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아이슬란드

두 번째

by Seventy one Kite

사람들이 제법 많이 다닌 길은 눈이 녹아버렸고 그 사이로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반면 다니지 않거나 음지길은 눈이 쌓여있었는데, 눈 온 뒤 바로 비가 왔기에 그것은 단단하긴커녕 밟으면 셔벗처럼 푹푹 꺼져버렸다. 그 길을 지나가려면 신발이 젖는 건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젖지 않았다. 이번 아이슬란드 여행에선 반드시 하이킹을 가려고 했기 때문에 등산화를 들고 왔었고, 나는 이 등산화를 정말 유용하게 매일 신었다. 빙판길이 매우 미끄러워 일반 운동화를 신으면 다칠 위험이 컸고 쉽게 젖기때문에 등산화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게다가 그날 발수바지와 발수재킷을 입었었는데 바지는 무릎까지 푹푹 꺼지는 눈을 밟아도 쉽게 젖지 않아 쾌적했다. 다만 걸어오는 내내 바람이 세게 불어 우산을 쓸 수가 없었다. 어차피 비와 눈과 바람이 사방으로 같이 내렸기에 그냥 우산 없이 다녔더니 재킷은 어느새 흠뻑 젖어있었다.

이 몰골로 건물에 들어서며, 얼마나 재밌을까? 시시하면 어쩌지? 극소심 모드로 모바일 입장권을 스캔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를 제외하고 모두 단체손님이다.



체험 입장 전 합성 사진을 찍어주는 코스가 있는데 나는 혼자 머쓱하게 있고 싶지 않아 찍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예상했었는데 역시 체험 종결 후 카운터에서 그 사진을 팔고 있었다.

입장 후 십오 분 정도는 오두막의 나무꾼이 나오고 아이슬란드의 정령인지 도깨비인지가 아이슬란드의 스토리를 얘기해 주는데 나름 영상미는 있었다.


약간 지루해질즈음, 다른 방으로 이동했는데, 영화관처럼 화면을 바라보게 되어있고, 바이킹 탈 때 내려오는 안전바가 달린 의자가 옆으로 길게 세팅되어 있었다.

나는 무슬림처럼 보이는 여성 단체 옆에 같이 배정되었는데, 같은 동양이라 그런지 아무튼 눈에는 띄었나 보다. 옆에 있던 사람이 혼자 왔냐고 어디서 왔냐 물어보는데 잠시 고민하다가 "한국에서 왔지만 중국에서 살아요"라고 했는데 갑자기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나 고민까지 되었다. 그렇게 짧게 스몰토크를 시작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가리는 천을 둘렀기 때문에 무슬림으로 보였는데, 아마도 내 편견이겠지만 처음엔 그런 복장의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거는데 나도 모르게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나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수줍게 얘기하는 그녀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가는 길의 쌓인 눈

더구나 무슬림처럼 보이는 사람과 처음 얘기해 본 것인데 미디어에서 주입받은 대로 그냥 색안경을 낀 그런 내가 못났고 갑자기 그녀에게 미안해졌다. 물론 그녀는 모르는 게 낫다. 나도 인식과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반화의 오류 편견을 가졌구나. 미디어란 무섭다.


의자에 앉고 벨트를 매고 안전바를 내려 고정시키고, 화면을 바라보니 갑자기 의자가 45도 정도 아래로 움직였다. 마치 공중에서 아이슬란드를 내려다보며 비행하는 느낌이 들었다.

화면이 갑자기 땅으로 하강하는데 가짜인데도 불구 부딪힐까 봐 발끝을 위로 세울 정도로 긴장했었다.

의자도 움직이고, 바람도 불고 물도 튀어서 진짜 같은 4D였다.


날씨가 갑자기 궂을 때는 이렇게 실내 액티비티도 나름 괜찮은 것 같고 , 아이슬란드는 야외활동 중심이기 때문에 여행 일정을 짤 때 하루 정도는 시내를 돌아보며 실내 경험을 하는 것도 컨디션조절 및 가성비대비 좋은 것 같았다. 화면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눈앞의 장면을 모두 담기엔 쉽지 않고 머리가 어지럽기까지 하다.

. 하지만 깨끗한 아이슬란드의 전경을 한 마리 새가 되어 비행하는 느낌이고 , 장면의 진동, 바람, 물세례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뚜렷한 장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기분이 내 저장소에 남아있기 때문에 다음번에 또 한 번 시도하지 않을까.


또 한번 가야 할 목적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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