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아이슬란드

두 번째

by Seventy one Kite


지금 내 눈앞의 풍경은 푸른빛이 감도는 흰 유화 물감으로 덧칠된 듯하다. 퍼런 하늘과 퍼런 땅 사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수증기.

이곳이 바로 활화산의 땅, 아이슬란드이기에..


퍼런 하늘 퍼런 땅 오렌지 선 이곳은 아침 10시


눈 위를 저벅저벅 걸으며, 문득 어린 시절 즐겨보던 TV 문학관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특히 길 위의 날들이라는 작품이 기억난다. 홀어머니가 아들을 감옥에 보내고 홀로 손자를 키우는 이야기. 그리고 어느 한겨울, 눈이 소복이 쌓인 날, 모범수로 인정받은 아들이 며칠간 집으로 휴가를 오게 되는 가슴 아픈 가족사.


그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끝없이 펼쳐진 눈밭을 걸어가는 장면이 있었다. 그의 발걸음이 눈 위를 밟을 때마다 들리던 저벅저벅 하는 소리. 어딘가 이상하면서도 자꾸 다시 듣고 싶은 그 소리를, 지금 내 발걸음에서 다시 마주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때의 드라마가 떠오르고, 가족을 만나러 가는 주인공의 설렘이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나는 가족을 보러 가는 건 아니지만, 이번이 두 번째 아이슬란드 여행. 이곳을 다시 찾았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설레게 한다. 나도 몰랐던 나의 감정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 즐겁고 반갑다.

반가우니 너무 좋은데 그러니까 나는 계속 좋고만 싶은데, 내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을 너무나 명확히 알기에 이 순간이 너무 아쉽다. 옆에 있는데도 그리운 느낌이랄까.

지금은 낮이지만, 몇 시간 후면 하늘엔 달과 별이 박힐 테고, 다시 해가 떠오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책상 앞에서 씩씩거리며 일을 하고 있겠지.

마치 유튜브 쇼츠 속 1분짜리 여행처럼, 너무나 짧게 지나가 버린 듯이.


클레이파르바튼(Kleifarvatn) 호수

레이캬비크 시내에서 차로 약 30분쯤 달리자, 클레이파르바튼 호수에 도착했다.

용암이 흘러 만들어낸 다양한 형상의 화산암들이 신비롭고 엄숙한 성지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러나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지열의 수증기는 그 엄숙함을 마치 따뜻한 목욕탕처럼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로컬 가이드가 출발하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지난 첫 번째 아이슬란드 여행 중 블루라군행 버스를 놓쳐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면세점 매장에서 블루라군 화산머스크팩만 사온, 그렇게 나에겐 사연 있는 노천 온천 목욕탕 블루 라군을 이번엔 가겠노라 다짐하며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호수를 바라보며 다시 버스에 올랐다.

나는 다시 , 아이슬란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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