 하나는 누군가의 시선을 안전하게 안내하는 이정표가 된다. 가장 효율적인 경로로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그 길 위에서 뜻밖의 매력적인 감상을 놓치지 않게 설계하는 것. 그것이 디자이너가 매일 네모난 화면 앞에 앉아 여덟 시간 동안 몰두하며 찾아내는 선과 면, 그리고 여백의 질서다.

완성된 Malta Book

최근 몰타(Malta)의 여행기를 담은 책을 디자인했다. 작업의 시작은 늘 타이포그래피와 전체적인 색감의 흐름을 결정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책 한 권을 펼쳤을 때 각각의 페이지가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단단한 통일감을 갖게 하는 것. 나는 그중에서도 글자가 가진 힘을 좋아해 매거진과 여행북을 만드는 회사에 입사했다. 수많은 서체를 탐색하고 타이틀과 본문, 캡션과 인용구의 배열을 수없이 조절하는 과정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조율과도 같다. 시각적으로 어긋난 조합은 금세 불협화음을 내기에, 미세한 어색함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집요한 시선이 필요하다.


나에게 텍스트는 단순히 읽어야 할 정보이기 전에 하나의 이미지다. 글자 역시 선과 면, 그리고 여백으로 이루어진 시각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에게 글자는 소리 내어 읽기 전, 먼저 눈에 들어오는 도형과 같다. 이번 몰타 작업에서 커다란 'A'나 'I' 같은 이니셜을 배치한 것 역시, 그것이 글자를 넘어 화면의 중심을 잡아주는 강력한 시각적 오브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글줄 사이의 간격이나 자간에 따라 화면의 무게는 달라진다. 빽빽한 글은 무겁고 진한 질감을, 여유로운 글은 가볍고 투명한 느낌을 준다. 글자를 이미지로 파악할 때 비로소 사진과 글 사이의 여백이 만드는 리듬감을 설계할 수 있다. 내가 말하는 시선의 길을 닦아주는 일은 이처럼 글을 이미지의 일부로 배치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사람들은 내용을 읽기 전, 잘 정돈된 서체 배치를 통해 이미 이 책의 분위기를 직감한다.


사진 배열과 타이포 그리고 면과 여백

이후 수천 장의 사진 중 책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단 몇 장을 골라내는 일이다. 같은 구도라도 빛의 각도와 조명에 따라 사진은 전혀 다른 말을 건넨다. 포토그래퍼가 담아 온 찰나의 순간들을 일일이 감상하며 내 마음을 먼저 움직이는 사진을 고른다. 이 과정은 글을 쓰는 행위와도 닮아 있다. 수만 개의 단어 중 가장 적절한 단어를 골라 문장을 만드는 것처럼, 나 역시 가장 적합한 사진과 레이아웃을 골라한 권의 이야기를 완성해 나간다.

116페이지의 공간 위에 사진을 재배치하고 디렉터와 머리를 맞대며 가시안을 확정 짓던 그 짧고도 강렬한 시간들. 나라는 통로를 거쳐 수많은 사진과 서체가 하나의 질서로 탄생할 때, 큰 감동을 느낀다.

사실 우리의 일상은 이미 디자인의 선택으로 가득 차 있다. 마트에서 물건 하나를 고를 때도 세련된 것을 집어 드는 행위는 단순히 안목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을 확인하는 즐거움이다. 정보 없이 책을 고를 때 표지에 이끌리는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감각적인 디자인의 책을 손에 쥐었을 때의 그 기분 좋은 만족감. 나는 내가 만든 책이 누군가에게 그런 시각적 즐거움과 명쾌한 이정표가 되길 바랐다.


세상은 너무 많은 정보로 넘쳐나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길을 잃기 쉽다. 디자이너는 그 복잡한 메시지를 색채와 모양으로 치환하여, 사람들이 구구절절 읽지 않아도 보자마자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선의 길을 닦아주는 사람이다. 혼란스러운 선택지 사이에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마음이 머물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믿는 디자인의 본질이다.


몰타의 정취를 담은 책이 마침내 인쇄되어 나온 날, 모든 동료와 오너가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디자이너가 배치한 서체 하나, 색감의 농도 하나는 누군가의 시선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된다. 정보를 가장 효율적인 경로로 전달하면서도, 그 길 위에서 매력적인 감상을 놓치지 않게 설계하는 정교한 작업.

그 창조의 매력이 나를 매일 다시 컴퓨터 앞으로 이끈다. 그리고 드넓은 세상을 보며 그 광대한 시선을 한 곳에 모아두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각적 번역가의 일이다.

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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