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열쇠는 문을 열 수 없다.
얼마 전, 배우고 싶은 것이 있어 한 학원에 상담을 받고 결제까지 했다.
그리고 6시간 만에 환불을 결정했다.
이곳은 이쪽 업계에서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신뢰를 가지고 상담 예약을 잡았고, 평일에 방문하기엔 거리가 있어 토요일 오전 시간을 따로 비워두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전철을 타고 가고 있을 때, 문자 한 통이 왔다.
“OO님, 원활한 진행을 위해 12시에 상담 진행해도 괜찮을까요?”
예약된 시간은 11시 30분, 즉 30분을 늦추자는 제안이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불쾌함이 올라왔다.
배려처럼 포장되어 있었지만, 책임을 피하려는 말로 밖에 안보였기 때문이다.
“다음 일정이 있어서 기존대로 11시 30분에 부탁드립니다.”
답장을 보내자마자 전화가 왔다.
예상대로, 내부 일정 문제로 시간이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평소에 남들의 실수에 관대한 편이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방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면 웃으며 넘긴다.
하지만 이 사람은 그 '인정'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 나를 위한다는 거짓 배려로 위선을 떨었을 뿐이다.
“늦어도 11시 40분에는 상담 부탁드립니다.”
결국 예약시간보다 10분이 지난 11시 40분, 상담이 시작되었다.
오전에 통화했던 사람이 아닌, 다른 선생님이었다.
다행히 상담을 진행한 선생님은 친절했고 전문성도 느껴졌다.
사실 며칠 전부터 마음속으로 이곳에서 배우기로 결정한 상태였기에, 상담 후 바로 결제까지 마쳤다.
오랜만에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설렘으로 웃으며 인사하고 학원을 나섰다.
그날 저녁 6시 30분, 상담을 해주셨던 선생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커리큘럼과 가격 관련해 정정할 부분이 있어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불길한 마음을 가진 채, 전화를 걸었다.
짧게 말하자면 수강료에 대해 착오가 있어서, 기존 결제 금액에서 60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번에도 역시 사과는 없었다.
“제가 밖이라 조금 있다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계속 생각이 맴돌았다.
이곳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밝히긴 어렵다.
다만, 사람 사이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을 교육하는 곳이다.
그런데 정작 그 신뢰가, 가장 기본적인 순간마다 무너지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이 사람들을 믿고 배울 수 있을까?”
결국 집에 도착해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진행이 어려울 것 같아서 환불 부탁드립니다.”
상담을 도와준 선생님은 이유를 물었다.
나는 하루 동안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선생님께서는 끝까지 경청했고,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빠른 환불을 약속했다.
그 순간, 신기하게도 마음이 거의 풀렸다.
하지만 5분 뒤,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아침에 시간 변경을 요청했던 사람이었다.
통화를 시작하자마자 환불 이야기는 꺼내지 않은 채, 커리큘럼과 가격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미 상황을 전달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사람은 모르는 척 대화를 이어갔다.
조금 전까지 풀렸던 감정이, 순식간에 다시 돌아왔다.
나는 같은 이야기를 다시 해야 했다.
결국 이 사람도 사과를 하긴 했지만, 그 사과 안에는 진심이 아닌 변명과 설득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마지막까지 나를 붙잡기 위해 학원 pr과 변명만 늘여 놓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60만 원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솔직히 그 정도의 값어치를 한다면 얼마든지 추가로 지불할 생각이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의 태도는 나를 '수강생'이 아닌 돈으로 보는 것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리고 그 실수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와 용서가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작에는 반드시 '진심 어린 사과'라는 열쇠가 필요하다.
짧은 한마디 “죄송합니다”로 마음이 풀리기도 하고, 같은 말에도 마음이 완전히 닫히기도 한다.
결국 사과를 할 때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