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의 족에 발족자를 썼듯이 어떠한 갈망되었던 상황이 발목까지 찬 상태를 일컬어 만족이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만족이란 개념의 그 상태에는 한참이나 모자르다. 차고 넘치어 어쩔줄 모르는 그 상태가 만족인줄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적으로 결핍의 상태이다. 달도 차면 기울어지고 사람의 사랑도 이와 같다. 차고 넘치면 오히려 갈증이 나고 더 가지려 혈안이 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식물은 대지에서 얼마든지 물을 빨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물을 빨아 들이면 이내 썩고 만다. 물질과 욕망은 이와 같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썩어간다. 사랑도 한없이 퍼주다 보면 주는쪽은 고갈되고 받는쪽은 만족할줄 모르는 상태가 된다.
슬프지만 인간의 상처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삶을 만족하며 산다는 것은 이렇듯 늘 어렵다. 발목정도 차 오르는 결과물을 보며 흡족한 마음이 드는 사람이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만족할 줄 아는 삶이란 무얼까. 나는 그 이유를 시간을 어느 지점에 걸어두고 사는지가 관건인것 같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현재의 행복보다 미래의 행복에 자신의 만족을 걸어두고 살면 이 만족에서 멀어진다.
만족은 미래의 시간에서 느껴야 할 삶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 오늘 지금에서 느껴야 하는 감정이다.
나는 하루안에 기쁜 일들을 소망하며 산다. 오늘 만날 사람들 오늘 얻어질 기쁨들을 바라고 하루를 마무리 할 때 만족하며 잠드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현재 나의 목표와 다르게 많이 모자르더라도 진실로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그 감사가 나의 만족의 지점이다. 비록 이렇더라도 오늘 이 기쁨을 누리게 된것에 대해 감사하고 내가 바랬던 일이 조금씩 성장하며 전진하는 것이 감사하고 오늘 만났던 사람들과 나누었던 충만한 대화가 감사하고 새로 보았거나 들었던 무한한 자연의 소리에 감사한다.
만족한 후 감사가 일어나는 상태가 곧 우리가 그렇게
바래왔던 滿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