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은 밤

by 이 경화


불을 켜는 대신 나를 끄고 싶을 때가 있다. 조명이 흐릿한 공간에 스스로를 눕히듯 기대어 앉고 텅 빈 마음 한 켠에 무심한 듯 한 잔을 따른다. 서걱서걱 얼음을 담는 소리. 맑고 진한 액체가 잔을 적시는 소리. 그 조용한 의식 속에서야 비로소 내 마음도 잠잠해진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냈다고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괜찮은 밤이 있다. 누군가의 눈치도 누군가의 기대도 더는 버겁지 않은 밤. 그저 조용히 내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밤. 아무 말도 없이 나를 꺼내보는 밤.


바에 앉아 조용히 숨을 고르며 한 잔의 위스키를 바라본다. 차가운 얼음 사이로 황금빛 술이 가라앉아 있고 그 잔 위로 흐르는 조명은 마치 내 안의 마음을 비추는 듯 조용히 흔들린다. 첫 모금은 약간 쓰다.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그 깊은 맛에 조금은 속이 쓰릴 만큼 지나온 감정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두 번째 모금은 그립다. 머릿속을 스치는 누군가의 웃음. 끝내 묻어두고 돌아선 말들. 그 사람 앞에선 말없이 참았던 눈물이 묘하게 단맛처럼 스며든다. 세 번째는 조금 울컥하다. 이대로 조금 더 마시면 울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잔을 잠시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한다. 괜찮아 오늘도 잘했어.


나는 이제 안다. 이건 외로운 밤이 아니다. 이건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사람들 속에서 길을 잃을 때가 많았고 소란한 하루의 끝에선 늘 내 안의 목소리가 가장 작았다. 하지만 이 잔을 앞에 두고 앉아 있는 지금 나는 다시 내 안의 나와 눈을 맞춘다. 잔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천천히 정리하는 일. 바깥 세상은 여전히 분주하겠지만 나는 이곳에서 고요하게 나를 되찾는다. 잔 속의 위스키가 얼음과 함께 천천히 사라지듯 내 안의 무거움도 서서히 녹아간다. 그리고 나는 오늘 울어버린다. 괜찮다고 말하며 그 말 속에서 울어버린다. 아무도 몰라도 되는 밤. 나만은 나를 꼭 안아주는 밤. 그런 밤을 지나야 다시 내일을 건너갈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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