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짜장면

by 이 경화


나는 이 글을 눈물로 써 내려간다.


사람들은 대개 고통을 시간 속에 흘려보내고 잊지만


나는 잊지 못하는 고통이 있다.


몇 날 며칠을 굶던 그 배고픈 시절이


내 삶에는 분명히 있었고


그 시간은 지금도 내 안에서 묵직하게 살아 있다.


엄마는 서른 초반에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나는 고작 아홉 살.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엄마의 곁을 지키는 보호자였고


삶의 전부였다.


매일같이 우리는 찬물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웠다.


어떤 날은 동사무소에서 가져다 준 밀가루와 정부미로


소금조차 넣지 않은 죽을 끓여 겨우 입에 넣었다.


그러나 그것마저 없는 날이 더 많았다.


먹지 못하는 날은


하루를 어떻게 지나야 하는지조차 모를 만큼 막막했다.


엄마의 병세는 빠르게 나빠졌다.


눈으로 보기에도 몸은 마르고 축축 늘어졌고


모든 몸의 구멍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걸레를 손에 쥐고


그 피를 닦고 또 빨고


닦고 또 빨고를 반복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간호의 전부였다.


그 피는 잘 지워지지도 않았다.


방 안은 매일 피비린내로 가득했고


엄마는 매 순간 조금씩,


서서히


죽음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학교에 한 달 넘게 결석을 했는데


어느 날, 이상하게도 학교가 너무 가고 싶어졌다.


하필 그날,


나는 엄마를 혼자 두고 정말 용기를 내어 학교에 갔다.


학교는 여전했다.


아이들은 내 모습을 보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배짝 마르고


때가 앉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 아이들이 이상하게 밉지는 않았다.


나는 그 시선 앞에서도


이상하게 부끄럽지 않았다.


학교가 파하자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그분의 얼굴에는 지금 생각해보면


연민보다도 화가 먼저 떠올랐던 것 같다.


“경화야, 밥은 먹었니?”


나는 그저 고개를 떨구었다.


울지도 못했고


대답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내 손목을 꽉 쥐고는


말없이 나를 학교 앞 이층 중국집으로 데려가셨다.


그리고는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주셨다.


“경화야, 다 지나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잘 살 거야.


잠시 아픈 거야. 조금만 견뎌.”


그 따뜻한 말 한마디조차


그때의 나에게는 너무 벅찼다.


나는 음식을 바라보았지만


한 입도 먹지 못했다.


어떻게 씹는 건지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방에서 굶고 있는 엄마 생각뿐이었다.


‘저 탕수육을 싸가면 좋겠다…


짜장면을 포장해달라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나는 끝내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도


그 생각은 미처 못하셨다.


그렇게 내 앞에 놓인 짜장면 한 그릇.


그건 배고픔의 상징이 아니라


죄스러움의 시작이 되었다.


엄마에게 드리지 못한 죄책감은


내 안에 오랫동안 무겁게 남았고


매년 오월이면


나는 다시 그 중국집 이층으로 돌아간다.


다시 그 탕수육 앞에


다시 그 시커먼 짜장면 앞에 선다.


지금 나는 음식을 누구보다 귀하게 여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어릴 적의 그 굶주림 때문이고


그날 엄마에게 드리지 못한


그 시커먼 짜장면 때문일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음식을 건넬 때


그건 배려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참회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도


그때 그 짜장면을 엄마에게 드리지 못한


마음을 안고 산다.


그리고 그 마음을


사랑처럼 조금씩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


이제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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