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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Oct 04. 2021

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면접의 시간차, 갈등의 일주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시차 적응을 하기도 전에 나는 네덜란드의 한 대학으로부터 박사과정 면접 제안을 받았다. 그 덕에 바로 책상 앞에 앉아 면접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 기간 동안 서류 통과를 기다리던 덴마크의 다른 대학이 있었는데 시간을 따져보니 면접을 하게 된다면 네덜란드 대학의 면접 바로 다음 주에 면접을 보게 될 거 같았다. 이때 덴마크 면접을 보기도 전에 네덜란드에 붙어 버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행복 회로를 한참 돌리고 있었는데 실제로 겪으니 이건 행복 회로가 아니라 불행 회로였다. 


한국시간으로 저녁 10시에 네덜란드 대학의 면접을 봤다. 15분 동안 나의 최근 연구들에 대해 간단히 발표를 했고 그 이후 면접관들(잠재적 지도교수들)의 질문을 받았다. 워낙 많이 해본 발표였기에 큰 무리 없이 발표를 했다. 이후 질문들에서도 면접관들이 내 연구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연구에 관련한 세부적 질문부터 자신들이 생각하는 연구의 한계점 같은 난이도 있는 질문도 받았다. 하지만 졸업 발표와 학회 등에서 이미 받아봤던 또는 준비과정에서 이미 생각해봤던 질문들이기에 여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오히려 연구 관련 질문만 받다가 갑자기 "이 자리에 왜 지원했습니까?"라는 면접다운 질문을 받았을 때 더 당황을 했다.  


면접을 거의 1시간가량 진행했을쯤 다음 면접도 있기 때문에 여기서 마무리를 하자는 말을 끝으로 면접을 끝냈다. 느낌은 좋았다. 하지만 다른 면접들도 느낌은 좋았는데 항상 떨어졌기 때문에 너무 들뜨지 않도록 감정을 자제해야만 했다


면접이 끝난 그 주 금요일, 덴마크 대학에서도 면접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바로 그다음 주가 아니라 다다음주 월요일에 면접을 보게 됐다. 생각보다 일주일이 늦어져서 네덜란드에 일찍 붙어버리면 어떡할까 하는 고민이 들었지만 네덜란드에 이미 붙은 것도 아니고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렇게 네덜란드 면접 후 일주일 뒤 연락을 받았다. 같이 일하고 싶다고.... 순간 기쁘긴 했지만 정말 딱 3초 행복했다. 이메일을 받자마자 생각난 덴마크의 면접에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심지어 이메일에는 이번 주 금요일까지 답변을 달라고 하는데 덴마크 면접은 다음 주 월요일이었다. 나의 즉각적 행동은 주변 거의 모든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한국, 스웨덴, 덴마크의 가장 친한 친구들은 물론 현재 지도교수에게도 연락을 했다. 


받았던 여러 조언들 중에 내가 실행에 옮긴 건 네덜란드 대학에 솔직하게 말해서 시간을 벌고 덴마크에도 솔직히 말해 결과를 빨리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네덜란드에 이메일을 보냈다. 다음 주에 면접이 있고 그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다행히도 네덜란드 측에서 내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 일주일 정도 더 시간을 주겠다고 답변을 받았다. 일주일의 시간이 충분할진 모르겠지만 일단 이것도 감지덕지이기에 정말 감사함을 전했다. 


그다음 주 월요일, 덴마크 대학의 면접을 봤다. 너무나 들어가고 싶은 자리여서 그런지 너무 긴장을 했다. 너무나 익숙한 내 연구에 대한 발표에서 엄청나게 버벅거렸고 질문들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순간 패닉에 빠져 어버버 하다가 모르겠다고 해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연구에 그다지 흥미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네덜란드에서는 연구에 대한 이야기로 거의 1시간을 이야기했는데 이번 면접은 20분 만에 끝나버렸다. 그마저도 10분은 내 연구 발표 시간이었다. 면접이 끝나고 알 수 있었다. 아 떨어졌다... 


떨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그날 밤 늦은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고 그냥 바로 네덜란드의 제안을 받아들이라는 엄마의 조언에 괜히 화를 냈다. 밥을 먹어도, tv를 봐도, 걷고 있어도 머릿속은 온통 면접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내가 왜 그렇게 대답했지? 왜 버벅거렸지? 왜 그걸 말하지 않았지?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떨어졌을까? 제발 붙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정말 괴로운 24시간이었다. 다행히도 고통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덴마크 면접 마지막 무렵 상황을 설명하고 결과를 빨리 받아봤으면 한다고 말해서 그런지 바로 다음날 저녁 덴마크에서 답변을 받았다. 모두가 알고 나도 알지만 애써 외면했던 답을 받았다. 떨어졌다고


속상하긴 했지만 깔끔하게 털어버리고 바로 네덜란드에 연락을 했다. 기다려줘서 고맙고 앞으로 같이 일을 하게 돼서 기쁘다고. 나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네덜란드가 없었으면 덴마크 면접을 망치고 정말 힘들었을 테니까. 결과론적으로 모든 과정들이 큰 문제없이 지나갔지만 결론이 지어지기 전까지 정말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지만 내 인생이 내 맘대로 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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