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자들의 노래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곳, 가만히 앉아 있는 이들이 있다. 말이 없어졌고, 눈빛도 흐릿해졌지만 그들의 존재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세상이 버렸다고 믿는 그 순간에도 나는 그들을 부르듯 바라본다.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이미 노래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다. 그들을 위해 나는 오늘도 입을 열고, 가슴으로 노래한다.
나는 그들을 알고 있다. 비가 오는 날 더 조용해지는 사람들. 밥을 먹는 것보다 눈을 마주치는 게 더 서투른 사람들. 거리에서, 쉼터에서, 고요한 성당 뒤편에서 세상이 놓쳐버린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들. 나는 그들에게서 외면받은 시간이 아니라, 버텨낸 시간의 깊이를 본다.
그들을 외면하지 못했다. 내가 한때 그들 중 하나였기에. 버려졌다고 느껴본 사람만이 아는 어떤 감각—누구의 눈에도 들지 않고, 누구의 언어에도 담기지 않으며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야만 하는 마음. 그 마음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을 보면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안아주고 싶고, 불러주고 싶고, 내 존재로라도 "당신은 여기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나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얼굴을 기억한다. 이름이 없어도, 그들의 눈빛과 손끝의 떨림은 내 안에 남아 있다. 누군가는 그들을 피해 다니고, 누군가는 그들을 보지 못한 척 지나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누군가의 품을 기다려왔는지. 그 기다림이 너무 오래되어 기대하는 법조차 잊어버렸다는 것도.
우리는 어쩌면 어떤 시간에는 누구에게 버려진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사랑받았던 기억보다 외면당했던 순간이 더 오래 남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엔 세상이 온통 차갑게 느껴지고, 자기 자신조차 자기를 버린 것 같은 느낌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슬픔을 느낄 여유조차 없이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사람들. 감정의 이름을 붙이기도 전에 다 젖어버린 마음, 그저 살아남기 위해 숨만 쉬는 존재들. 나는 그들을 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선 말보다 침묵이 먼저 따라온다는 것도 안다.
그 침묵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단 하나, 그 자리에 있어주는 일. 어떤 말보다 더 깊은 연대는, 바로 곁에 있는 그 조용한 존재감에서 비롯된다. 나는 그 자리를 지키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단 한 번도 버려지지 않은 듯한 평범한 하루를 선물해주기 위해.
그것이 나에게 '더 세인트'라는 이름으로 남겨진 사명이다. 버려졌던 기억이 있는 내가, 다시 품이 되어주는 일. 그 일을 위해 나는 오늘도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노래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