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만 평도 넘는 곶자왈에 나 혼자 들어가게 됐다. 사람들은 외롭지 않겠느냐고 묻지만 혼자라는 건 반드시 외롭다는 뜻은 아니다. 진짜 외로움은, 여럿이 있어도 마음을 나눌 수 없을 때 찾아오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 숲은 생각으로 이루어진 숲이다. 걷는다는 것은 움직인다는 뜻이지만, 나는 이곳에서 멈추기 위해 걷는다. 마음속에 한없이 커진 무언가를 가만히 들여다보려는 일은 오히려 몸을 움직일 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백서향 향기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퍼진다. 어디에 피어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코끝에 닿고, 기억 속의 어떤 계절을 불러오며 내가 끝내 부르지 못한 이름 하나를 깨운다.
기억이라는 것도 어쩌면 향기와 닮았다. 형체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잊으려 해도 문득 스며들고, 멀어질수록 오히려 또렷해지는 누군가의 뒷모습처럼. 곶자왈 한가운데에서 나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왜 떠났는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왜 여전히 내 안에 그 사람이 살아 있는지. 지금은 그저 이 숲과 함께 걷고 있는 내가 그때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내가 잃어버린 이 숲길,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이 상황은 비단 나만이 겪는 일은 아닐 거라는 한 올의 생각이 나의 불안감을 안도의 한숨으로 바꾸어 놓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 원초적인 동질감은 이상하게도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든다. 나는 외로웠지만 외롭지 않았다. 그 말이 모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숲은 그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나의 외로움을 곁에서 조용히 지켜주는 숲의 정령들에게 포근히 휩싸여 있다는 그 평화로움으로 다시 길을 걸어갔다. 백서향 향기가 어디선가 바람에 실려 흘러왔다. 나는 길을 따라가기보다 그 향기를 따라 걸었다. 바람이 흐르는 곳엔 골짜기가 있을 테고, 골짜기를 지나면 들판이 나타나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으며 걸었다.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나는 인생이 어디론가 흘러가는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을 때면, 시련의 뿌리를 찾아 그 방향을 감지하고 그 반대쪽으로 걸어가기도 한다. 지금 나는 60만 평이 넘는 곶자왈에서 길을 잃었다. 그래서 나는 바람의 방향을 인지해야 했고, 해의 위치도 조용히 읽어내야 했다. 수많은 나뭇잎들이 가리키는 흐름을 따라, 천천히 백서향의 향기를 맡으며 걸었다. 그리고 핸드폰의 도움은 받지 않기로 했다. 오직 나의 직감과 숲이 알려주는 안내판, 그리고 바람의 방향으로만 나는 입구를 찾아 걸어가기로 했다. 길은 언제나, 나에게 주어지는 것만큼만 보인다. 하지만 그 길을 선택할 때 나는 내 직감을 믿고 싶었다. 기술에 의존하기보다 내가 자연 속에서 배우는 것들이 나를 진짜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바람이 흐르고, 숲은 나를 안내하는 듯 어쩌면 그 길을 찾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는 내 안에 있었다.
어느 정도 걷다 보니, 갈림길들이 나왔다. 나는 철저하게 내 직관을 깨웠다. 어떤 혼란한 상황에 놓였을 때 나는 내 마음 안으로 들어가 내 자유로운 자리에서 직관이 깨어나 움직이기를 바란다. 나는 심호흡으로 내 직관을 깨우고 다시 눈을 뜨니 갈림길에서 내가 가야할 길이 또렷이 보였다. 나는 지체 없이 그 쪽을 따라 걸어갔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는데 이상하리만큼 나는 안전했다.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날이 어두워지면 별을 따라 걸으면 되지라는 내 안의 자유로운 뜨거운 신호가 느껴졌다. 나는 8킬로 이상 걸어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살다 보면 길을 잃고 또 방향을 잃고 내가 어디를 가고 있는지 도착지가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오늘 백서향을 따라 걸어갔던 이 아름다운 보호의 숲길을 기억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