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들의 성화에 못이겨 문화콘텐츠기획 사내 동호회에 가입한 후
보드게임, 방탈출, 영화, 클라이밍 등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오색찬란한 게임과 술, 사람들의 파도 속에서 간혹 여행을 가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했어요.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했나요.
레트로가 유행인 사회 감수성에 발맞추어 이번 동호회 이벤트는 '마니또'였습니다.
제비뽑기를 통해 각자 지정된 친구의 비밀친구(혹은 수호천사)가 되어
몰래 도움을 주거나 선물을 건네는 등의 미션을 성공하고 자신의 마니또가 누구인지를 맞추어야 합니다.
저는 본사에서 잠시 나와 독립된 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간소하게 선물만 주고 받았지만
회사 전체가 활기를 띄는 모습을 참 오랜만에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 내 마니또일까'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남몰래 탐색전을 펼치는 모습.
'내 책상에 마니또가 선물 두고갔어!' 수줍은 미소와 함께 자신의 마니또를 자랑하는 모습.
'나는 마니또한테 뭐 해주지' 진심으로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고자 마음을 다해 고민하는 모습.
서로를 관찰하고, 그 결과 이해하면서 보이지 않는 실이 사람들을 연결해서 인연으로 재탄생시킵니다.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이토록 최선을 다한 적이 얼마나 있었나.
역으로 그동안의 이기성이나 고립성에 대해 스스로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내가 아닌 '남'의 목소리에 진정으로 귀 기울여본 경험이 잘 생각나지 않았거든요.
대충 MZ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고 끄덕이는 시늉으로 리액션만 했던 요즘의 어느 나날들을 떠올리면서
이번 회고록에는 '마니또'에 대한 저의 소고를 담아야겠다고 혼자 다짐했습니다.
'비밀의 짝' 정해 눈에 안띄게 돕기
자신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늘 관심을 두고 편지나 선물을 보내면서 격려하는 ‘마니또’ 놀이가 최근 여학생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고 있다. ‘마니또’란 이탈리아어로 ‘애인’이라는 뜻으로 학생들 사이에는 ‘애인같이 상대방을 생각하고 아껴주는 친구’를 의미한다. 땅콩껍질 속의 땅콩 2알에 비유, ‘땅콩친구’라고도 불리는 이 놀이는 4~5년 전부터 시작돼 요즘은 서울 시내 대부분의 여학교에 퍼져 있을 만큼 인기를 모으고 있다.
원래 가톨릭 전래 행사로 크리스마스를 1달 가량 앞두고 시작되는 이 놀이는, 대개 학년 초 학급이 바뀌어 누가누구인지 서먹서먹할 무렵 이루어진다. 학교에 따라서는 수학여행이나 행사를 앞두고 시작하기도 한다. (1985년 10월 18일자 동아일보)
나무위키에 마니또를 검색하니 위와 같은 동아일보의 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마니또는 일종의 또래문화로 정착하여 사람들 간 유대와 결합을 도모했습니다.
평범한 하루 속에서 작은 기대를 안겨주는 것만으로 조직 전체에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죠.
새학기에 부푼 기대와 함께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하나의 매개체로서,
그리고 갑자기 변화한 환경 속에서 마음 기댈 곳 없는 이들이 새로운 관계 입문하는 계기가 되도록
마니또에는 다소 다양한 사회문화적 함의와 배려가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애인같이 상대방을 생각하고 아껴주는 친구'라는 부분입니다.
부모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애인'같이 나를 생각하고 아껴주는 친구라니.
애인에 대해 사회가 기대하는 바나 암묵적인 약속 등이 반영된 것 같아 흥미있게 기사를 읽었습니다.
애인처럼 대가없이 '나'만 바라봐주고 좋아해주고 사랑해주는 존재. 모두가 바라고 있으니까요.
비슷한 개념으로는 미국의 '시크릿 산타'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니또와 비슷하지만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자신의 시크릿 산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벤트성이 있는데요.
나를 도와주는 익명의 존재는 국가나 문화와 상관없이 단순한 게임 이상의 설렘과 기쁨을 주는 듯 합니다.
말 한마디, 소소한 선물이 주는 행복이 작지 않다는 사실을 요즘 더 실감합니다.
평범한 하루 속에서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니까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먼저 알아주고 이해주는 나의 비밀친구,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너'와 '나'가 아닌 '우리'의 시간이 계속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