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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Oct 24. 2022

차별이란 정말 없는 걸까

그 많던 여성 연구원들은 어디로 갔는가

얼마 전 학과의 여성 연구원들과 학생들이 모여서 모임을 만들었다. 대단한 건 아니고 밖에선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을 나누며 서로 응원하고 친목을 쌓자는 의미에서였다. 그렇게 첫 모임을 아프간 음식점에서 가졌고 처음 접해보는 음식들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대표적인 주제는 역시 과학자로서 여성이 받는 차별에 대한 것이었다. 모임을 주최한 친구는 며칠 전, 백인 남성 과학자가 얼마나 차별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지한지에 대해 연구한 논문을 공유했고 제일 먼저 그 논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총 40페이지가 넘고 레퍼런스를 제외하더라도 30페이지가 넘는 긴 논문이라 전문을 읽은 사람은 없었지만 으레 우리가 연구 논문을 읽듯 모임에 나온 대부분이 이 논문을 훑어봤고 중요한 요점들에 대해 토론하기에는 충분했다. 토론에서 주요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1) 연구 대상의 풀이 너무 작고 인터뷰 질문들이 충분히 중립적이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2) 그럼에도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차별의 시선과 백인 남성 과학자들의 무관심, 무지가 잘 드러나있다. 


해당 논문은 몇몇의 백인 남성 과학자들을 인터뷰한 자료들을 근거로 백인 남성들이 주를 이루는 과학계 기저에 깔려있는 여성에 대한 인식과 그들의 무관심/무지를 비판한다. 하지만 그 근거로 내세운 인터뷰의 숫자가 너무 적고 과학계 전반을 일반화 하기에는 논문 자체의 설득력이 약하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이 논문이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논문 자체의 과학적 설득력은 약하지만 우리가 현실로 느끼는 차별과 무관심이 너무 잘 드러나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시로, 우리 학과에서 한 연구 그룹이 단체로 학회에 참석을 했고 그 그룹에는 당연히 여성 박사생 A도 있었다. 학회에는 따로 드레스코드가 없었고 A는 깔끔한 블랙 원피스를 입고 학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그를 본 지도교수는 "네가 입은 옷을 보니 예전에 봤던 어떤 여학생이 생각나는데..." 하면서 그 학생에 대한 험담을 늘어놨다고 한다. 노골적인 험담은 아니었지만 여실히 그 학생의 태도와 과학적 퍼포먼스를 비난하는 말들이었다. 그리고 이 험담은 직접적으로 A를 향한 말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자신을 보고 그 학생을 떠올리며 비난했으니 사실적/간접적으로 A를 비난한 거나 다름없었다. A는 너무 당황스러워 당시엔 아무 말을 못 했고 나중이 되어서 학회에 같이 갔던 남성 박사생 B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B의 반응은 더 충격적이었는데 "네덜란드 여성들은 너처럼 안 입어서 그래"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일단, 네덜란드 여성이 무엇을 입든, A가 무엇을 입든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지도교수는 A의 옷차림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리가 없다. 그게 비난이라면 더욱 그렇다. 거기에 더욱 심각하게도, B는 문제의 요점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후 A는 더 이상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아 이 일을 문제 삼지 않았지만 이 과정에서 느꼈던 모욕적인 감정에 힘들어했고 학회에서 돌아와 우리들에게 털어놓았던 것이다. 백인 남성 과학자들이 차별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지한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논문에서는 백인 사회에서의 여성차별을 다뤘지만 차별은 인종에 국한되지 않는다. 나만해도 처음 해외에 나올 때 주변에서 말이 정말 많았다. 여자애가 위험하게 해외에 나간다. 여자애 공부 많이 시켜봤자 돈 낭비다. 미국 보내서 미국 남자랑 결혼시키고 시민권 따게 해라 등등. 어느 시대 이야기냐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놀랍게도 내가 지금껏 직접 들어온 이야기이다. 


터키에서 온 친구는 대학을 간다는 이유만으로 가족과 거의 연을 끊을 뻔했다고 한다. 이 친구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제대로 전공하고 싶었고 가족들은 그녀가 하루라도 빨리 직장을 다녀서 가족에게 돈을 벌어왔으면 했다고 한다. 그녀가 돈을 벌어오면 남동생들을 공부시킬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첫째 딸이 돈은 안 벌고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하니 집안에서 난리가 났다고 했다. 거센 반대에도 친구는 끝까지 대학에 진학을 했고 다행히 학비는 낼 필요 없었지만 생활비는 스스로 벌었다고 했다. 그 때문에 가족들과는 몇 년 동안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못했고 가족들 틈에서 자신은 투명인간처럼 무시당했다고 한다. 그나마 가족들과 말을 트기 시작한 건 네덜란드로 박사과정을 하면서부터라고 했다. 해외에서 공부를 하면서 돈도 벌고 대우도 좋은 일을 하니 이제는 오히려 가족들의 자랑이라고 하는데 자신은 아직도 가족들이 어색하다고 했다.


미국, 스웨덴, 네덜란드까지 다양한 나라와 다양한 학교에서 학사, 석사, 지금의 박사를 하면서 나는 수많은 구조적 차별을 보고 있다. 나는 모든 학위를 천체물리학으로 전공하고 있는데 박사까지도 여성 학생들이 정말 많다. 거의 남녀 성비가 50:50은 된다. 하지만 그 이후 연구원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다 교수직으로 가면 전체 교수들의 여성 비율은 1명을 겨우 찾아보는 수준까지 떨어진다. 미국, 스웨덴, 지금의 네덜란드에서 학과 전체에 여성 정교수는 항상 1명이었다. 미국에선 박사부터 여성 비율이 더 떨어지고 스웨덴에서는 학과가 작기는 했지만 박사 이후 과정의 여성 연구원을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미국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간단히 풀어보자면 학과에서 교수직을 두고 인터뷰가 있던 날이 있었다. 그 인터뷰를 심사했던 한 남성 교수는 나중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인터뷰 봤던 C(여성)는 옷차림과 외모가 여성 천문학자 같지 않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천문학을 연구하는 여성들은 죄다 후디에 청바지, 머리는 질끈 묶고 외모에 관심이 없는데 이 지원자는 옷도 세련됐고 말 그대로 "예뻤다"는 것이다. 


그 많던 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으레 사람들이 말하듯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과학에 약하기 때문일까? 상을 받고 뛰어난 논문들을 쓰던 그 사람들은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으로 우연히 과학계를 떠난 걸까? 


아직도 세계 여러 곳에서 여성 차별이 존재하고 크든 작든 여성들은 그 차별을 실제로 겪고 있다. 한국은 어떨까. 더 이상 구조적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한국이 그 어느 나라보다 성평등을 이룬 국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가 겪지 않았다고 해서, 내 주변에 그런 일이 없다고 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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