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는 게 참 많다

미선씨 이야기 # 2

by 제이비

미선 씨와 얼굴을 마주한 지도 벌써 석 달이 되어간다. 그동안 주민센터에 한 번 더 다녀왔고, 복지관 카드로 한 달치를 결재한 고시원에 기거하기 시작한 지 이제 이십일이 지났다.


누군가를 도울 때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선의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이어가기 버거울 때가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과 같은 마음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미선 씨의 경우도 그렇다. 각오를 하고 벌인 일이지만 고작 길가의 작은 돌멩이 같은 방해물조차 그렇게 크다.


미선 씨는 알고 보니 국적이 회복되지 않았다. 오랜 해외 생활로 주민등록이 말소된 것 외에도 영주권을 포기하지 않은 탓에 지금은 난민과 다를 것 없는 신분이다. 영구귀국 신청을 하면 된다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미국까지 서류가 오가려면 최소 두 달이 걸린단다.


그럴 수 있다. 그거야 그쪽 사정이다.

하지만 이쪽으로 오면 그 간단해 보이는 서류 한 장이 생존이 걸린 문제로 커진다.


보름 전 미선 씨는 주소지가 없어서 주민등록을 회복할 수 없었다. 고시원에 적을 두고 주소지를 만들어 내밀었지만 국적이 없는 탓에 그녀는 아직도 행정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 시간은 최소 두 달이지만 그녀가 이 나라에서 두 달 동안 버텨낼 방법이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


미선 씨는 쉼터에 가기 싫다고 했다. 여전히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여긴다. 복지관에 올 때면 직원을 의식하고, 이용자에게서 멀어지려 하고, 주민을 흘겨보기 일쑤다.


고시원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저마다 사정을 가진 혼자들이 모여서 배타적으로 공간을 공유하는 곳은 그 나름의 질서가 있게 마련이다. 미선 씨가 현재 몸을 의탁하고 있는 고시원도 그렇다. 각자의 아픈 곳을 되도록 부대끼지 않고 살아가기 위함이겠으나 미선 씨가 지키기에 버거운 규칙들이 혼재하는 공간일 것이다. 아마 친절하지도 않았을 테고.


쉼터에 가고 싶지 않은 미선씨는 고시원 생활도 난관에 부딪힌 것 같다. 주방의 문을 잠근다거나, 신발을 신고 복도를 활보 한다거나 하는 몇 가지 일들이 있었고, 고시원 원장님은 계약 한 달째 되는 날로 퇴거해 줄 것을 요구했다. 원장님은 좋은 사람이지만 자선사업가는 아니다. 그의 선의는 계약서에 본인의 이름도 쓰기 싫어하는 수상한 사람을 자신의 거처에 받아 준 것까지이고, 이마저도 쉽지 않은 일이다.


여름이니까 그래도 얼어 죽지는 않겠지하는 생각이 스쳐 간다. 쉼터 얘기를 다시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미선 씨는 핸드폰이 없다. 다행히도 이 나쁜 소식을 당장 전할 방법이 없다.


주민센터에서는 국적이 없는 이에게는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주민등록 말소자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새로 찍은 증명 사진이 필요하다. 사진 찍을 돈 조차 아쉬운 사람들을 위해 가끔 주민센터에서는 민원석 앞에 놓인 동전 모금함을 비운다. 아마 그 정도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주민센터가 할 수 있는 비공식적 선의의 최선일 것이다. 근거 없는 지원은 불법이다.


나는 담당자로서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사람을 위해 한 달 고시원비를 선불로 냈다. 그저 눈 한번 감았다 떠보니 이미 불법을 저지른 뒤다. 미선 씨가 이대로 잠적하기라도 하면, 존재하지도 않는 그녀의 주민등록등본을 받을 길이 없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만다.


그렇게 착착 순서대로 일이 될 것 같았으면 애초에 미선 씨가 거리를 배회할 일도 없다.


미선 씨는 나에게 국제 등기 영수증을 보여줬었다. 새로 찍은 증명사진도. 100원이 모자라서 라면 하나 못 사 먹었다던 양반이 사진 속에서는 참 말끔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가 국적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미선 씨도 충분히 여러 곳에서 설명을 들었을 것이고, 한 달 전 소인이 찍힌 국제 등기 영수증은 삶의 증거라고 치자. 내가 모르는 곳에서 미선 씨는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고 있다.


나는 별 수 없이 미선 씨를 믿는 수밖에는 없다.

그녀가 언젠가 영구귀국 신청 승인이 찍힌 증빙서류를 받을 수 있기를 믿고,

올 해안에 그녀의 새 주민등록등본이 이미 써버린 카드 영수증 뒤에 붙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겨울이 오기 전에 미선 씨가 찬 바람을 피할 거처를 마련하기를 이 더운 여름날 바란다.

내가 생각해도 바라는 게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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