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나는 여전히 고아다. 말은 가볍지 않다. 그저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다. 때로는 칼보다 깊게 베이고 때로는 평생을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무게로 남는다. 누군가는 무심히 혹은 익숙하게 꺼내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은 그 말 하나로 지난 삶의 수많은 조각들을 다시 꺼내어야 한다. 오늘 생일을 이틀 앞둔 이 조용한 날. 나는 조금 더 다정해지고 싶어서 마음을 차분히 준비하고 있었고 작은 축복처럼 하루를 기다리며 따뜻하게 숨 고르고 있었는데 그 순간—그 상처가 나왔다. 말이 아니라 상처였다. “고아들.” 두 번이나 들었다. 내게 그리고 내가 돌보는 아이들에게. 고아. 나는 그 단어를 입에 담지 않는다. 그건 단지 ‘부모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품에서 밀려나 혼자 살아야 했던 한 생애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시간 그리고 아이들의 얼굴에 깃든 외로움을 너무도 쉽게 하나의 단어로 덮어버리는 건 한 생을 축소하고 지워버리는 일이다.
나는 아홉 살이었다. 엄마는 방 한쪽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고 나는 그 방 안에 홀로 남겨졌다. 사람들은 그때의 일을 거의 묻지 않는다. 나 역시 많은 걸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방의 냄새와 햇빛 한 줄기도 들지 않던 침묵은 지금도 내 안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그때의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만 아무도 몰라주는 작은 생명이었다. 내가 스스로를 고아라 느꼈던 건 엄마가 떠난 날이 아니었다. 세상이 나를 그리 불렀을 때였다. 그리고 오늘 그 아이들을 고아라 부르는 그 말에서 나는 다시 그 방 안에 홀로 서 있었다. 나는 명절 연휴 아이들을 초대했었다. 밥을 지었다. 국을 끓이고 반찬을 나누고 그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했다. 나는 그들을 손님이라 불렀고 가족이라 불렀고 “오늘 여기 있어서 고마워”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그 누구도 고아가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한 번도 누군가에게 초대받아 본 적 없는 외로운 존재들이었을 뿐. 나는 그들의 삶을 ‘부재’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들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존귀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모든 정성을 덮고 그들을 그리고 나를 “고아들”이라 불렀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웃었다. 정확히 말하면 웃는 얼굴로 그 말을 넘겼다. 하지만 내 안에서 아홉 살의 내가 조용히 눈을 떴다. 그 아이는 아직도 그 방 안에 있었고 그 말에 다시 한번 마음이 베였다.
나는 여전히 고아다. 그건 내 상처이기도 하고 내 생의 빛이기도 하다. 나는 부모 없이 자랐지만 사랑 없이 자라지 않았다. 스스로를 안아주고 누군가의 슬픔을 눈빛만으로 알아보며 다른 고아들을 품을 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어떤 누구도 내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말은 무기이자 말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아다. 하지만 내가 고아라는 건 내가 연약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사랑이 없던 자리에서 사랑을 만든 사람이다. 함부로 불러진 그 말은 이제 내게 상처가 아니라 경고가 된다. 누군가의 이름 위에 쉽게 단어를 얹지 말라. 그 사람의 이야기를 모른다면 침묵하라. 그 침묵이 말보다 더 깊은 존중이 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고아다. 하지만 그 이름은 더 이상 부끄러움이 아니다. 그건 내가 살아낸 시간이고 내가 품은 사람들의 이름이며 내가 매일 다시 태어나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