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미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좋아하는 사람도 만나고, 무관심한 사람도 만난다. 때로는 미워하는 사람도 만나게 된다.
문제는 ‘미워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순간, 그 감정을 표현하든 말든 내 에너지는 소모된다.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데는 계기가 있다.
갑자기 한 사람이 미워지는 일은 거의 없다.
기억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서 반감이 생긴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 기억은 마음속에 깊이 남는다.
우리는 그때부터 ‘저 사람을 미워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 이후로는 다르게 보인다.
그 사람을 볼 때마다 거슬리는 행동이 계속 눈에 들어오고,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말과 행동에도 의미를 붙이며 그 사람을 미워할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사이가 틀어진 부부가 “밥 먹는 것만 봐도 꼴 보기 싫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부부도 사이가 좋았을 때는 배우자의 밥 먹는 모습을 보며 오물거리는 입이 귀엽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 사람의 식사예절이 갑자기 변했을 리 없다. 그 사람의 대한 미움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에 물든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상대가 아니라 나를 더 힘들게 한다.
그 감정을 드러내 상대를 괴롭힐 수는 있어도, 그게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미워하는 대상이 안 봐도 되는 사이면 상관없지만 직장동료나 가족의 경우에는 그럴 수도 없다.
또한 한 번 마음속에 미움이 자리 잡으면 돌이키기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에 누군가를 향한 미움 경고등이 울릴 때면 그 사람이 나에게 베풀었던 인정이나 좋은 말들을 되새기고는 한다.
군대에 있을 때였다.
나는 군복무 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최전방에서 근무하고 있었기에 바로 휴가를 나가기 어려웠지만, 중대장의 도움으로 청원휴가를 나갈 수 있었다. 그날 밤, 중대장은 직접 차를 몰고 소초까지 와 나를 태워주었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더 빨리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이동하는 동안 짧은 대화를 나눴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이었지만, 위로와 함께 이런 말을 건넸다.
“그래도 제일 슬픈 건 아버지니까, 의젓하게 보내드리고 오면 좋겠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이후 그는 병사들에게 폭언을 일삼아 좋지 않은 평판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때의 기억 덕분에 그 사람 자체를 나쁜 사람으로 단정하지 않았다.
물론 폭언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기억 덕에, 다른 병사들이 그를 미워하며 에너지를 쏟을 때,
나는 비교적 무던하게 군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만약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방이 나에게 좋은 기억을 준 적이 없다고 한다면,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이 방법은 그 사람의 미운 행동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거나, 측은지심을 가지게 된다.
과거 잠시나마 인테리어 일을 한 적 있다. 팀원 대부분이 좋은 사람이었으나, 딱 한 명 모두에게 신경질 적이고 입에 욕을 달고 사는 한 명이 있었다.
특히나 처음 오는 젊은 신입들을 대상으로는 그 선을 넘었다.
사람에게 물건과 함께 온갖 쌍욕을 던지고는 했다.
그 당시에는 참 한심하다고 생각도 들고, 솔직히 말하면 저러다가 어디서 줘 맞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랬던 그를 향한 마음에 측은지심이 생겨났다.
그는 몸을 관리하지 않아서 상당한 비만이었으며 앞니 두 개는 비어있었다.
당연히 50 넘는 나이에도 혼자였고 돈을 버는 족족 도박과 유흥업소를 다니는 인생이었다.
언젠가 다른 팀원들과 술 한잔 하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는 부모님도, 친구도 없고 연애도 못해봤다고 한다. 일 말고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었고 그래서 신입이 들어올 때면 유일하게 자신이 잘하는 일로써 자신을 과시하려고, 상대를 깔보고 무시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분명 같은 환경에도 조금 더 건강한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얼마나 사랑을 못 받았으면 저럴까?’라는 측은지심이 생겼다. 그래서 그가 타인에게 무례한 행동을 할 때면 불쾌함을 느끼거나 화가 나기보다는 떼쓰는 아이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점차 그에게 쏟는 내 에너지소비도 줄었다.
"미워하는 사람을 굳이 내가 알아야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 이 것은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다.
저 사람을 안 봐도 되면 안 보면 그만이지만, 살다 보면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있다.
계속해서 그의 행동이 거슬린 상태로 두면 나만 힘들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베푸는 관용이 아니라, 내 소중한 하루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해주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