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으로부터 "기이한" 정도.
우주를 공부할 때 중요한 요소중 하나는 물체의 궤도이다. 달이 지구의 주변을 회전하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듯 우주의 많은 물체들이 중력에 의한 궤도를 갖는다. 이런 중력에 의한 궤도들은 원운동으로 만들어지는데 달과 지구가 완벽한 원을 그리지 않듯 대부분의 궤도들은 완벽한 원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때 이런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 이심률(eccentricity)이다.
완벽한 원 궤도는 e = 0으로 나타내고, 타원 궤도는 0 < e < 1, e = 1은 포물선 궤도, 그리고 e > 1 은 쌍곡선을 의미한다. 그리고 내가 공부하고 있는 행성계에서 중심적으로 다루는 범위는 원과 타운 궤도이다. 포물선과 쌍곡선을 가진 물체는 다시 별의 중력의 영향력 범위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행성계의 일부로서 더 이상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취급한다. 시뮬레이션에서도 이심률이 1 이상이고 별과의 거리가 일정 이상 멀어지면 해당 물체의 데이터를 더 이상 계산하지 않도록 한다.
이심률은 단위도 없고 대부분 0과 1 근처의 작은 숫자일 뿐이지만 천문학에서는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이심률로 물체가 얼마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지, 중력에 얼마나 영향력을 받고 있는지, 현재의 물리적 시스템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힘은 무엇인지, 앞으로 이 시스템이 어떻게 발전할지에 대해 알아낼 수 있다.
학부 때 논문 연구로 이심률에 대해 깊이 공부했었다. 관측에서 목성과 비슷한 질량을 가진 무거운 행성들이 높은 이심률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건 기존의 역학 시뮬레이션 결과들과 결을 달리하는 관측이었다. 시뮬레이션에서는 행성이 무거울수록 주변의 다른 물체들의 이심률을 높이고 스스로의 이심률을 낮추는데 관측에서는 결과가 반대로 나오니 충분히 연구가치가 있는 주제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우리 연구의 결론은 무거운 행성의 이심률은 단순히 행성 간의 역학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별의 중원소 함량(metallicity)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었고 그 영향을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해 논문을 발표했다.
이심률 자체는 단순하고 어렵지 않은 개념이다. 하지만 그 사소한 숫자 하나로 파고들 수 있는 물리학의 영역은 광활하고 그 영향력은 결고 사소하지 않다. 이심률은 사소하지만 거대한 존재감이라는 매력이 있다.
최근 내 삶의 방식에 약간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옳은 길은 불편한 길이고 그 때문에 눈에 띈다. 날 응원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지만 그 속에 한 명의 비난이 날 너무 힘들게 했다. 비난을 곱씹으며 정말 내가 잘 못한 걸까,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걸까 고민을 했다. 내 사소한 행동 하나로 세상을 바꾸면 얼마나 바꾼다고 이렇게 피곤하게 살아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살기에는 내 사소한 행동들에는 거대한 존재감이 있다고 믿는다. 내 사소한 행동 하나를 지키기 위해 나를 향한 비난에 대한 가시를 하나 더 세웠다. 나의 사소함이 거대한 변화가 되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