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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Nov 29. 2021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미련함

나에게 명령하지 마세요.

나를 대변하는 단어 중 단연 상위권은 미련함이다. 되돌아보면 선천적으로 성격이 미련하다. 주변에서 대쪽 같은 가치관을 심어주고 환경을 만들어준 게 아니다. 굽히지 않는 성격으로 어릴 때부터 어른들과 많이 싸우고 혼났고 특히 부모님과는 어언 30년 가까이 치고받고 싸우는 중이다.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의 명령을 듣는 걸 싫어했다. 친구는 물론, 선생님, 부모님 등등 그 누구도 나에게 명령을 내리지 말라!라는 태도였다. 친구들 관계에선 명령받기 싫으니 내가 리더를 하겠다는 입장이었고 선생님들과는 매년 부모님 상담을 치를 정도로 크게 싸웠다. 부모님과도 정기적으로 크게 싸웠다.


자라면서 지겹도록 들은 말은 버릇없다, 싹수없다, 어른을 우습게 안다, 고집이 세다, 이기주의 등등...


그래도 살아온 세월이 부끄럽지 않게 어느 정도 사회화는 되어있다. 내 리더십이 부족한 부분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타당한 명령은 묵묵히 수행한다. 상대가 나에게 타당한 이유로 설명을 하면 거의 대부분 승낙한다. 타당한 이유가 없더라도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고 나를 설득하려 하면 바보 소리를 들어도 그 부탁을 들어준다. 하지만 아직도 안 되는 게 있다. 지위의 권력으로 나를 찍어내리는 명령들. 순두부처럼 모든 요청에 오케이를 남발하다가도 조금의 명령조가 입력되면 아무 말도 듣지 않는 목석이 되어버린다.


예를 들면, 선생님 말 들어라, 부모님 말 들어라, 너는 내 학생이니까, 너는 내 딸이니까. 등등의 이유로 권위를 내세워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한다. 어릴 땐 그 권력이 무서워서 화가 나도 참고 따랐고 조금 크고 나선 약간의 반항 후 결국 복종했다. 약간의 다툼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순종하며 문제가 커지지 않았다. 그저 분노로 속에서 천불이 일었을 뿐. 문제가 커지기 시작한 건 내가 해외에 나가 살기 시작하면서 이다.


해외에선 내가 준비가 되었든 되지 않았든 나를 한 명의 성인으로서 오롯이 나의 모든 책임을 다할 한 인간으로 본다. 버거운 책임감에 짓눌려 괴로울 때도 있지만 그 속에서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은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한다는 것이다. 동등한 인간으로서 상대방은 나에게 복종을 요구하지 않고 무작정 명령하지 않는다. 복종과 명령의 자리를 제안, 부탁, 설명, 설득이 차지한다. 그리고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모두 내가 진다.


20대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지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 잠깐씩 들어올 때마다 어른들과 부딪치게 됐다. 그들에게 나의 시간은 고등학생에서 멈춰있지만 나는 이미 그들이 모르는 10년이라는 세월을 경험했다. 부모니까, 어른이니까로 순종하던 나의 모습을 찾지만 난 이미 그런 모습을 버린 지 오래고 더 이상 그 권력에 겁을 먹지도 않는다.


이 넓은 세상의 그 다양하고 대단한 사람들도 나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고 나도 그들에게 복종하지 않는데 한국에서 어른이라는 권위로 나를 찍어 내리려는  게 우습기까지 하다.


해외에서 나를 권위로 찍어 내리려는 사람을 아예 안 만났던 건 아니다. 세계가 넓은 만큼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고 그 속에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항상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의 비위를 맞춰주고 내가 참는 것이 나의 미래에 도움이 되고 그게 사회생활이라 말한다. 하지만 굽힐 바에 부러지는 나는 그저 그 사람들을 내 인간관계에서 끊어냈다. 그게 지나가는 사람이든, 학교 선배이든, 지도교수이든, 동료이든.


미래가 걱정된다. 사회생활 정말 못한다. 그렇게 살아선 성공 못한다. 미련하다 등등 참 많은 충고를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내 인생은 더 나아졌으면 더 나아졌지 끊어낸 그 관계로 조금도 망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끊어내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다. 내 주변에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한 명 한 명 나에게 소중한 사람뿐이고 나도 그들에게 소중한 사람이다. 내가 끊어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든 세상은 넓고 내 인생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다른 사람이 내 존재를 찍어 누르게 내버려 두지 말자. 찍혀 눌려서 낭비하기엔 나의 시간이 너무 귀중하다. 한 번 거슬렀다고 세상 망하지 않는다. 다만 중요한 건 내 행동의 결과는 오롯이 스스로 책임질 것. 책임지기 두려워 명령에 순종하며 살든, 망해도 결국 내 인생 온전히 책임지며 살든 스스로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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