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람을 돕는 일

미선씨 이야기 # 1

by 제이비

이 글은 <가까운사람> 이라는 단행본에 실렸던 글입니다.

이 글에 이어지는 글이 있고,

일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어나갈 작정이라,

이 글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미선씨는 지난 두 달 동안 세 번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어르신이라고 무심코 말했을 때 백발의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다. 그럼 어떻게 부르면 되냐고 했더니 이름을 알려줄 수 없지만 어르신이라고는 하지말란다.


첫 만남에서 나는 결국 그녀의 이름도, 주소도, 전화번호도 알 수 없었고 사무실에 있던 빵 몇 개를 봉지에 넣어서 손에 쥐어 드린 것이 고작이었다. 횡설수설하는 말투와 경계심 가득한 눈빛이 많은 것을 짐작하게 했다. 하지만 그녀가 빵을 받은 후 급히 사무실을 나서는 것을 보곤 그저 배가 고팠거니 하고 말았다.


두 번 째 왔을 때 미선씨는 명확하게 나를 찾았다. 그간 주민센터건 급식소건 여러 군데를 갔었는데 당신이 묻지 말아달라고 하니까 진짜로 아무것도 안 묻고 이야기를 들어준 게 나밖에 없어서 다시 찾아왔다고 했다. 이름을 몰라도 요기거리를 준 사람이 나 뿐이었나 싶었다.


또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엔 긴급지원을 받고 싶고 수급자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아마 어딘가의 동 주민센터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신 것 같았다. 신분을 회복하려면 돈이 든다고 그 돈을 내줄 수 있냐고도 했다. 그런데 첫 만남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자신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과자와 음료를 챙겨드렸다. 이름조차 이야기하지 않는 분에게 더 이상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대신 약속을 했다. 다음번에 찾아오시면 같이 주민센터에 가시자고. 그때는 이름을 말해달라고.


며칠 전 그녀가 세 번째로 찾아왔고 이번에는 여권을 가져왔다. 사실 그녀가 다시 올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알량한 과거 경험에 빗댄 섣부른 추측이었다. 당황했다.

두서없이 이것저것 이야기를 듣고 조합해보니 미선씨는 3년전쯤 사기를 당했고, 해외에 나가있느라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였다.


그녀는 지금 혼자이고 주거가 불분명하며, 연락처가 없고, 신분도 확실하지 않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유령과 다를 바 없다.


그래도 주민센터에 가자는 약속을 들먹이니 기억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다시 찾아온 것 같았다. 먼저 전화해서 미선 씨를 모시고 가는 상황에 대해 알렸고, 도착했을 때는 주민센터에서도 나름 상황을 인지하고 상담을 준비하고 있었다.


70대의 미선씨는 아마 공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적절한 도움을 받으려면 신분이 증명되어야하는데,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다. 심지어 말소된지가 오래라 과태료가 있다.


과태료외에도 주민등록을 회복하려면 거주지가 명확해야한다. 거주지가 명확하려면 하다못해 고시원에 한 달짜리 계약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집주인이 확실한 신분증명을 요구한다.


고시원은 선불이다. 대부분의 현금성 지원은 계좌이체로 해야하는데, 그녀는 통장이 없다.


우리가 하는 일은 때론 문이 없는 방과 같다.


미선씨는 행정상 존재하지 않으므로 공식적인 도움을 받을 방법이 없다. 규칙은 지켜야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유령처럼 거리를 떠돌아다니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주민센터에서는 노숙인 쉼터를 권유했다. 쉼터에 가면 앞으로의 일이 어쩌면 조금 더 쉬워질 것이다. 수급자가 되는 것도, 신분 증명도.

미선씨는 쉼터에는 잠시도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노숙인 쉼터는 몸누일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설이지만, 길가는 사람을 봐도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느끼곤 하는 미선씨에겐 쉽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첫 번째 조각은 거주지의 마련이다. 물론 미선씨에게 한 달 고시원비를 마련해준들 그녀가 거기에서부터 순서대로 계단을 밟아 올라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일단 시작해야 한다. 신청서에 적을 주소지가 없는 미선씨에게 주소를 만들어주는 것부터. 나의 일은 가끔 1,000피스 퍼즐을 맞추는 것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