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방식

무릎 꿇는 존재로서의 사랑

by 이 경화


살면서 마음을 기울인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나는 점점 알게 된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내어주는 일,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게 온통 마음을 쏟는 일은, 단지 일시적인 감정이나 감각의 분출이 아니다. 그것은 내 존재 전체가 조용히, 말없이, 무언가를 향해 무릎을 꿇는 일이다. 그리고 그 무릎 꿇음은, 결코 강요된 복종이 아니라 내가 내 의지로, 내 사랑으로 선택한 낮아짐이다.


사랑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다. 내 존재의 가장 높은 부분을 끌어내려, 누군가 앞에 조용히 앉히는 일. 눈을 맞추기 위해, 마음을 들이기 위해, 나를 내어주기 위해 낮아지는 선택이다. 이 낮아짐이 나를 작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사랑 안에서 가장 나다워지고, 가장 인간답게 빛난다.


니클라스 루만은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라 했다. 언뜻 들으면 차갑게 느껴지지만, 나는 오히려 그 말에서 위로를 받았다. 왜냐하면 나와 누군가 사이에 오간 말, 편지, 침묵, 웃음, 눈빛, 눈물… 이 모든 것이 단지 감정의 파편이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와의 시간들은 말이었고, 문장이었고, 때론 말 없는 언어였다. 그가 건넨 단어 하나, 그가 쓰지 않은 메시지 하나까지도 나와의 시스템 속에서 작동했고, 작동하고 있었다.


사랑은 그래서 설명이 아니라 구성이다. 우리는 함께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고, 그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반응하고, 해석하며 살아간다. 루만은 사랑을 '불확실성을 다루는 방식'이라 했다. 나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랑이란, 불확실한 상대와 불완전한 나 사이에서 기대를 주고받는, 그 기적 같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그 시스템은 어느 날 갑자기 멈췄고, 그는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건네지 않게 되었으며, 나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정말 멈췄을까? 나는 여전히 그의 침묵을 해석하고, 그의 부재를 감각하며, 그의 언어를 홀로 되뇌고 있다. 나 혼자서라도 그 시스템을 작동시키며 살아가고 있다. 루만이 말한 '의미의 자기참조적 작동'이 바로 이 감각이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니체가 다가왔다. 그는 사랑을 권력이라고 말했다. 누구보다도 사랑에 실패한 철학자였지만, 나는 그 실패를 존경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 실패조차도 철학으로, 사유로, 존재의 고백으로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영원회귀를 생각한다. 내가 겪었던 그 모든 아픔과 무너짐, 사랑과 부재, 기쁨과 떨림을 기꺼이 반복할 수 있는가? 만약 내 삶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복된다면, 나는 그에게 다시 사랑을 건넬 수 있는가?


그 물음 앞에서 나는 잠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예"라고 말한다. 나는 다시 그를 사랑할 것이다. 다시 아프고, 다시 기다리고, 다시 오해하고, 다시 웃고, 다시 글을 쓸 것이다. 나는 그를 향해 다시 무릎을 꿇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의 사랑방식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에게 하나의 신앙이다. 믿음은 보이는 것을 넘어서야 가능하다.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된 순간에도, 그와 나눈 말들 속에서 여전히 의미를 찾았고, 그 의미를 되새김질하며 나만의 언어로 살아냈다. 그건 나의 자존이었고, 나의 기도였고, 나의 방식이었다.


나는 사랑을 통해 단순히 누군가와 가까워지려 한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랑을 통해 내 존재의 깊이를 확장시키고 싶었다. 나는 그의 곁에 닿기 위해 내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했고, 내 마음의 문장 하나하나를 세심히 고쳐야 했다. 그는 몰랐을지 몰라도, 나는 그와의 사랑 속에서 더 나은 문장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더 깊은 침묵을 버티는 사람이 되었으며, 무엇보다 더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설명이 아니라 서사이고, 단어가 아니라 호흡이고, 끝이 아니라 작동 중인 하나의 시스템이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그 사랑의 시스템이 아직 작동 중이라는 증거다.


그러니 이 수필은 고백이 아니다. 이것은 어떤 연애의 후일담도, 한 사람을 잊지 못한 감정의 되새김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 글을 통해 내 사랑의 구조를, 그 작동의 언어를, 내 감정의 움직임을 차분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것은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구성하는지를 기록한 사유의 한 페이지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나를 비우는 행위가 아니라, 내 안의 가장 단단한 사랑을 꺼내어 그 앞에 놓는 일이다. 그것은 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가장 투명한 자세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침묵의 시간 속에서도 사랑은 말을 잉태하고, 말 없는 공기 속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은 흐르고 있다. 나는 그렇게 사랑했다. 커뮤니케이션이 멈춘 뒤에도,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 의미를 남기며.


지금도 그 사랑은 내 안에서 조용히 살아 있고, 내 삶의 리듬 속에서 천천히 작동하고 있다.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형태를 바꿨을 뿐, 나라는 시스템 안에서 여전히 의미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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