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찍 결혼해 벌써 손녀를 본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의 주제는 의외로 사소한 푸념이었다. “너는 좋겠다, 친구야. 혼자 살아서 챙겨야 할 사람도 없고, 자유롭지.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그치?”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 어딘가에서는 조용한 웃음이 났다. 혼자 살아서 누구 챙길 일도 없다는 그 말엔 의무감 없이 편히 산다는 바람이 담겨 있었겠지만 나는 그런 삶이 언제나 가볍지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누군가 곁에 있기에 자연스레 챙김을 받고 그 챙김 덕분에 자기 삶도 조금 더 단단해지는 순간들이 있다면 나는 오히려 누군가 챙겨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더 자주 일으켜 세워야 하고 그래서 더 많은 것들을 덤처럼 챙겨 먹고 살아가게 된다.
‘자유롭지’라는 말에는 그 자유가 얼마나 고요하고 무거운지 그 친구는 아마 모를 것이다. 자유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 빈자리를 지탱하려면 내가 세운 기준과 원칙을 나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매일 새삼스럽게 마주하게 된다. 그 원칙들이 나를 속박하는 틀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투명한 경계가 되어주는 날도 있다. 다만 그걸 지켜내는 건 생각보다 더 고요하고 더 길게 이어지는 싸움이다.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지”라는 말에는 그 잔소리를 가장 자주, 가장 날카롭게 건네는 사람이 사실은 나 자신이라는 걸 모른 채 던진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매일 나에게 말한다. “정신 차리자.” “오늘은 조금 더 단정하게 살아보자.” 어느 날은 위로처럼, 어느 날은 꾸짖음처럼, 그렇게 나를 다잡으며 하루를 견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의 환경 속에서 다른 이의 삶을 쉽게 단순화하고 자주 부러워한다. 그 마음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리하여 간과되는 것이 있다면 그건 각자의 삶 안에서 조용히 버텨내는 그 사람의 리듬이다.
나는 지금 내가 있는 자리를 조금은 납득하며 살고 있다. 만족이라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허기와 어느 정도의 평온이 비슷한 무게로 공존하는 상태, 그런 순간에 가끔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정도의 작은 동의일지도 모르겠다. 삶은 생각보다 자주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고 그 선택의 결과는 언제나 내 몫이 된다. 그러나 그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 그르렀는지를 판단하는 일은 항상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조금은 흐릿하게 모양을 드러낸다.
그래도 나는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 안에서 조용히 숨을 고른다. 크게 의미를 붙이지 않아도 어느 하루가 흘러갔다는 그 사실만으로 조금은 괜찮아지는 날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아주 작은 리듬으로 나만의 하루를 시작한다.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이 하루가 어디쯤 닿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냥 그런 마음으로 살며시 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