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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Dec 15. 2021

화이자 부스터샷을 맞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지...

이번 월요일 화이자 부스터샷을 맞았다. 지난주부터 20대의 부스터샷 기간을 줄이겠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실제로 부스터샷에 관한 메시지도 많이 날아왔다. 화이자 1차 2차는 스웨덴에서 맞아서 주변 친구들보다 부스터샷의 일정이 더 빨랐다. 1월 초에 일단 예약을 잡아놨는데 이렇게 일찍 맞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1. 분위기상 언젠간 어차피 맞아야 할 것 같은데 기왕 맞을 거 한국에서 맞고 싶었다. 

나는 화이자 1차 2차 모두 매우 힘들었다. 원래도 거의 모든 백신에 하루 이틀 기본으로 앓는 체질이라 남들은 부작용이라고 할 때 나는 뭐 그 정돈 당연한 거 아닌가? 버틸만하지! 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정말 심하게 앓았다. 1차 2차 모두 둘째 날까지 정신을 못 차릴 만큼 앓았고 3일째는 되어야 몸이 회복됐다. 부스터샷도 그것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아플 거라면 그래도 가족들이 있는 한국에서 아픈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만약 혹시라도 상태가 심각해지면 한국이 병원에서 치료받기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부스터샷을 맞기로 결정했고 맞는다면 네덜란드로 떠나기 전에 한국에서 맞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 1월 스케줄이 하나도 정해진 게 없다. 

일단 한국에서 맞기로 결정했는데 예약한 1월이 아닌 잔여백신으로 이번 월요일에 맞은 이유는 내 1월 스케줄이 하나도 정해진 게 없다는 것이다. 1월 중 최대한 일찍 네덜란드로 떠나야 하는데 집도 아직 못 구했고 비행기도 아직 예매하지 못했다. 부스터샷의 효과를 인정받으려면 2주는 지나야 하는데 1월 중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상태로 1월에 부스터샷을 맞기에는 시간이 안 맞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잔여백신 알림이 수도 없이 울렸고 (왜 인지 주변에 잔여백신이 넘쳐났다) 충동적으로 백신을 맞으러 갔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지... 1차 2차 때 얼마나 아팠는지 잠깐 까먹었던 것 같다. 그러니 그렇게 용감히 충동적으로 백신을 맞았지. 말로만 정말 죽는 줄 알았다 했지만 실제로는 그 감각을 잊었었다. 이번에 다시 심하게 앓으면서 지난 고통들을 되새기게 됐다. 


월요일 점심 즈음 화이자 백신을 맞았고 아프기 시작한 건 밤 시간 즈음이었다. 조금 피곤한 느낌에 누워서 핸드폰을 하고 있었는데 머리가 멍해지면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잠깐 물 마시러 나왔다가 얼굴이 새 빨개진 나를 보고 엄마가 식겁하는 작은 소동이 있었지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니어서 친구들에게 백신 후기를 공유하며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잠에 들었다. 


새벽 2시쯤 살짝 잠에서 깼고 몸 상태가 많이 안 좋다는 것을 느꼈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머리가 너무 무거웠다. 빨리 다시 잠에 들면 고통을 느끼지 못할 거란 생각에 다시 잠들었지만 새벽 4시 정말 너무 아파서 잠에서 완전히 깨버렸다. 피부는 옷깃만 스쳐도 날카로운 것에 스친 듯 아팠고 온몸은 두드려 맞은 듯 너무 아팠다. 머리는 크게 아프진 않았지만 전반적인 감각이 둔했다. 약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빈속에 먹으면 더 아플까 봐 새벽 4시에 죽을 끓여 먹었다. 밥 반 공기를 죽으로 끓여서 먹는데 30분을 넘게 먹었다. 목으로 무언갈 넘기는 게 쉽지 않았다. 겨우겨우 그릇을 비우고 약을 먹고 바로 기절하듯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좀 괜찮은 느낌이 들었다. 몸이 욱신거리고 머리가 멍하지만 새벽만큼 몸이 나쁘진 않았다. 벌써 나았나? 싶어 아침으로 국밥을 시켜 먹었다. 하지만 국밥을 먹기 시작하자마자 다시 아파지기 시작했다. 아... 그냥 약효가 아직 돌고 있던 거구나... 싶었다. 결국 국밥을 절반 넘게 남기고 다시 약을 먹었다. 


저녁쯤엔 약을 먹어도 효과가 크지 않았다. 3차는 2차보다 괜찮은가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결국 저녁에 다시 죽과 약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오늘 아침 눈을 뜨니 딱 느껴졌다. 아 다 나았다. 


욱신거리던 몸도 괜찮아졌고 감각들도 깨끗하게 돌아왔다.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환골탈태의 느낌이 이런 건가 싶다. 당연했던 현실감각들이 이렇게 선명하게 다시금 느껴진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1차, 2차, 3차를 비교하자면 2차가 제일 아프고 그다음이 3차 그리고 1차 순서이다. 2차 때는 약효도 안 돌아서 잠드는 게 힘들 만큼 아팠고 자리에서 일어날 힘도 없어서 3일 내내 침대에 붙어있었다. 3일째에야 침대에서 일어나 앉을 정도가 되었다. 그거에 비하면 3차는 확실히 2차보다는 나은 듯하다. 하지만 2차보다 덜 아프다고 해서 버틸만한 건 전혀 아니었다. 1,2차 때 얼마나 앓았는지 까먹고 냉큼 3차를 맞으러 간 과거의 내가 원망스럽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갔어야 했는데.... 그래도 큰 고비는 넘겼다는 것에 후련하기도 하다. 나중에 만약 4차를 맞아야 한다고 하면.... 지금껏 백신을 큰 고민 없이 맞아왔지만 그때만큼은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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