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말은 해도 되는 말인가?

-대화의 목적-

by 용기

나는 21년도부터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취미가 같든 다르든, 직업이 무엇이든 대화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독서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책 이야기로 가득 차기도 하고, 서로의 인사이트를 나누는 시간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시덥잖은 수다로 흘러가기도 한다. 나는 이 모든 대화가 즐겁다.


그런 나에게도 대화하기 어려운 부류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부류는 대화가 단답으로 끊기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보자.


“글 쓰는 게 취미신가 봐요?”라는 질문에 “네, 잘은 못 쓰지만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나는 ‘꾸준히’라는 단어를 힌트 삼아 “글은 언제부터 쓰셨어요?” 같은 다음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다. 이 정도에 답만 해줘도 훌륭하다.

대화하기 조금 더 좋은 부류는 “네, 꾸준히라도 쓰려고 합니다. 혹시 어떤 취미를 가지고 계신가요?”처럼 받은 질문을 다시 돌려주는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다.


보통 대화는 이렇게 질문과 대답이 오가며 이어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네…”처럼 단답으로만 반응하고, 되묻는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이렇게 대화가 끊기면, 상대는 더 물어볼 재료를 찾을 수 없고 “아, 이 사람은 나와 대화하고 싶지 않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대화는 점점 ‘대화’가 아니라 ‘호구 조사’나 ‘면접’이 되어 버린다.
만약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지 않다면, 이 부류처럼 행동하면 꽤 효과적일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과 대화를 잘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독서 모임처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조차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대화하기 힘든 부류는, 팩트와 논리에 집착하는 유형이다.


먼저, 팩트와 논리를 따지는 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대화의 목적에는 여러가지 목적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협상이 될 수도 있고, 공감이 될 수도 있으며, 탐색이 될 수도 있다.


대화의 목적에 따라 팩트와 논리가 필요할 때도 있고, 그보다는 공감과 위로가 더 필요한 순간도 있다.


협상, 설득, 해결이 목적일 때는 공감과 감정보다 팩트와 논리가 더 적합할 것이다.

반면 위로, 공감, 이해가 목적일 때는 팩트와 논리보다는 진심 어린 공감과 감정의 공유가 필요하다.


대화의 목적을 파악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간다면 불협화음은 불가피하다.


예를 들어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 보자.


“요즘 너무 바빠서 책을 읽기가 힘들어요.
저는 의지가 약한 사람인가 봐요.”


여기에 “의지 문제가 아니라 시간 관리 문제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책을 읽을 사람들은 짬 나는 시간 10분이라도 활용해서 읽습니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바빠도 10분쯤은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해도 되는 말’일까?


만약 이 대화의 목적이 문제 해결이었다면, 이 대답은 적합하다.


하지만 이 말의 목적이 문제 해결이 아니라 공감과 응원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도움을 받았다는 느낌보다 ‘평가받았다’는 생각에 불쾌함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무조건적인 공감과 응원만 하라는 뜻은 아니다.
팩트와 논리, 그리고 공감과 응원 사이에서 서핑을 타듯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정말 정신없이 바쁠 때가 있죠. 저는 그럴 땐 무리해서 책을 읽기보다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10분만 읽자를 목표로 해요. 그러면 부담이 훨씬 덜하더라고요.”


같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듣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르게 와닿는다.


“어떻게 늘 저렇게 대화하냐”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의도치 않게 대화를 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의식하지 않으면, 이 일은 반복된다.


이런 대화법으로 주변 사람들, 특히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 주는 일을 줄일 수 있다면,
충분히 노력해 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