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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Feb 22. 2022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험난한 안착

도착 첫날 먹통이 된 카드와 BSN넘버 발급

네덜란드에 도착한 지 어느새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나라를 가든 항상 첫 한 달은 낯설고 어려운 시간이다. 그래도 이번엔 나름 스웨덴에서 네덜란드로 가는 거니까 그렇게 어렵지 않지 않을까 싶었다. 그 생각을 깨는 데는 네덜란드에 도착 후 단 5시간이 걸렸다.


네덜란드에 올 때 스웨덴에서 사용하던 카드를 가져왔다. 스웨덴은 유로존이 아니어서 환율을 따지는 건 한국과 마찬가지였지만 수수료가 들지 않았고 왜인지 한국 카드보단 같은 유럽인 스웨덴의 카드가 더 편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예상은 어느 정도는 맞았고 어느 정도는 틀렸다.


일단 한국 카드를 쓸 때 항상 요구하는 ID 체크를 하지 않아도 됐고 카드 비밀번호를 모든 구매마다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된 건 집 키를 받기 위해 첫 렌탈비를 낼 때였다.


아무래도 금액이 크다 보니 카드는 비밀번호를 요구했고 스웨덴 카드를 쓴 지 너무 오래됐던 나는 내가 자주 쓰던 비밀번호 중 하나를 입력했다. 스웨덴 카드는 한국 카드처럼 비밀번호를 내가 설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네덜란드 카드도 마찬가지였다). 은행에서 카드 비밀번호를 보내주고 나는 그 번호를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그걸 새까맣게 까먹고 있던 나는 내가 아는 나만의 비밀번호 몇 가지를 마구잡이로 눌렀고 3번 이상 실패하여 카드가 잠기고 말았다. 지금 당장 렌트비를 내고 집에 가서 얼른 쉬고 싶은데 카드가 먹통이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급하게 30분 동안 스웨덴 은행에 전화를 해봤지만 코로나로 인력 단축을 한 스웨덴 은행의 고객센터는 도통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유럽 내 국제 전화를 위한 요금을 모두 써버렸고 스스로 뭘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결국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겨우 부모님에게 입금을 받고 한국 카드로 렌트비를 냈고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 번 더 나를 힘들게 했던 사건은 BSN넘버를 받을 때였다. 네덜란드에서 월급을 받으려면 계좌가 필요했고 계좌를 열기 위해선 BSN넘버가 필요하다. 꼭 은행 계좌가 아니어도 네덜란드에 오래 체류한다면 BSN은 거의 필수이다.


아침 일찍 시청에 예약을 잡아뒀기 때문에 정말 일찍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고 시청으로 향했다. 잠깐의 대기 후 나를 담당한 직원을 만났다. 먼저 ID체크를 하는데 시스템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듯싶었다. 나의 여권을 한 장 한 장 스캔하며 확인하고 불 빛에 비춰보며 정말 꼼꼼하게 확인했다. 나에게도 어디서 왔냐, 여권 발급은 언제 받았냐, 사진은 언제 찍었냐, 생년월일이 언제냐, 네 이름의 스펠링을 대봐라 등등 이 여권이 정당하게 나의 여권임을 의심하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미국에서부터 사용한 여권이라 미국 비자와 함께 다른 다양한 국가의 출입국 기록까지 함께 있는데 네덜란드에 가져오는 여권에 그렇게까지 정성 들여 다른 나라의 기록까지 위조할까... 싶었다. 하지만 그게 그 사람의 일이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장장 30분의 여권 확인을 거쳐 드디어 다음 업무로 넘어가나 했는데 바로 브레이크에 걸리고 말았다. 현재 머물고 있는 집의 계약서가 제대로 서명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모든 계약서에 서명이 되어 있었지만 집 소유주 이름 바로 옆에 서명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인정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직원의 말대로 소유주 이름 바로 옆에 서명은 없었지만 이름에서 조금 떨어진 계약서 오른쪽 아래에 분명 서명이 들어가 있었다. 이 서명이 이 사람의 서명이다 설명을 했지만 직원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나는 시청을 나와 집 계약서를 썼던 회사에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 사정을 설명하고 서명을 다시 해달라고 요청하니 그쪽에서도 어이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해외에서 오는 수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거쳐가는 곳이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당황스러워했다. 회사는 혹시 모르니 서명에 도장까지 찍고 명함까지 주며 혹시 또 문제가 생기면 그 자리에서 바로 자신들에게 연락을 달라고 했다. (고마운 사람들...)


만반의 준비를 끝낸 계약서를 들고 가니 직원은 만족하며 겨우 BSN넘버를 넘겨주었다. 결국 이 날 학교 일은 하나도 못하고 왔다 갔다 고생만 했지만 그래도 BSN넘버를 받아 온라인으로 바로 은행 계좌까지 열었다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새로운 나라에 적응하는 게 처음도 아니고 이제 여유롭게 정착할 만도 한데 나에겐 절대 적응되지 않는 일인가 보다. 한국에서는 무슨 사건사고가 터져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데 새로운 나라에서는 작은 사건 하나에도 멘탈이 터져버린다. 은퇴하면 한국 가서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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