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피는 아직도 마르지 않았다"
사람은 무엇을 끝내 잊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는가.
살다 보면 어느새 바래진 기억들이 나를 따라오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책장을 펼친다. 『순교자 공경 톺아보기』라는 제목을 처음 마주했을 때, 문득 해미성지를 다녀온 짧은 순례의 기억이 떠올랐다. 마른 흙을 밟으며 오래된 돌담 사이로 스며든 침묵을 느끼고, 성당의 고요한 숨결 앞에 오래 머물렀던 그 며칠. 눈으로는 벽을, 가슴으로는 이름 잃은 이들의 고백을 따라 걸었다. 그 짧고 고요했던 발걸음이 책을 읽는 내내 겹쳐졌다. 그날 이후, 나에게 순례는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피의 기억과 맞닿는 일이 되었고, 이 책은 그 기억을 다시 부추기듯 조용히 나를 끌어당겼다.
나는 오래된 피의 냄새를 맡았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의 피가 아니었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조용히 말을 거는 피, 세월을 뚫고 흘러와 어떤 고백을 유산처럼 안겨주는 피였다. 신앙은 말없이 전해지는 고백이며, 순교는 가장 고요한 언어로 쓰인 사랑의 유서다. 이 책은 그 언어를 다시 불러내는 일, 그리고 그 언어를 끝까지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가득 차 있다.
책은 역사의 문을 열며 시작된다. 스테파노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까지, 그 뜨겁고 잔인했던 시간들이 하나하나 짚어진다. 죽음을 자처한 이들이 진정한 신앙인이었는가를 묻는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죽음이 진심이면 무엇이든 용서받을 수 있을까. 그들은 단지 죽은 것이 아니라, 끝내 살아내기로 결단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몸을 찢어 하느님께 봉헌한 이들. 그들의 피가 아직도 이 땅을 적시고 있다면, 우리는 그 피 위에 어떤 삶을 짓고 살아가야 할까.
2장에서는 신앙이 어떻게 육화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성지는 어떻게 탄생했고, 우리는 왜 어떤 땅에 발을 디디면 저절로 눈을 감고 기도하게 되는가. 성인의 유해를 조각으로 나누고, 성화를 향해 몸을 굽히던 이들의 몸짓. 그 신앙의 형식들이 오랜 세월을 지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단 한 순간도 신앙을 멈춘 적이 없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기억은 형식이 되어 우리를 되돌리고, 되돌아간 자리는 언젠가 그들의 눈물로 적셔진 땅이다. 나는 그 땅을 걷고 싶었다. 그리고 그 땅 위에 내가 지으려는 집이, 단지 벽돌과 나무로만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마지막 장은 침묵으로 시작된다. 성지는 기도의 집이어야 하며, 공경은 단지 눈물이 아니라 결단이 되어야 한다고 책은 말한다. 박제된 기념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내는 방식. 나는 그 문장을 천천히 읽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쩌면 기억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기억한 대로 살아내는 일이다. 기억은 눈물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책임을 요구한다. 이 책은 그렇게, 내 마음 깊은 곳을 조용히 건드려왔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나의 사명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지친 영혼들이 다시 살아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공간. 세상에 버려졌던 존재들이 자신도 누군가에게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쉼터. 더 세인트는 바로 그런 이름이다. 순교자의 피가 이름조차 없던 이들에게 길이 되어주었듯, 나 역시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다. 무명의 자리에 이름을 다시 새겨주는 일. 그것이 내가 짓는 집의 기초다. 그들은 다만 조용히 아팠을 뿐이고, 이름 한 번 크게 불리지 못한 채 흩어졌을 뿐이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주고 싶다. 그 이름들이 다시 불꽃이 되어 이 땅 위에서 타오르기를 바란다.
더 세인트는 단지 집이 아니다. 이름을 잃었던 이들이 자신을 다시 부를 수 있게 되는 곳, 모든 상처가 한 줌의 기억으로 씻겨나고, 결국 사랑만이 남게 되는 그 자리. 누구도 밀려나지 않고, 누구도 잊히지 않는 집. 나는 그런 집을 짓고 있다.
책은 끝내 이렇게 말한다. 순교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이 말은 마치 선언처럼 가슴에 박혔다. 끝까지 사랑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준 사람들. 그들은 실패한 자들이 아니라, 완성된 자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내 안의 실패마저도 그 완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어디선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기도의 자리에서 울고 있을 것이다. 그 울음이 더 세인트로 이어지기를, 그리고 더는 외롭지 않기를. 나는 믿는다. 순교자의 피가 흐른 자리에 꽃이 피듯, 이 땅에서도 반드시 한 줄기 빛이 돋아날 것을. 그리고 그 빛을 따라 누군가는 다시 살아보고 싶다고 말하게 되리라고.
그 길 위에 내가 있다. 그러니 나는 이 사명을 멈출 수 없다. 그 피가 아직도 마르지 않았다는 것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므로.
하지만 이 모든 고백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으며 남는 아쉬움도 분명히 있었다. 지면 곳곳에 박힌 통찰과 자료의 충실함에도 불구하고, 초심자에게는 문턱이 높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신학과 전례, 역사적 맥락이 빠르게 교차하며 설명될 때, 한 줄 숨을 고를 여백도 없이 밀려드는 문장들은 때로는 독자의 손을 놓고 먼저 달려가버리는 듯했다.
삽입된 사진과 지도, 도표들은 귀한 자료였지만, 흑백 인쇄로 인해 현장의 숨결이 다 담기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사진의 대부분이 성지의 ‘풍경’이 아닌, 박해 장면의 판화나 교부들의 성상 이미지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이다. 순교자의 피가 흘렀던 실제의 땅, 누군가 무릎 꿇고 기도하던 자리, 조심스럽게 손을 얹고 이름 없는 무덤에 꽃을 놓던 장면. 그런 오늘의 기억을 품은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다.
사진은 단지 설명을 위한 자료가 아니라, 신앙의 감각을 깨우는 창문이어야 한다. 눈으로도 기도하게 만드는 어떤 이미지, 오래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도 그 자리를 떠올릴 수 있는 사진 한 장. 그러나 이 책의 사진은 너무 작았고, 설명에 갇혀 있었다. 마치 순례자가 잠시 머물다 간 돌계단만 남은 듯한 인상이었다. 해미의 초입에서 마주친 그 붉은 흙길,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던 은방울꽃처럼, 풍경에도 신앙의 숨결이 있었다면 이 책은 더 깊이 기도할 수 있는 성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나에게 어떤 선언처럼 남았다. 더 세인트를 짓는 지금, 나는 이 책으로부터 다시 길을 배운다. 눈물로 적신 자리에 무엇을 지어야 할지를. 기억의 땅에 어떤 불빛을 켜야 할지를. 마치 순교자들이 조용히 속삭이듯이, 책은 끝내 나를 그 자리로 데려다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