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살기

by 이 경화


제주 생활 구년째다. 십삼년 전, 모든 도시 생활을 접고 전원주택에 살고 싶어서 연고가 있는 이천 산 아래 집을 덜컥 구입했었다. 총 세 군데의 집이 물망에 올랐으나, 나는 대지 300여 평에 50여 평의 집을 계약했다. 하나는 서재로, 하나는 손님방으로, 하나는 내 방으로 꾸몄다.


2년은 정말로 행복했던 것 같다. 눈이 내리면 교통이 끊기고 택배도 오지 않았고, 말 그대로 고립이었지만 나는 그 모든 일에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집을 계약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우습게도 장을 담그는 일이었다. 그리고 80여 평의 밭에 농작물을 키우는 일, 닭장을 만들고 닭과 오리를 키우는 일, 뒷산에서 밤을 따고 아카시아 꽃을 따서 향긋한 술을 담그고 막걸리를 담그는 일, 모두가 그저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일이라고 여겼고 날마다 새로운 재미로 하루하루가 참 좋았다.


봄이면 복숭아꽃이 마당에 꽃비처럼 내렸고, 의자에 걸터앉아 그 꽃비를 맞으며 책을 음미했다. 고양이가 늦잠을 깨우고, 키우던 삽살개와 산책을 나가는 시골생활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하나씩 배워가며 익히는 것 자체가 내겐 커다란 의미였다. 흰 눈이 무릎까지 내려 마을로 내려가지 못하는 날엔 무명을 끊어 야생화를 수놓고 따뜻한 모과차를 우려 마시며 밀린 영화를 탐닉했다. 나에게 자연스러움을 매일 가르쳐주는 스승은, 다름 아닌 내 자신과 자연이었다.


제주의 삶은 말 그대로 시골 생활의 경험이 있기에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있다. 시절에 따라 겪는 경험은 훗날 반드시 스승이 된다. 누가 봐도 외지인인 나는 먼저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제주 생활 몇 달은 많은 이들이 여행처럼 보내며 맛집을 탐닉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내가 살 곳과 내 몸의 기운을 맞추느라 한 달여를 그저 조용히 보내고 있었다. 점점 손이 검게 변해 흑인의 손처럼 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사랑스럽다. 식사는 되도록 자연식에 가깝게 하고, 재료는 자연에서 얻는다. 식생활이 바뀌니 수면의 질도 높아졌다. 도시에 살 때는 새벽에 한 번씩 꼭 깼는데, 나는 그 깸을 ‘중간깸’이라 부른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중간깸이 없다. 자고 나면 곧장 아침이다.


자연스럽게 사는 일, 그리고 느리게 사는 일은 마음에 달려있음을 느낀다. 재촉하지 않는 것, 스스로를 혹사시키지 않는 것, 마음에 일어난 감정들을 억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 인연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일부러 붙들어 매지 않는 일, 이 모든 것이 달라진 제주 생활이다.


하루하루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살아가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그들의 웃음에는 거짓이 없다. 탐욕과 시기와 질투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은 매력이 없다. 도인도 수도자도 아니지만, 하루를 진심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그 이상으로 존경스럽다.


사람들은 귀인을 원하며 바란다. 귀인은 어느 날 불쑥 다가오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내가 귀하게 대접하는 인연 속에 숨어 있다. 우리는 자주 멀리서 귀인을 찾지만, 정작 내 옆에 있는 인연을 귀하게 여긴 적은 드물다. 내가 귀히 여기는 그 자리가 곧 귀인의 자리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닥쳤던 모든 시련과 고통은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때에 맞게 나를 가르쳤던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진정 배우고, 깨닫는다. 현재라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목적은 알 수 없는 미래가 아니라 바로 ‘오늘’이라는 신의 선물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지겨운 오늘이, 실은 내일을 불러오는 힘이다.


행복은 지겨운 일상을 껴안을 때에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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